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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Nov 10. 2023

10KM 여행

  몇 달 전 친구 A와 그녀의 지인을 만났다. 지인은 풀마라톤을 두 번 완주했다고 했다. 하얀 피부에 하늘거리는 옷차림을 하고 있어 42KM를 뛸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은 겉만 봐서는 모른다더니. 보스턴 마라톤을 나갈 정도로 좋은 기록을 갖고 있다는 그녀는 그뿐 아니라 길냥이를 돌보는 한편, 길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줍는 착한 운동도 했다. 달리기를 즐기고 길고양이를 돌보고 쓰레기를 줍는 그녀를 보며 ‘원만구족(円満具足)’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지난해 이맘때 세종시에 집을 지어 사는 A를 보러 갔다.  A도 걷고 뛰기를 좋아한다. 좀 걸을 테니 편안한 복장으로 오라 해서 운동화를 신고 갔다. 지금의 세종시는 내 어머니의 고향인데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다. 세종시의 여러 청사는 넓게 퍼져 있었다. 청사가 있는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친구의 집 방향으로 걸었다. 이름도 바꾸고 땅도 갈아엎은 신천지는 낯설었다. 뿌연 안갯속에서 보일 듯 말 듯 남아 있는 기억을 불러 올 과거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세종시를 여기저기 걷다 마침내 친구 집에 닿았다. 하루에 두 시간 이상을 걷는다는 A 덕분에 그날 밤은 푹 잤다.  

  

  A가 한 번은 내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마침 그날 점심을 걸렀던 나는 허겁지겁 밥에 라면을 말아 국물까지 비우고 전날 남은 어묵탕도 먹어 치웠다. 그 모습을 본 친구는 기함을 하며 나를 끌고 집 근처 운동장에 갔다.  A는 간단한 몸풀기를 하더니  뛰기 시작했다.  나도 뛰려고 했지만 음식이 가득 든 위로는 무리였다. 나는 5바퀴 걷고 친구는 12바퀴를 뛰었다. 그날 이후 가끔 혼자 저녁에 운동장을 돌았다. 해가 진 운동장은 축구나 농구를 하고, 뛰거나 걷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그 무리 속에 섞여 있다는 유대감이 없다면 세상에 재미없는 운동이 400미터 트랙에서의 달리기가 아닐까.

  

    그러다 우연히 DMZ평화 마라톤이라는 광고를 봤다. 10KM와 하프마라톤 두 가지였다. A와 마라톤을 한다는 그 지인과 그들의 탄탄한 몸매가 떠올랐다. ‘한번 해봐?!’ 지극히 가벼운 기분으로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고 참가비를 냈다. 시동이 걸리면 일단 저지르는 본성이 발동하였다. 대회는 두어 달 후였다.  2005년  카타르에 살고 있을 때 도하에서 5KM 달리기 대회가 있었다. 곧 있음 집을 떠날 아들과의 추억도 만들 겸 가족이 다 같이 참여하기로 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달리기 대회였다. 5킬로는 생각보다 긴 거리였다. 걷다가 뛰다가 했던 것 같다. 카타르는 낮 기온이 40도를 넘는 곳으로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찼다.  등수 안에 들지는 못했지만 협찬을 했던 맥도널드에서 주는 사은품을 받았다.  

  

  10KM를 덜커덕 신청했지만 연습은 잘 되지 않았다. 하루 이틀 핑계를 대다 날이 다가오자 참가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대회를 하루 앞두고 행사장으로 가는 길과 대회 시작 시간을 살폈다. 아침 9시까지 도착해야 하니  7시 반에는 집을 나서야 했다.  일어나게 되면 가고 아니면 말지 뭐 하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잤다.  대회 전날 우연히 이웃집 친구와 안부를 주고받다 내일 실은 이런 게 있는데 맘이 반반이라고 지나가는 말로 흘렸다. 마라톤 대회날 아침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6시 45분이었다. 새벽에는 절대 문자를 보내지 않는 사려 깊은 이웃집 친구에게서 톡이 왔다. ‘응원할게요!’  운명이다. ‘그래 가자!’

