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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Apr 06. 2023

요가 지도자 과정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인도에서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시간 맞춰 돌아가는 것 중의 하나가 국내선 비행기였다. 뉴델리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벵갈루루 공항에 지연 없이 2시간 45분 만에 도착했다. 공항을 나와 마중 나온 사람들이 들고 있는 피켓을 살폈다. 내 이름이 보였다. 피켓을 든 이에게 다가가 반갑다는 시늉을 했다. 아쉬람을 통해 예약한 택시기사였다.  사이드 미러가 없는 차는 벵갈루루 시내를 곡예하듯 달렸다.  어수선한 도시 모습이나 택시 기사의 운전 스타일은 델리와 비슷했다. 혼잡한 벵갈루루 시내를 벗어나자 눈앞에 농촌 풍경이 펼쳐졌고 도로는 비포장길로 바뀌었다. 기사는 에어컨을 크고 차 창을 열었다.  열린 차창으로 흙냄새, 퇴비냄새가 먼지와 함께 들어왔다. 7월의 마이솔은 메리골드가 한창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논두렁 군데군데에 무리 지어 피어있는 진황토색 꽃들은 초록빛 논과 대비되어 시선을 끌었다.  인도 남서부의 공기는 촉촉했다.  대기가 건조하고 퀴퀴한 매연으로 눈이 따가운 델리와는 사뭇 달랐다.  5 시간쯤 달렸을까. 주위는 어두워졌고 마침내 택시는 어느 커다란 문을 들어섰다.


  2015년 7월 인도 남부에 위치한 마이솔에 왔다. 세계 각지에서 온 11명의 수련생과 1달 동안 생활하며 요가강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였다. 나는 유일한 동양인에다 나이가 제일 많았다. 입학식 날 요가원장은 푸자(힌두교의 종교의식)를 올려 수련생들이 무탈하게 과정을 마치기를 기원했다. 의식이 끝나자 일일이 수련생들에게 메리골드로 만든 꽃 목걸이를 걸어주고 이마에 빨간 점을 찍어 환영해 주었다. 이 곳에서 생활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아유르 요가 에코 아쉬람'은 외딴 시골마을 한가운데에 고즈넉하게 위치해 있었다. 요가와 멍 때리기를 빼면 할 것이 없는 평화로운 감옥 같았다. 우리는 일과표에 맞춰 하루를 지냈다. 오전 5시 반이 되면 아쉬람 직원이 치는 종소리에 눈이 떠졌다. 동트기 전 새벽공기는 한여름임에도 서늘했다. 홀까지 이슬 맺힌 풀을 밟고 걷다 보면 맨 발에 튀는 차가운 감촉에 잠이 달아났다.  사방이 트여 비가 들이치기도 하는 어두컴컴한 홀에 앉아 30분간의 명상을 했다. 명상이 끝나면 한 쪽 콧구멍에 소금물을 부어 넣고 다른 쪽 콧구멍으로 물을 흘려보내는 코 세척(네티)을 했다. 몸을 정화하는 요가의 행법이라는데 한동안은 소금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눈물과 콧물이 쏟아져 애를 먹었다.  그러고 나서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바라보며 태양경배 자세로 시작하는 요가 수련이 두 시간 정도 이어졌다.  드디어 아침 식사 시간이 되었다.  쌀과 차파티, 콩과 야채 위주의 채식단은 아쉬람에서 무공해로 키운 것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간이 안 밴 맹숭맹숭한 맛이었지만 수련의 일부라는 생각으로 먹었다. 새벽에 일어나 명상을 하고 몸을 정화하고 요가와 식사를 하는 동안은 묵언 시간이었다.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아도 되는 그 시간이 나는 편하고 좋았다.  수련생들은 학교 교사에다 물리사, 피트니스 강사 등 직업이 다양했다. 그중에 미국에서 온 중학교 과학교사는 인체 해부 시간에 선생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그녀의 당당함이 부럽기도 하고 기가 죽기도 했다. 영어는 왜 이렇게 나를 작게 만드는지.


