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비상계엄,
그리고 캘리포니아로
지난 12월 3일 저녁 10시 23분, 윤석렬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 순간, 나는 미국 여행을 20여 일 앞두고 있었다. 머릿속을 스친 첫 생각은 단순했다.
“어, 이거 미국에 갈 수 있는 거야?”
온갖 불길한 시나리오가 머리를 스쳤다. 공항이 닫히면 어떡하지? 출국 직전에 여권이 무효화된다면? 아니면, 미국에서 입국을 거부당하면? 그날 뒤척이며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계엄은 해제되어 있었다. 다행인 건지 허탈한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예정대로 캘리포니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여행의 묘미는 떠나는 날까지 달력을 보며 손꼽아 기다리는 데 있다. 또, 현지에서 무엇을 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큰 설렘이 된다. 12월 2일까지는 그랬다. 일 년 만에 아들이 사는 캘리포니아에 가서 바닷가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공원 벤치에 앉아 글을 쓰고, 동네 풍경을 스케치하는 내 모습을 떠올렸다. 하니크리스피 사과, 속이 하얀 넥타린, 유기농 딸기, 크고 단단한 블루베리도 맘껏 먹으리라 다짐했었다.
그런데, 비상계엄이라니.
다행히 기적과도 같이 한밤의 해프닝으로 사태는 정리됐다. 윤석렬은 자살골을 넣었고, 탄핵안이 가결되었으며, 곧 구속될 것이라는 뉴스가 연일 쏟아져 나왔다. 한국으로 돌아올 즈음이면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희망과, ‘혹시나’ 하는 불안이 미국에 머무는 한 달 내내 교차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색과 균형
일 년 만에 찾은 샌프란시스코는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바다를 내려다보며 촘촘히 줄지어선 집들은 저마다의 개성 있는 색을 뽐내고 있었다. 올리브색, 푸른색, 베이지색, 그리고 과감한 핑크와 보라색까지. 나 같으면 감히 시도하지 못했을 색의 조합이었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이 도시는 노숙자가 많기로 유명하다. 몇 년 전만 해도, 약물에 취해 길 한가운데 주저앉은 사람, 개를 데리고 구걸하는 이들, 커피컵을 들고 행인들에게 말을 거는 노숙자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리가 유난히 깨끗했다. 아들에게 이유를 묻자, 작년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시 당국이 이들을 강제로 격리시켰다고 했다. 일종의 도시미화 프로젝트였던 셈이다. 그들이 다시 돌아올지 아니면 영영 사라질지는 알 수 없다. 자유가 방종으로 흐를 수도 있고, 지나친 통제는 사회를 경직시킨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은 공동체의 어려운 과제 같다.
샌프란시스코의 또 하나 흥미로왔던 점은 운전석이 텅 빈 무인 자율주행 택시들이 도로를 활발하게 다니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실험 단계에 불과했던 자율주행이, 이제는 일상이 된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놀랍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기존 택시 기사들의 생계가 걱정됐다. 변화는 과연 누구에게나 이로운 것일까.
미국에서 한국 영화를 보다
넷플릭스가 없던 20여 년 전, 미국에서 한국 영화를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2000년대 초, 휴스턴에서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란 영화를 극장에서 본 이후 처음으로 이번에 미국의 영화관에서 한국 영화를 관람했다. 마침 근처 극장에서 ‘하얼빈’ 조조 상영을 한다기에 망설임 없이 갔다. 사실, 평소라면 역사 속 인물을 다룬 영화는 내 취향이 아니어서 굳이 찾아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윤석렬이 권력을 남용해 내란을 일으킨 덕분에, 나는 새삼 안중근이란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됐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좌석이 180도로 젖혀지는 호화로운 극장이었지만, 관객은 달랑 여섯 명. 모두 한국인이었다. 왠지 그들도 비장한 심정으로 영화에 몰입하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가 끝나자 누군가 조용히 박수를 쳤다.
추운 겨울, 한국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려는 안중근의 모습은 묵직했다. 안중근역을 맡은 배우가 현빈이어서 보게 된 것도 한몫했지만, 결국 안중근만을 떠올리게 되는 영화였다. 서른 살. 아내와 자식도 있는 젊은 나이에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었던 그 용기는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신앙일까, 애국심일까, 아니면 무엇일까.
어느 청년과 안중근
지난 12월 3일, 계엄군의 장갑차가 국회를 향해 다가왔을 때 한 젊은이가 그 앞을 가로막고 섰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시민들도 하나둘 그 옆에 서서 장갑차를 막았다. 이후, 그 청년의 인터뷰가 공개됐다.
“비상계엄 소식을 듣고 일단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있는 고양이 밥을 넉넉히 줬어요. 혹시 모르니까요. 그리고 국회로 갔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요.”
안중근과 그 청년, 우리는 그들에게 빚을 졌다.
트럼프, 그리고 송대관
2025년 1월 21일,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다. 온갖 스캔들을 뒤로하고, 여든 살의 트럼프는 다시 한번 백악관의 주인이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힘센 노인이 된 셈이다. 이혼설이 끊이지 않았던 그의 부인, 멜라니아는 검은색 모자를 눌러쓰고 남편 곁에 조용히 서 있었다. 키가 비정상적으로 훌쩍 자란 막내아들이 하객들을 내려다보는 모습도 카메라에 자주 잡혔다.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하며 희망에 찬 미국을 보니, 대한민국의 현실이 더욱 답답하게 느껴졌다. 안중근 의사가 목숨 바쳐 지키려 했던 나라가 무능하고 사악한 대통령 때문에 혼란에 빠져 있다니, 씁쓸함을 넘어 분노가 밀려왔다. 어서 이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이 끝나고 대한민국에도 봄이 찾아오길 바랄 뿐이다.
어제, 가수 송대관 씨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팬은 아니었지만, 동시대를 살며 그를 지켜보았던 터라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트럼프와 송대관은 같은 해에 태어났다. 한 사람은 자수성가했고 다른 이는 타고난 금수저였다. 한 사람은 인생의 막을 내렸고, 다른 이는 인생의 절정기에 있다. 하기사 인생을 팔십까지 살았으니 그리 원통할 일도 없지 싶다. 송대관 씨의 명복을 빈다.
헌법재판소와 안중근
안중근이 훌륭한 것은 그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정정당당한 군인이었다. 일본군 우두머리가 포로로 잡혀왔을 때 부하들은 그를 죽이려 했지만, 안중근은 그 일본군이 군인이기 이전에 가족의 가장임을 상기하며 풀어주었다. 안중근 덕분에 목숨을 건진 그 일본군은 이후 안중근을 죽이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결국 실패했다.
지금 헌법재판소에서는 윤석열의 탄핵심판이 열리고 있다. 계엄 사령관과 관련 군인들은 구속되었지만, 정작 윤석렬은 수십 명의 변호사들을 대동한 채 모든 죄를 부하들에게 떠넘기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울화가 치민다. 저런 자가 안중근이 목숨 바쳐 지키려 했던 대한민국의 리더였다니. 안중근이 지하에서 벌떡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 윤석열의 속살이 처절하게 드러나고 있는 요즘, 참 허탈한 기분이다. (202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