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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오카현 자전거 여행

by 김현희

시즈오카 공항에 내리니 이미 어둑어둑했다.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고 점검을 마친 뒤 10km 떨어진 시마다 시의 숙소를 향해 첫 주행을 시작했다. 헤드라이트와 자전거 뒤의 빨간 불을 켠 채, 앞서가는 남편을 조심스레 따라갔다.(시력이 나쁜 나는 어두워지면 두려움이 앞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는 완전히 어둠에 잠겼다.


남편 자전거의 빨간 불빛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쓰며 페달을 밟았다. 시골의 어둠은 깊고 짙었다.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 불빛이 잠시 주변의 풍경을 드러내곤 했다. 자전거 핸들을 꽉 잡고 조심조심 달렸다. 공항에서부터 줄곧 이어지던 내리막 길이 끝나고 평지에 이르렀다는 느낌이 들자 긴장이 조금 풀렸다. 마을의 집들에서 듬성듬성 흘러나오는 희미한 불빛이 이곳이 시즈오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렇게 긴장감과 안도감 속에서 첫날밤이 지나갔다. 이튿날 아침 호텔 창가에서 바라본 시마다 시는 특별한 인상 없이 조용한 작은 마을이었다. 띄엄띄엄 서 있는 건물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하마마쓰까지 태평양 연안을 따라 달리는 삼박사일 일정 두 번째 날, 본격적인 자전거 여행이 시작됐다.


호텔에서 아침을 든든히 먹고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다에 다다랐다. 태평양은 파도에 일렁였고 서퍼들이 까만 점처럼 보였다 사라졌다. 모래사장 옆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우고 자유로운 영혼들의 움직임을 감상하다가, 서핑하러 온 남자친구를 따라왔다는 여성과 몇 마디 인사를 나눴다.


“오늘 파도가 좋네요.”

“ 네, 어젯밤에 비가 와서 그런가 봐요.”


끝없이 펼쳐진 연안에는 서핑족들이 흩어져 각자의 파도타기를 즐기고 있었다. 요란한 음악이 흐르는 카페도, 모텔도, 식당도 보이지 않는 한적한 해변 풍경은 마음을 차분하게 했다.


길을 따라 다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자전거 길은 이어졌다 끊어지기를 반복했다. 자전거 도로를 정비하는 공사로 인해 폐쇄된 구간은 지도에 업데이트되어있지 않았다. 임시 자전거 도로를 찾느라 한참을 헤매기도 했다. 그렇게 저렇게 달리다 보니 허기가 졌다. 마침 길 옆에서 식당을 발견했다. 식당 이름은 ‘미라클.’ 꽤 넓은 식당의 주차장에는 소형차 몇 대가 서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연식이 느껴지는 카운터와 테이블에 한 팀씩 손님이 있을 뿐 내부는 한산했다. 배가 너무 고파서 메뉴판을 보자마자 이것저것 시켰지만 직원이 양이 많을 거라며 만류했다. 그녀의 조언을 따랐지만 결국 추가 주문을 하게 됐다.


경험으로 본 미국과 일본의 식당: 미국에서는 처음 식당에 가면 일인일식을 기본으로 주문하지만 곧 양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남긴 음식을 포장해 가고 이후로는 양을 줄여 주문하게 된다. 한편 일본 식당에서도 일인일식이 기본이지만, 양이 생각보다 적어 추가 주문을 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날도 일본인 일인의 음식 ‘적정량’은 내 배를 채우기엔 부족했다.


11월이었지만 종일 달리니 땀이 많이 났다. 식사를 마치고 물통에 물을 채우는 모습을 본 직원이 새 통에 차가운 물을 가득 담아왔다. 고맙다며 인사를 하는데 주방에서 다른 여성이 나와 차가운 녹차 음료수 두 병을 선물로 건네주며 나이를 물었다. 우리 부부의 나이를 밝히자 그녀는 자신이 일흔두 살, 주방장이자 주인인 남편은 여든이라고 했다. 식당을 45년 동안 운영했으며 앞으로 10년은 더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인은 친절하다. 하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친절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일본인과의 만남은 처음이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우리 부부를 보며 느꼈을 동지애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우리가 일어서려 하자 주방으로 달려가 형형색색의 색종이로 만든 (*오리가미) 전구 크기의 공 모양 장식을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자전거 여행에서는 짐을 최소화해야 하기에 내심으로는 난감했지만 그녀의 진심이 느껴져 거절하지 못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우리의 다음 행선지를 묻더니 꼭 전화를 해달라며 명함을 건넸다. 길에서 만나는 뜻밖의 조우가 여행의 매력이지만 이 새로운 매력 앞에서는 잠시 멍해졌다. 받은 선물을 집까지 무사히 수송할 자신이 없었다. 시한폭탄을 쥔 듯한 기분으로,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공을 건네며 말했다. “이거, 터지지 않게 잘 운반해 줘.”