  

   대회장은 넓었고 참가자는 많았다.  화창한 날씨였다. 18년 전 카타르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에 놀랐다. 동호회, 가족, 친구, 연인들, 개와 함께 온 사람들은 즐거워 보였다. 나만이 혼자인 것 같았는데 대신 달리기에 집중할 수 있으니 홀가분했다. 민소매에 쇼트팬츠 차림이라 으스스한 감이 들어 쉬지 않고 몸을 풀었다. 잃을 것이 없으니 긴장이 안 됐다. 그래서 그런지 몸이 가벼웠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고 천천히 걸음을 뗐다. 몇 분 지나 인파가 흩어지기 시작하더니 내 앞에 공간이 생겼다.  뛰기 시작했다.  10KM 그룹이 먼저 출발하고 10분 후 하프마라톤팀이 뒤이어 뛰었다.

  

  대회장에 오면서 1KM가 됐든, 2KM가 됐든 걷지 말고 뛰겠다고 다짐했다. 십리는커녕 1KM도 못 가서 숨이 찼다. 다행히 발병이 나거나 이상한 증세는 없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2KM 이상을 달려보는 첫 경험이었다.  사람들이 나를 제치고 달려 나갔다. 나는 점점 뒤처졌다. 얼마쯤 갔을까. 커플로 보이는 남녀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전반은 오르막인데 이것만 넘어가면  후반 5KM는 내리막이 되고 숨도 편해질 테니 조금만 참아봐." “알았어.” 마치 내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주술에 걸린 듯 내 몸은 서서히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달리다 걷다를 반복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를 앞질러 달리던 사람이 숨 고르며 걷는 사이에 나는 그 앞을 달려 지나갔다. 얼마 있다 같은 이가 나를 앞서 지나갔다. 걷고 있는 그를 앞지르며 나는 달렸다. 꾸준함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언제부터인지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만의 속도로 달리기를 이어갔다. 반환지점에서 운영요원이 선수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나도 그들에게 박수를 쳤다. 왔던 길을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눈앞에 펼쳐진 길은 확실히 내리막이었다. 5KM가 지나자 숨 쉬기가 편해졌다. 내 몸이 상황을 이해하고 적응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감이 슬며시 올라왔다. 이러다 10KM 뛸 수도 있겠는데?!  옆에서 아이와 걷고 있던 아이 엄마가 이제 절반만 남았다며 조금만 힘내자고 아이를 다독였다. 그 말이 내게도 힘이 되었다.  

   

  7.5KM를 지나니 목이 마르고 몸은 납덩이를 단 것처럼 무거웠다. 그때 아들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이제부터는 아들을 걸고 내가 뛴다.’  객지에 사는 아들의 무탈을 빌며 달렸다.  ‘끝나고 뭘 먹지? 오늘은 고기다. 소고기 먹어야지. 어디서 먹지?’ 이 생각을 하며  달렸다. ‘새벽에 문자 준 그이에게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도 달려야지.’ 그러면서  또 달렸다. 생각은 꼬리를 물다가 멈춰 섰고 더 이상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리가 뻣뻣해질 무렵 어렴풋이 뭔가가 내 눈에 들어왔다. 종점이었다.  앞으로 1KM만 견디면 고행이 끝날 것 같았다. 마이크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완주한 선수의 등번호를 부르는 소리였다. 뛰면서 앞가슴에 단 내 번호를 확인했다. 2404번. 2404번이 들어오고 있다는 아나운서의 멘트가 들렸다.  혹시 실격 처리 될까 봐 종점을 지나고도 50미터는 더 달린 것 같았다.  나 홀로 첫 10KM 여행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15여 년 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할 때 내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나도 언젠가 풀마라톤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42KM 완주는 어떤 기분일까. 내가 모르는 나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나 보았다. 이번에 42KM의 1/4을 뛰었으니 다음에는 하프마라톤을 해보려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책에서 죽으면 본인의 묘비에 ‘나는 적어도 걷지는 않았다.’는 문구가 새겨지면 좋겠다고 썼다.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았다는 작가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말이다.  1시간 18분 동안 나도 결코 걷지는 않았으니 그날만큼은 내가 대견했다. 나를 달리기로 이끈 A에게 톡을 보냈다. ‘십 킬로 완주했어~’ ‘오~ 잘했어~’ 쿨한 내 친구 A는  이번 주말 홍콩에서 15KM 달리기를 한다.  친구야 파이팅!                                                                                         (2023.11.)


 #무라카미하루키#마라톤#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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