나는 영화 범죄도시2를 신나게 보고 온 임산부였다.태교는 뭐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회사 다니느라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회사에 출산 한 달 전까지 출근하다 보니 배가 불러올수록 힘이 들었다. 출산휴가날만 기다리며 아침 출근마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을 무거운 배로 깔아뭉갰다.
그래도 매달 돌아오는 작지만 소중한 월급과 휴가를 떠올리며 버텨냈다. 나에게 애사심은 돈과 휴가에서 나오는 게 확실한데 모성애는 대체 언제 어떻게 생기는 건지 궁금했다.
산부인과에 진료받으러 갈 때면 배를 쓰다듬으며 아기와 대화하는 다정다감한 임산부를 보게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모습이 진정한 '엄마' 같았고 나는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았다.
출산 직후아기를 산모에게 보여준다. 출산 브이로그를 봤을 때는 엄마가 아기에게 고생했다, 사랑한다, 예쁘다 등 감동적인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나도 같이 울컥하곤 했다. 그런데 막상 나에게 아기를 안겨줬을 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고생했다? 방금까지 힘주느라 내가 고생해서 아기의 고생까지 살피지 못했다.
사랑한다? 입체초음파로 보긴 했지만 실제로 본 건 처음이라 내 자식이지만 낯설었다.
예쁘다? 양수로 얼굴이 퉁퉁 부어서 예쁜지 알 수 없었다.
솔직한 첫인상은 양수에 퉁퉁 불어 아기가 되게 크게 보였고 이 커다란 아기가 대체 거기서(?) 어떻게 나왔지? 하는 인체의 신비를 느끼며 드디어 고통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출산 후에도 배누름, 소변줄, 회음부 통증, 치질, 젖몸살까지 여러 가지 고통이 남아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음날 아침, 첫 만남 시간이 되었다. 분만하느라 온몸에 땀이 난 상태에서 씻지도 못하고 소변줄을 달고 어기적거리며 힘겹게 신생아실로 갔다. 유리창 너머 보이는 뽀얗고 조그마한 신생아 모습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버렸다. 양수에 불은 부기가 가라앉자 너무도 작아 요정같았다. 최악의 컨디션에도 다른 건 다 잊게 되고 아기에게 푹 빠져 15분의 면회시간이 15초처럼 짧게 느껴졌다. 그 순간은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 1순위로 꼽을 수 있다.
그동안 아기는 언제 컸는지 모르게 쑥 커버렸다. 하루종일 누워만 있던 아기가 다리를 뻥뻥 차며 자리도 옮기고 그러다 뒤집기도 되집기도 하더니 굴렁쇠처럼 굴러가기도 한다. 그러다 혼자 앉고 소파를 잡고 서고 걸음마를 하더니 이제는 걷는 속도가 잡기 힘들 정도로 빠르다. 모성애도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게 아기가 크는 동안 같이 쑥 커버린 것 같다.
종종 아동학대 기사를 보게 된다. 예전에는 보자마자 욕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런데 이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먼저 흘러나온다. 엄마가 되고 보니 더욱 감정이입이 된다. 점점 엄마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