하마마쓰 방향으로 갈수록 공사 구간은 많아졌고 자전거 도로는 끊어져 찾을 수가 없었다. 서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트럭이 오가는 도로 한쪽에서 달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15 km 정도를 남기고 포기하려니 망설여졌다. ‘목표 달성보다 목숨이 우선이지’ 하는 결론을 내리고 두 번째 밤을 보낼 숙소에 전화를 했다. 상황과 위치를 설명하고 택시를 부탁했다. 작은 동네라 택시도 여의치 않았지만 숙소 직원의 친절한 도움으로 택시가 와 주었다. 자전거를 싣고 안도의 숨을 내쉬자 곧 창밖은 어둠에 잠겼다.

20여 분을 달려 도착한 숙소 주변은 더 깜깜했다. 밤하늘의 별빛이 더 밝을 정도로 고요했다. 편의점 조명하나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다행히 숙소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울 수 있었다. 숙소 이름은 ‘마루겐 여관.’ 겉모습은 호텔 같았는데 객실 문을 열자 다다미 방이었다. 남녀가 번갈아 사용하는 대욕장에서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방으로 돌아와 정갈한 요와 이불을 깔고 덮으니 생각할 틈도 없이 잠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 창문을 열어보니 마루겐 여관은 밭과 비닐하우스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런 곳에 호텔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체크아웃을 하려고 카운트로 가니, 방 열쇠를 통에 넣으라는 안내문 옆에 테이크 아웃용 주먹밥이 놓여 있었다. 간 밤에 우리 부부의 식사를 만들어준 분의 솜씨임이 틀림없었다. 머무는 곳에서 마주하는 정성과 여러 형태의 아침식사는 여행의 특별한 기억을 더욱 깊게 새겨주는 것 같다.


이제 마지막 코스인 하마마쓰까지 약 40 km. 날씨는 맑았고 기온도 적당했다. 파도가 도로 위로 튀어 물기가 있는 해안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하마마쓰에 가까워지며 사나루코 호수에 들렀다. 산책하거나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의 여유로운 모습, 그리고 길게 뻗은 호수의 형상이 독일 베를린 외곽의 그뤼네발트 호수를 떠올리게 했다. 선탠을 하는 이는 보이지 않았는데, 이는 문화의 차이일까? 아니면 그저 계절 탓일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도 두 호수를 잇는 가장 큰 공통점이 있었으니 바로 인공 조형물을 최소화한 자연 속에서 유유히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두 풍경이 겹쳐지며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마마쓰 성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동상이 있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수가 일본에서는 **‘출세’의 신으로 떠받들 여지는 모습은 묘한 기분을 자아냈다. 시내에 ‘출세’라는 이름의 식당 간판을 보고 처음에는 특이하다고 생각했지만, 동상을 보고 납득이 됐다. 하긴 한국에 이순신 버거가 있다면 일본에 ‘출세’ 식당이 없으란 법도 없었다. 인생 여정의 3/4을 지난 지금도 세상은 여전히 넓고 새롭다. 이번 여행은 내가 아직 얼마나 더 느끼고 배울 것이 남았는지 일깨워 주었다. 체력이 허락하는 한 더 많은 곳을 보고 만지고 느끼고 싶다. 비행기를 기다리며 미라클 식당 안주인에게 전화했다. 여행 마무리 잘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기회 되면 또 보자며 서로의 건강을 빌었다. お元気でね!


첫날 시즈오카공항 - 시마다시

10.57km 1 h11 m

둘째 날 시마다시 - 토요하마

65.12km 5h06m

셋째 날 이와타 - 하마마쓰

48.7km 3h51m

넷째 날 하마마쓰

17.7km 1h56m

총 거리 141.56km


*오리가미: 일본의 전통 종이접기. 종이를 접어서 다양한 형태를 만듦. 예) 종이학

**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을 떠올리는 일본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낮은 신분에서 시작해 일본 통일을 이룸. (20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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