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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Apr 26. 2023

북촌과 몬주익

  2012년 겨울 처음으로 덴마크에 갔다. 그해 유럽여행의 시작지였던 코펜하겐은 아침 9시에도 어두컴컴하고 오후 3시가 넘어가면 어둑어둑해졌다. 도착부터 떠날 때까지 비가 오거나 눈이 내렸다. 음울한 날씨에 몸은 무거웠다. 중국식당에서 먹는 산라탕이 그나마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었다. 며칠 후 코펜하겐역에서 독일의 함부르크행 기차를 탔다. 얼마나 갔을까. 기차에서 내려 갑판 위로 올라가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덴마크에서 독일을 가려면 바다를 건너야 하는데 기차가 배 안으로 들어가 바다를 건너는 것이었다. 기차페리였다.  우중충하고 우울해 보이던 코펜하겐은 바다 위에서 바라보니 아름다웠다. 가장 특별했던 덴마크 경험이었다.


  함부르크에서 출발하는 자동차 여행을 시작했다. 휴스턴에서 추수감사절을 맞아 친구집에 간다고 나섰던 장거리 로드 여행 이후 십여 년 만의 자동차 여행이었다. 파리와 니스, 바르셀로나를 주 여행지로 삼았다.  처음에는 코펜하겐에서 차를 빌려 바르셀로나에서 돌려줄 계획을 세웠으나 코펜하겐에서는 그것이 여의치가 않았다. 찾아보니 함부르크에서는 가능했다. 예정에 없던 함부르크에서 차를 빌려 하이델베르크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파리로 갔다. 파리에서 닷새를 묵고 프랑스 남부로 향했다. 모나코를 거쳐 니스와 칸느에서 사흘을 보내고  종착지인 바르셀로나에서 차를 반납했다. 따져보니 삼천여 킬로를  달렸다.


  자동차로 유럽을 다니면서 국경을 지났다고 인식하는 순간은 도로 표지판의 글자가 바뀌는 것을 볼 때였다.  독일어가 불어로 바뀌는 것을 보며 프랑스에 왔음을 알았다.  프랑스의 니스에서 지중해변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니 스페인이었다. 독일이나 프랑스와 달리 스페인에 들어서자 도로 표시판에는 생소한 글자와 스페인어가 나란히 쓰여있었다. 카탈루니아 지방말인 카탈루나어였다. 이탈리아어와 불어에 더 가깝다는 카탈루나어는 그 지방의 공식적인 언어였다. 독자적인 언어를 쓰는 카탈루니아 사람들은 옛날부터 스페인에서 분리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해 지금도 독립을 꿈꾼다고 했다.


  카탈루니아의 주도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으로 유명한 항구도시 바르셀로나는 활기가 넘쳤다.   세련된 복장으로 길거리를 치우는 남녀 청소부들이 눈에 띄었다.  사용하기 편리하게 디자인된 쓰레기 받침과 빗자루 모양도 인상적이었다. 청소부들이 멋지다고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한밤중에 쓰레기를 수거하는 우리나라 환경미화원들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바르셀로나 도심에서 남쪽으로 가다 보면 몬주익 언덕이 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대회에서 황영조 선수가 금메달을 땄던 곳이었다. 호안 미로 미술관을 찾아갔다가 그 주변이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처형된 비극적인 장소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정권은  나치와 무솔리니를 등에 업고 반대세력을 탄압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스페인 사람뿐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 나라 사람들이 도와주러 와서 싸우다 희생됐다고 했다.  밝은 느낌을 주는 그림은  슬픔을 감추고 싶은 화가의 마음일 수 있다는 어느 미술평론가의 말이 떠올랐다. 프랑코 독재를 겪은 미로의 그림이 따뜻하고 행복해 보이는 이유도 그래서였을까. 바르셀로나와 미로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주에 제주도를 다녀왔다. 오 년만의 방문이었다. 4월의 제주도는 예뻤다.  공항을 빠져나오면 바로 눈에 띄는 키 큰 야자수는 제주스러웠고 노랑 유채꽃밭은 제주에 왔음을 상기시켰다. 홍가시나무도 한창이었다. 파란 잎 사이로 드러나는 빨간 잎이 꽃처럼 보였다. 예술마을로 가는 길목에는 크리스마스실모양의 작고 빨간 열매가 달린 가로수가 늘어서 있었다.  구글에 물으니 실크코튼 나무라고 했다. 스마트폰 덕택에 길 가는 이에게 묻지 않아도 궁금증이 바로 해결됐다. 편리해서 좋았지만 이러다 타인과 말 섞을 일이 없겠다는 걱정도 됐다.  제주의 꽃과 나무들은 저마다 고유함을 드러내며 뭍에서 온 이방인들을 반겼다. 제주는 언제나처럼 평화로웠다.

