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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삼 Apr 30. 2024

만차도 뚫는 아기

지난 주말,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남편과 나 그리고 19개월 된 아기와 함께였다.


아기와 함께하는 외출이라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 여유 있게 준비를 마쳤고, 또 결혼식장 가는 길에 길이 막힐 수 있으니 한 시간 일찍 도착하도록 집을 나섰다.


역시나 결혼식장 앞에서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앞차를 따라가다 보니 주차장 입구에 만차 표지판을 발견했다. 주차요원들은 조금 떨어진 임시주차장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일찍 오길 잘했다며 안도하는 와중에 우리 차 안을 본 주차요원 아저씨는 갑자기 "어어. 잠깐." 하고 무전을 했다. 이어서 "여기 아기 있다. 자리 하나 빼놔라."라고 하시며 만차 표지판을 옆으로 치워주셨다.


생각지도 못한 하이패스였다. 뜻밖의 배려에 감사합니다!!!! 인사가 절로 나왔다.


남편은 이 결혼식장에 4번째 오면서 지하 주차장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항상 지상 주차장이나 그마저도 자리가 없으면 길가에 겨우 주차를 했다며 지금의 상황에 놀라워했다.


주차를 하면서 아기 덕분이라며 아기에게도 고맙다고 했다. 아기는 영문도 모른 채 카시트에 앉아 있었다.




결혼식장에 들어가서니 하객들로 북적북적했다. 정신없이 인사를 하는 와중에 가방에서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먹고 남은 우유가 샌 것이었다. 화장실에 가서 대충 소지품을 다 닦은 뒤 식장 안으로 들어섰다.


결혼식을 보며 옛 생각에 떠올라 감성에 빠질 틈도 없이 너무 바빴다. 내가 결혼 당사자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정신없이 바쁜 것일까.


아기는 결혼식장 안에 있으면 계속해서 문쪽을 가리키며 가라고 했다. 원하는 바가 따로 있었으니 바로 비상계단 오르내리기였다. 요즘 한창 계단 오르내리는 재미에 빠져있다. 오랜만에 예쁜 원피스를 입은 것이 무색하게 계단 운동을 열심히 했다. 보통은 계단을 올라가는 힘들지만 아기와 함께할 때면 내려가는 힘들다. 내려갈 넘어지지 않게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계단 운동에 지쳐버린 나는 아기를 번쩍 안고 식장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축가를 부르고 있었고 아기는 율동과 함께 반짝반짝 작은 별을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가 나오니 신이 나서 자기도 냅다 아는 노래를 부른 것이다. 쉬는 시간도 잠시 노래가 끝나자 또다시 계단으로 향했다.


겨우 식이 끝나고 드디어 뷔페를 먹으러 갔다. 남편은 음식 공급, 나는 아기 식사로 업무 분장을 마쳤다.


야무지게 먹으려는 다짐과는 달리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내가 뭘 먹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아기는 야무지게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딸기와 포도로 디저트까지 마쳤다. 별로 먹은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주변을 둘러보니 하객들이 다 빠져나가고 다음 예식이 끝났는지 다음 하객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기와 함께하는 외출은 항상 예상밖의 일들이 일어난다. 정신없고 힘든 순간도 많지만 아기를 배려해 주셔서 주차도 하듯이 감사한 순간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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