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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Apr 13. 2023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며칠 전 당나귀를 타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난다는 어느 여행가의 기사를 봤다. 산티아고를 당나귀와 함께라니 기발하다는 생각을 하다 내가 산티아고를 갔던 때가 떠올랐다.  2015년 가을, 친구와 스페인 여행을 했다.  피레네 산맥 북쪽에서 출발하는 ‘프랑스 길'  순례 코스를  밟아보자는 게 여행의 단초였다.  내가 살고 있던 뉴델리로 와서 며칠 머문 친구와 대략적인 큰 그림만 짠 다음 스페인으로 향했다.


   도착 다음날 새벽에 눈이 떠진 우리는 들뜬 기분에 호텔을 나와 근처를 무작정 걸었다. 기분 좋게 쌀쌀한 9월이었다. 마드리드 한복판 세라노에서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요리조리 다니다 보니  날이 밝았다.  떠오르는 해를 황홀하게 바라보는데 어디선가 버터향을 풍기며 빵 굽는 냄새가 났다. 향이 나는 곳을 따라가니 자그마한 카페였다.  갓 구운 크로와상이 입안에 들어가자 비로소 스페인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내 삶의 고비마다 곁에서 지켜준 30여 년 지기와 함께 하는 해외여행의 감회는 새로웠다. 장거리 여행을 견디는 내 체력이 기특했고 서울에서 델리까지 먼 길을 날아와준 자상한 벗이 고마웠다. 우리는 갈색으로 물들어 가는 오래된 가로수 사이를 걸으며 고색창연한 마드리드 시내를 만끽했다.  출출하면 맛집을 찾아 이국 음식을 즐겼다.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서는 거리의 악사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렸다.  집시댄서가 춤추며 드러내는 단단한 복근을 볼 때는 우리의 불룩 나온 배와 비교하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고 공원 벤치에서 쉬다가 ‘굳이 순례길을 가야 되나?’란 생각이 들었다. 스페인이 처음인 친구는 마드리드의 매력에 젖어 행복해했다. 친구와의 추억 쌓기라면 어디라도 좋았지만 여행의 목적을 생각하니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증명사진만은 찍어야 할 것 같았다.  


   아토차 역에서 산티아고행 기차표를 끊고 묵을 곳을 인터넷으로 예약했다. 차창으로 스치는 스페인의 시골풍경을 음미하고  삶은 계란을 까먹으며 가는  기차 순례길은 편안하고 즐거웠다.  티브이에서 산티아고를 걸어서 완주한 사람들이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하루에 25-30킬로를 걷는 강행군 속에서 깨닫는 삶의 의미와 자세를 들으며 대단하다 생각했다. 사실 몇십 킬로라도 걸어볼까도 했다. 하지만 당시 우리 둘 다 고행을 각오할 결연한 의지가 없었다.  고생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순례길의 종착지 산티아고 대성당은 숙소에서 보일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짐을 풀고 성당 앞 광장으로 갔다.  막 도착한 순례자들이 혼자 또는 무리를 지어 환호하고, 배낭을 멘 채 드러눕고, 사진을 찍고,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박수가 절로 쳐졌다. 그 현장에서 몇몇 한국 여성을 만났다. 그들은 직장에서 해고되고 애인과 헤어지고 등을 계기로 조개모양의 화살 표시를 좇아 이곳까지 걸어왔다고 했다.  자신의 짐을 등에 메고, 자신의 속도로, 여태껏 가보지 않은 길을 완주한 이들이 해답을 찾고 고국으로 무사히 돌아가기를 바랐다. 호텔 휴게실에서 쉬고 있는데 웬 키 큰 남자가 자전거를 들고 조용히 나타났다. 그는 고향인 독일의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왔다고 했다. 순례길에 관한 여행책자에서 읽었던 기억이 났다.  유럽의 각지에서 출발하는 여러 갈래의 순례길은 걷기도 하지만 말이나 자전거등 다른 수단을 이용하기도 한다고 쓰여있었다. ‘그러네, 인생길도 각자의 방식으로 가는 거지.’  엘리베이터가 없는 호텔을 자전거를 들고 4층까지 올라온 독일인은 다음날 새벽에 떠나고 없었다.


