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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Nov 09. 2022

묘지 스케치

  며칠 전 숙부님이 돌아가셨단 연락을 받았다. 아버지 형제 중 유일하게 살아 계셨는데, 사인은  코로나 폐렴이었다. 거동이 불편하여 몇 년 동안 집에서만 계시던 분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으시고 5일 만에 돌아가신 것이었다. 요즘은 확진자가 워낙 많다 보니 친구 없는 사람만 코로나에서 비껴간다는 말도 들렸다. ”나를 두고 하는 소리네”하며 맞장구를 치고는 웃어넘겼는데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에 숙부님이 포함됐다는 사실을 접하고서야  비로소 남의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조심성이 많고 위생관념이 철저하셨던 숙부님이 코로나 희생자라니 믿기 어려웠다. 화장을 원하신 고인의 뜻에 따라 화장터를 알아보니 시신이 밀려 예약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사망자 수는 300명이 넘었다.) 화장 날짜가 정해져야 장례를 치르는데 장례식장을 구하지 못해 돌아가신 지 이틀이 지나서야 빈소를 차릴 수 있었다며 사촌동생은 황망해했다. 88세의 나이로 화창한 봄날 가신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숙부님은 선산에 묻히셨다. 충청남도 채운면에 위치한 선산에는 조부모와 아버지 7형제의 무덤이 태어난 순서대로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숙부 자리는 터만 있었는데 돌아가시고 묘가 만들어졌다.  만석꾼이던 할아버지는 자식이 많으셨다.  할아버지 자식들이 성장하여 각자의 가정을 꾸려 살다가 죽고 나서 다시 부모와 한 곳에서 뼈를 맞대며 지내는 셈이 됐다. 부모란 자식의 사후도 책임져야 하는지 한자리에 오손도손 모여있는 무덤들을 보며 생각했다. 어릴 적 추석이면 아버지 형제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에 모였다. 사촌까지 합하면 족히 40명은 됐다. 차례를 지내고 나면 아이들은 뛰어놀고 술이 들어간 어른들은 언성을 높이고 싸웠다. 연례행사처럼 모이다 숙부들이 한분씩 세상을 뜨면서 언제부터인가 가지 않았다. 해외에 살며 한국을 방문할 때 걸리는 것이 부모 산소를 찾아가는 일이었다. 선산을 가려면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논산을 가야 했다. 논산에서는 택시를 대절하여 선산까지 들어가는데 그러지 않으면 돌아오는 길이 낭패였다.(지금은 콜택시가 있으니 예전보다는 낫지만.) 서울에서 차를 빌려 직접 운전해서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하루 코스였다. 거리가 멀고 접근성이 쉽지 않은 핑계를 대며 망설이다 겨우 다녀오거나 가지 않을 때가 많았다.

  