  미국과 유럽에서 온 학생들 대부분은 인도가 처음이었다. 이들은 장거리 비행기를 타고 온 데다 달라진 환경으로 첫 일주일 간은 몹시 힘들어했다. 시차도 적응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행군을 하게 되니 몸살과 배탈을 앓았고 대상포진으로 고생하는 수련생도 있었다.  아쉬람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엘리자베스라는 영국에서 온 교사와 친해졌다. 그녀는 싱글맘이었다. 학교에서 방과 후 활동으로 학생들에게 요가를 가르친다고 했다. 어느 날 엘리자베스는 수업시간에 느닷없이 눈물을 쏟았다. 그녀는 당황했고 그 모습을 본 우리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밤새 고열로 고생한 엘리자베스는 이틑날이 되자 괜찮아졌다며 쑥스러워했다. 선생 말로는 요가수련을 하며 몸과 마음이 정화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언제나 평온해 보이던 그녀에게 남모를 부침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요가 강사가 되기 위해 그곳에 모인 수련생들은 나름의 고민거리를 안고 있었다. 나는 결혼생활의 위기를 맞았다. 주중엔 회사 일로 주말에는 MBA 과정을 밟느라 정신없는 남편을 봐야 하는 나는 외로웠다.  남편은 일을 핑계로 대화를 피했고 말을 시작하면 언쟁으로 번지곤 했다.  한 번은 수업시간에 세 발 머리서기 연습을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머리를 바닥에 대고 손바닥을 밀며 다리를 지면에서 들어 올렸다. 선생이 옆에 있으니 안심이 됐는지 자세가 웬만큼 잡혀졌다. 내 모습을 본 선생과 학생들은 “한나, 잘하고 있어"하며 격려를 해주었다.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누구의 도움 없이 머리와 양 손바닥으로 몸을 역자세로 만드는 뿌듯한 경험을 했다. 그날 저녁 식당에서 물리사로 일하는 베로니카가 내게 오더니, “한나, 오늘 참 멋졌어” 했다. 나는 “아니야. 제대로 한 것도 아닌데 뭘”하며 손사래를 쳤다.  “한나, 너는 왜 그렇게 부정적이야. 남이 칭찬해 주면 그냥 땡큐해.” 하며 윙크를 했다. 아들뻘의 젊은이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당황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았다. 나는 칭찬받는 게 쑥스러워 일단은 아니라고 부정부터 하는 버릇이 있었다.  나는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칭찬에 인색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베로니카의 말 한마디는 나를 돌아보게 했다.


  쉬는 시간이 되면 밀린 빨래를 했다. 인도 남부의 해는 뜨거워서 빨래가 금세 말랐다. 맑은 날씨에도 느닷없이 소나기가 뿌릴 때가 있어 널어놓은 빨래를 다시 하기도 했지만 비가 지나간 공기는 신선했다. 수련 과정이 3주째에 접어들자 우리는 실제로 요가를 가르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첫 2주 동안은 요가수업을 받았다면 나머지 기간은 학생들이  요가 선생이 되어 수업하는 과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선생과 학생 역할을 번갈아 하며 모의 수업을 했다. 나는 이론시험 예상문제를 달달 외우고 요가수업에 필요한 영어표현을 익히며 자신이 붙을 때까지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학창 시절 이렇게 열심히 했더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마지막 주 드디어 시험기간이 왔다. 수련생들은 최선을 다해 자신들의 기량을 발휘하고 함께 고생한 동료들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깐깐하던 과학선생은 졸업할 때가 되자 마음을 열었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오만으로 숨겼던 것 같았다. 이곳으로 오기 얼마 전에 이혼했다고 고백한 그녀가 결혼의 장수비결을 물었을 때는 민망하여 말을 얼버무리고 말았다. 졸업식날 수료증을 받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약한 모습을 들킬까 봐 이 악물고 견뎌낸 나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주었다. ‘한나야, 잘 버텼고 애 많이 썼다.’라고.


 수련생들은 자랑스러운 수료증을 들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서로의 앞날에 행운을 빌었다. 몇몇은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몇 사람은 인도에 더 머물면서 앞 날을 고민해 보겠노라며 길을 떠났다. 나는  5킬로가 빠진 가벼운 몸무게로 머리는 여전히 무거운 채 델리로 돌아왔다. 집안일을 도와주는 마야가 나를 보자 활짝 웃는 얼굴로  반겼다.  그녀가 내려준 진한 커피 맛에 집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한 달 만에 마주한 남편은 휴가를 냈다며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내밀었다.                                                                       (2021.09.)



#요가#요가지도자격증#인도#벵갈루루#마이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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