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저물고 새로운 해가 된지도 벌써 하루가 지났습니다. 새로운 해에는 항상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며 글을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혹시 학창시절 혹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유도리"라는 말을 들어 본적이 있으신가요? 왜 이렇게 "유도리"(발음이 부정확한 분은 가끔 유들이 유드리라는 발음으로 들리기도 합니다.)가 없어? 그렇게 꽉 막혔어? 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또는 "유도리"있게 해~ 라는 방식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이 "유도리"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 유도리는 무엇 ??
이 스프링처럼 어쩌면 유연하고 어쩌면 끝과 끝 사이에서 기준없이 왔다갔다 가능한게 유도리가 아닐지?(이미지-픽사베이)
유도리라는 말에 대해 네이버 국어사전은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형편이나 경우에 따라서 여유를 가지고 신축성 있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융통)" 뜻만 보면 고집스럽게 꽉막히지 않은 좋은 뜻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위의 사진에 나와있는 스프링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 본적이 있으신가요? 홀앙쌤은 어쩌면 유도리는 저 스프링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지고 놀기에 꽤 재미난 아이템인 저 스프링은 끝과 끝사이에 수 많은 변화를 주거나 계단 등을 이용해서 재밌게 여러모로 응용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만큼 끝과 끝 사이에서 굉장히 많은 변화를 줄 수 있는 만큼 명확한 기준점을 주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쩌면 유도리도 이와 비슷한 면이 있는거 같습니다. 여유와 신축성 있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라는데 여유와 신축성의 기준이 굉장히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 유도리 뜻은 좋았으나.. 실제 쓰이는 모습은 본래 뜻과 많이 다르다
저는 저 위의 스프링을 떠 올린것은 이때 까지 살면서 들었던 "유도리"라는 말이 사실 별로 좋은 방향으로 쓰이는 것을 못 봤기 때문입니다. 말이 좋아서 융통성이지 안되는 것을 되게 한다거나 기준에 맞지 않는데 그저 윗사람의 입맛에 맛게 하는 경우로 대부분 저 유도리라는 말이 쓰이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융통성이라는 의미의 유도리가 원래 의미대로 쓰인다면 가령 행사 안내판을 경사로에 설치할지, 더 잘 보이는 평지에 설치할지 현장 사정에 따라 적절히 설치하는 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는 어떤가요? 작은 스터디 모임만을 해도 왜 결석을 했는데 벌금을 걷으려고 하냐 유도리 있게 넘어가주라 라고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합니다.(분명 스터디 모임을 할 때 규칙으로 같이 정한 것인데도 말이지요.) 또는 원래 안 되는 경우인데 되게 해달라고 하면서 또 왜 그렇게 유도리가 없냐라고 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군에서 병사 인사업무를 담당할 때 특히 많이 들었던 내용이 이 "유도리" 입니다. 실제 내용은 유도리와 무관하게 특정인에게 특정한 보직을 부여해 달라는 이야기였는데 이러이러해서 안된다라고 하면 왜 그렇게 "유도리"가 없냐라고 하는 말이 무슨 자판기 커피마냥 나오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군대에서만 그럴까요? 아닙니다. 회사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많이들 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정작 직급이 낮은 사람은 갖은 규정과 회사의 관행(?)을 이유로 허락이 안되더라도 높으신 분들한테는 어찌나 그렇게 빠르게 또 더 넓은 재량을 통해서 "유도리"있게 많은 것이 허용이 되는지 정말 신기할 따름입니다. 이런 것들은 실제 "융통성"과는 관련이 전혀 없습니다. 안될 것을 되게 하는 것이 융통성이 아니니까요.
□ 유도리는 원래 의미대로 쓰이지 못하면 일상 속에 작은 부패의 씨앗일 뿐
몇 년 전에 우연한 기회로 UN산하 기관의 연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연수를 할 때 강의를 진행 했던 강사 분들의 많은 이야기 들 중 정말 기억에 남는 한 마디가 있었습니다. "corruption=monopoly power + discretion-accoutability" 어쩌면 "유도리"를 이렇게 원래 의미와 다르게 같다 붙이는 것이 일상적이게 된다면 그것은 엿장수 마음대로(그것도 사회적으로 힘이 쎈 엿장수 마음대로) 하는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이는 부패의 작은 씨앗이라고 생각합니다.
안되는 것인데 나한테는 좀 되게 해달라는 것이 "유도리"로 둔갑하지 않고 본래 의미대로 원래 해야 하는 일이 최고의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정당한 권한과 기준을 넘지 않는 범위"내에서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 진짜 "유도리"고 이렇게 제자리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유도리 없어"라는 말의 뉘앙스가 규정과 원칙대로 일하는 사람에게 답답하다는 식으로 쓰이는 상황도 더 이상 없었으면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좀 더 예측가능한 사회를 살 수 있지 않을까요?
□ 마치며 : 유도리는 죄가 없다.
"유도리"에 대해 어쩌면 안 좋은 면에 대해 쓴 거 같아 괜히 "유도리"한테 미안해 집니다. 하지만, 원래 유도리 자체는 죄가 없습니다. 실제 목적에 맞는 최고의 결과를 내기 위해 융통성을 발휘하는 게 원래 의미니까요.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정말 "유도리"가 이런 원래 의미로 쓰이고 있을까요? 그저 "나" 혹은 "특정인"을 위해서 되게 해달라는 게 "유도리"의 탈을 쓰고 있는 현상이 "유도리"를 나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유도리"에게 원래의 모습을 찾아주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