   산티아고에 가서 알게 된 사실인데 순례길은 대성당에서 끝이 나지만 많은 순례자들은 그곳에서 90킬로 떨어진 피니스테레에서 마무리를 했다. 버스를 타고 피니스테레로 갔다.  버스가 굽이굽이 달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았다. 까딱하면 물결 사나운 대서양 속으로 차가 굴러 떨어질 만큼 도로가 바다에 바싹 붙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류장마다 마을사람들이 내리고 탔다. ‘부에노스디아스’ ‘부에노스디아스’, 하며 버스기사와 승객은 정감 어린 눈빛을 주고받았다.  우리는 버스에서 알게 된 정순씨와 목적지인 등대까지 바다를 따라 이어진 4킬로 길을 함께 걸었다. 편찮으신 어머니와 함께 살던 그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순례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정순씨에게 스페인은 생애 첫 해외여행지였다. 주위의 걱정을 뒤로하고 그녀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채 하루에 20킬로를 뚜벅이처럼 걸었다. “무식하면 용감해지나 봐요.” 해본 적이 없으니 힘든 것을 견딜 수밖에 없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불결한 알베르게에서 빈대에 물려 팔이 벌겋게 짓무른 그녀를 보고 피하는 순례자들이 있었지만 약을 건네며 위로해 주는 사람들도 있더라며 웃었다. 무식한 게 아니라 긍정적이고 밝은 그녀의 품성이 이곳까지 이끈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절벽 아래로 등대가 보였고 검은 연기가 근처에서 피어올랐다. 가서 보니 옷가지며 신발이 드럼통 안에서 타고 있었다. 등대로 가는 입구에는 순례길의 상징인 조개껍질 문양과 0.00K.M.라고 새겨진 돌이 세워져 있었다.  ‘땅끝'이란 뜻을 지닌 피니스테레의 상징이었다.  순례자들은 더 이상 걸어서는 갈 수 없는 땅끝에 와서 과거를 잊고 새롭게 시작하는 각오로 길 떠날 때 입었던 옷과 신발을 태웠다. 숙연한 마음으로 순례자들이 남긴 흔적을 바라보았다. 순례길을 맛보자고 떠난 우리의 여행은 예정과 달리 땅끝까지 와버렸다.  사진사를 자처하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는 정순씨와 헤어지기가 섭섭했다. 우리는 갈리시아 지방의 명물인 문어를 안주삼아 맥주잔을 부딪히며 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산티아고로 돌아오니 비가 내렸다. 우산 사기도 애매해 비를 맞고 숙소까지 걸었다.  샤워를 하고 호텔의 휴게실에서 차를 마시는데 덩치 큰 두 사람이 들어왔다. 그들은 휴게실 한편에서 빗물이 떨어지는 검은색의 판초를 조심스레 벗었다. 놀랍게도 배낭을 짊어진 칠십 대의 할머니들이었다(내 짐작으로).  희끗희끗한 은발이 마치 영화배우 캐서린 햅번을 연상케 했다. ‘아, 저 나이에도 우아하고 멋질 수가 있구나.’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폴란드에서 왔다는 그들은 순례길을 중간지점에서부터 걸었다고 했다.  다음날 피니스테레에 간다고 방법을 묻길래 버스역의 위치와 버스시간을 알려주었다. ‘인생은 끝없는 자신과의 도전'이란 것을 일깨워 준 매력적인 분들이었다. 우리는 산티아고에 머무르며 기차로 주변 마을을 돌아다녔다. 어디를 가든 보이는 조개모양의 길표시는 산티아고 대성당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흘 후 마드리드로 돌아왔다. 여행 마지막 날 아시안 가게에 들러 컵라면과 숙주를 샀다. 생숙주를 라면 위에 듬뿍 넣고 친구에게 건넸다. “자, 잘 섞어서 먹어봐.” “후루룩, 잉?” “어때, 괜찮지?” “응, 맛있네~”.  우리는 숙주를 넣은 라면으로 그동안 기름졌던 위를 해장하며 떠날 채비를 했다.


  “너와 스페인에 갔다 온 게  꿈같아. 근데 라면에 숙주를 넣어서 먹어봤는데 그 맛이 안 나네. 네가 호텔에서 했던 대로 했는데…”  내가 산티아고 호텔입구에서 찍어준 사진을 카톡의 프사로 쓰는 친구는 요즘 손주 보느라 얼굴 보기가 힘들다. 우리가 캐서린 할머니 나이가 됐을 때 다시 한번 산티아고  GO! GO! 할 수 있으려나.                                                    (2021.10)


#마드리드#세라노#산티아고대성당#아토차기차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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