  

  제주를 오기 전에 한 유튜브 방송에서 소설가 현기영씨가 제주 4.3 사건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았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84살의 작가는 담담한 어투로 자신이 보고 겪은 제주인의 삶을 말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 고향 선배로부터 제주 출신임을  밝히지 말 것과 사투리를 빨리 고치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했다. 빨갱이라고 손가락질을 받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느 학폭 사건에서 가해학생이 제주출신의 피해학생을 빨갱이라고 놀렸다는 기사를 보고 갸우뚱했다. 고등학생이 빨갱이라는 꼰대들의 낡은 표현을 쓰는 게 의아했는데 의문이 풀렸다. 그 방송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제주 4.3 사건의 실체를 몰랐다.  1947년 제주도 3.1절 기념대회를 구경하던 아이가 지나가는 경찰기마대에 부딪쳐 쓰러졌다. 그 장면을 보고도 무심히 지나치는 경찰에게 시민들은 항의했고 경찰은 그들을 향해 총을 발포해  그 자리에서 여섯 명이 죽었다. 이것이 제주 4.3 사건의 발단이었다. 그 일로 민간인과 공권력은 서로 적이 되었고 얼토당토않은 희생과 비극이 몇 년간 계속되었다. 당시 제주도민 십 분의 일이 사망했다. 6.25 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많았던 사건이라 했다. 7살 때 북촌리가 타오르는 것을 봤다는 작가의 과거사를 듣노라니 내 조국 대한민국의 드센 팔자가 참으로 안쓰러웠다.


  북촌리는 제주시 조천면에 자리 잡은 해안마을이다. 1949년 1월 17일 마을 사람 수백 명이 한날한시에 끌려 나와 목숨을 잃었고 마을은 불탔다. 그 동네에는 아기가 죽으면 묻던 너븐숭이라는 곳이 있다. 넓은 돌밭이란 뜻의 너븐숭이. ‘너븐숭이 4.3 기념관’을 찾았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자그마한 건물의 전시실 한 면은 북촌리 희생자의 이름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갓난아이부터 100세 어른까지 억울한 죽음의 기록이 담겨 있었다. 근처 함덕해변으로 갔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에메랄드 빛 바다를 감상하며 평온한 오후를 즐기는 중이었다. 그날 이전까지는 북촌리 사람들도 이곳에서 연애를 하고 산책을 하고 아이들은 헤엄을 치며 놀았을 것이다.  북촌리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공천포구가 있다. 그곳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마을을 따라 걸었다. 조금 가다 보니 한 할머니가 돌담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계셨다. 고요한 바다를 응시하며 햇살을 쬐는 그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여 살며시 옆에 앉아 말을 붙였다.  12살부터 바다에 들어가 소라를 잡았다는 94세의 할머니는 옆동네에서 이 마을로 시집와서 6남매를 두셨다고 했다. 일제강점, 4.3 사건, 6.25를 모두 겪으셨다는 그분의 표정은 잘 읽을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세상살이의 초월을 뜻하는지도 모르겠다. 갖은 풍상을 겪다 보니 희로애락이란 말도 별반 다르지 않음을 깨달으셨는지 어떤 이야기를 해도 같은 표정이었다. 자리를 뜨려는데 “제주에서 이곳이 해가 제일 잘 들어요” 하셨다. “네~ 그러네요. 볕이 좋네요.” 하며 나도 인사했다. 북촌리에서  공천포구는 불과 4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날 이후 두 마을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상상하기조차 버거웠다.


  십여 년 전 나는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다 몬주익의 학살 현장을 듣고 보게 되었다. 바르셀로나를 찾아 세상의 이편저편에서 오는 사람들은 몬주익 언덕에서 벌어졌던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기억할 것이다. 그곳에는 독재에 맞서 싸운 이들의 영혼이 잠들어 있다는 것을. 제주도에서 일어난 4.3 사건은 어떠한가. 그동안 수없이 제주를 다녀왔지만 나는 그 속을 들여다보지 못한 채 한라산을 오르고 올레길과 경치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좋다, 참 좋다.’만 외쳤다.  4.3 평화공원도 이번에 처음으로 찾아갔다. 내 나라에서 벌어진 일에 무심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마침 제주현대미술관에서는 ‘기억의 파수’라는 주제로 그날을 추모하고 있었다. 몬주익과 북촌리에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빈다.                                          (2023.04.18)

 


#함부르크#코펜하겐#바르셀로나#제주북촌리#몬주익#현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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