  휴스턴에 살 때였다. 살고 있던 집이 낡아 이사를 하려고 집을 보러 다니다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했다. 부동산 중개인은 이 동네는 이웃이 조용하여 살기가 편할 거라 했다. 무슨 말인가 의아해하니 중개인이 길 건너 공동묘지를 가리켰다.  이사하고 며칠 지나  산보 삼아 마리를 데리고 간 그곳에는 비석과 조화로 어우러진 묘들이 평화로이 안치되어 있었다. 묘비에는 죽은 이의 이름과 살다 간 연도가 적혀 있었다. 몇 년을 못 채우고 이 세상을 떠난 아이부터 100세 이상 살다 간 사람까지 다양했다.  죽는 것은 순서가 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문이 없는 묘역은 공원 같았다. 사람들은 편안하고 자유롭게 그곳을 드나들었다. 조용한 이웃 덕에 나는 밤에는 고요를 누리고 낮에는 그곳을 거닐며 사색을 즐겼다. 산 자와 죽은 자가 길하나를 두고 있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였고 죽음이 무섭지 않게 느껴졌다. 죽음도 삶의 연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후로 묘지를 탐방하는 취미가 생겼다. 여행을 가면 묘지를 찾았다. 미국의 묘지는 아름다웠다. 특히 캘리포니아 묘지 주변에는 계절의 변화가 별로 없어 일 년 내내 꽃들이 만발했다. 푸르디푸른 하늘 아래서 풀내음을 맡으며 걷다가 이런 곳에 묻혀도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편으로 비슷한 모양과 크기의 묘지를 보며 드는 생각은 그곳에 누워 있는 망자의 삶도 비슷하게 행복했을까 어땠을까 하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특이하다고 느낀 것 중 하나가 묘지 풍경이었다. 나는 시부야 근처의 주택가에서 살았는데 공동묘지가 있어 처음에는 놀랐다. 30평 정도 되는 터에 비석이 올망졸망 붙어 있는 묘지는 절 옆에 있었는데 수국이 낮은 시멘트 담장 위로 삐져나와 있었다. 파랑, 하양, 핑크색의 수국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회색 일색의 묘지 분위기를 환하게 만들었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일본에서는 결혼할 때는 교회에서, 죽으면 절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한 번은 도쿄 시내에 온천 목욕탕이 있다 해서 전철을 타고 찾아갔다. 온천을 하고 나와 몇 발짝 옮기니 절이 보였고 묘지로 향하는 길로 이어졌다. 내 동네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 봄이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벚나무와 이름 모를 꽃으로 뒤덮인 묘지는 세월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었다. 사람들은 꽃보라가 흩날리는 묘지 사이를 자전거를 타고 무심히 지나가기도 하고, 걸으면서 떨어지는 벚꽃을  맞기도 했다.  나도 천천히 묘지 주위를 걸었다. 목욕을 하고 나서인지 마음이 더 경건해지는 것 같았다. 어느 묘지 위에 졸린 눈으로 미동도 않고 앉아 있는 길 고양이가 보였다. 이승과 저승이 뒤섞인 기분이 들었다. 이처럼 도쿄에는 크고 작은 묘지가 많았는데 그중에서 나는 아오야마 영원묘지를 가끔 갔다. 아오야마 묘지는 가는 길도 쾌적하고 주변에는 분위기 좋은 카페가 많아 자전거를 타고 산책하기에는 딱이었다.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도쿄에서 그것도 부자동네인 아오야마에 150년 동안 공동묘지가 유지되고 있음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우리나라였다면 개발을 내세우며 무슨 조치를 하지 않았을까.) 100여 년 전 그 시절 지구의 동쪽 끝 섬나라에 와서 살다가 뼈를 묻은 서양인의 묘지도 보였다. 종교적인 사명감에 왔다고 짐작되는 그들의 흔적을 보며 나는 어디서 생을 마감하게 될까 잠시 생각했다.

  

  아오야마 묘지가 국제적이고 세련된 묘지라면 일본스러운 묘지는 조시가야 묘지가 아닐까 싶다.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 나쓰메 소세키가 묻혀 있다고 해서 알려진 조시가야 묘지는 전철을 타고 꽤 가는 거리에 있었다. 출입구에 있는 묘지 안내지도에는 그 외에도 여러 저명한 일본인의 묘가 표시돼 있었는데 나에게는 생소한 이름들이었다. 관리사무소에서 가이드맵을 받아 소세키 묘를 찾아 나섰다. 맵을 따라갔지만 주변에 사람도 안 보이는 데다  묘의 번호를 살펴봐도 눈에 잘 띄지 않아 몇 번 왔다 갔다 하다 간신히 찾았다. 49세에 생을 마감한 나쓰메 소세키. 그는 <마음>이란 소설에서 조시가야 묘지를 언급했는데 실제로 본인이 그곳에 묻힌 일화는 유명하다.  날도 더웠고 헤매느라 지쳐 소세키 무덤만 보고 왔다. 목적 없는 발걸음이 가볍고 자유로움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일반인과 섞여 있는 그의 무덤은 평범했고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넓은 사유지에 홀로 덩그러니 묻혀 있는 한국의 어느 유명한 문인의 무덤과 비교됐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죽음에 대해 남편과 이야기할 때가 있다. 모태신앙에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남편은 내세를 믿지 않는다. 자기가 죽으면 장례식도 하지 말고 즉시 화장하여 아무 데나 뿌리라 했다.  세상과 원수진 것도 아니고 남은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내가 먼저 갈지도 모르는데) 그건 좀 심하지 않냐 했더니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게 그의 답변이었다. 굳이 그러고 싶으면 유언으로 남기라고 하니 아들과 나에게 이메일을 쓰겠다고 했는데 아직 받지는 못했다. 정말 속마음이 그러한지 취기로 하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나도 동의하는 부분은 있다. 묘지는 바라지도 않거니와 찾아올 사람, 돌봐줄 사람 하나 없는 납골당에 유골로 남아 있는 것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조부모와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형제들이 묻힌 선산은 그 동네 어른이 보살피고 있다. 하지만 나이 드신 어른에게 언제까지 맡길 수도 없으니 나의 남동생과 사촌형제들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고 살자’가 삶의 모토인데 내 사후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볼 때가 된 듯하다. 더불어 내 장례식에 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 남편 생각이 맞는지도 모를 일이다.                                                                                                                 (202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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