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팔월을 독일의 베를린에서 지냈다. 언제부터인지 베를린이란 도시에 꽂혀 한번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왜 베를린이냐며 사람들이 물었다. 그러게 왜 베를린이지? 생각해 보니 일본 여성작가 두 명의 힘이 컸다. 사노 요코와 타와다 요코. 사노 요코는 2010년에 사망했고 타와다 요코는 지금 베를린에 살고 있다.
1938년생 사노 요코는 그림책 <백만 번을 산 고양이>를 쓴 그림책 작가이자 에세이스트인데 베를린에서 석판화를 공부했다. 1960년생 타와다 요코는 이십 대 때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홀로 독일로 건너가서 유학했으며 일본어와 독일어 두 개 언어로 글을 쓴다. 내가 좋아하는 두 사람이 베를린과 인연이 있다는 점이 베를린 한 달 살이를 부축인 게 아닌가 싶다.
베를린은 대중교통이 잘 돼 있어 다니기가 편했다. 게다가 구글맵 덕에 독일어를 몰라도 길 찾기가 되니 서울보다 한 배 반이 크다는 독일의 수도를 편하게 다녔다. 베를린의 지하철은 개찰구가 없었다. 개찰구가 없으니 사람들은 유모차, 자전거, 반려견과 함께 쉽게 지하철을 이용했다. 유모차가 있거나 휠체어를 탄 사람은 누구의 도움 없이 지하철 역을 드나들었다. 덩치가 사람 못지않은 베를린 반려견들은 익숙하게 지하철을 타고 얌전하게 바닥에 앉아 있다 주인이 내리려고 하면 벌떡 일어나 주인을 따라 내렸다. 자전거를 번쩍 들어 지하철 역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도 있었다. 나만이 이들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지하철과 버스의 차량 외부에는 반려견, 유모차, 자전거 그림이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었다. 버스에는 기사가 있는 앞문과 중간문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 두 문을 자유롭게 이용했다. 버스 기사는 티켓을 확인하지 않았다.
나는 한 달짜리 교통 패스권을 끊어서 다녔다. 버스를 처음 탔을 때는 기사에게 패스권을 보여주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냥 타고 내리기에 나도 다음부터 그들처럼 했다. 지내는 동안 딱 한 번 검침원이 지하철에서 티켓 검사하는 것을 보았다. 지하철의 양 쪽 끝에서 두 사람이 가운데 칸으로 소몰이 하듯 다가오며 승객의 티켓을 확인한다더니 과연 그랬다. 마침 내가 탄 칸이 중간 지점인 모양이었다. 두 검침원이 내가 있는 칸에서 만나더니 함께 지나갔다. 티켓 없이 탄 사람은 없어 보였다. ‘과연 선진국이군!‘ 하고 배울 게 많은 도시라며 혼자 감탄했다.
베를린에서 알게 된 한국청년이 저가 버스와 기차를 이용해 주변 도시를 다녀오는 팁을 알려 주었다. 그 덕분에 라이프치히를 잘 다녀왔다. 라이프치히는 플릭스라는 버스를 타면 편도 두 시간 거리에 있었다. 베를린에서 약간 동쪽으로 내려가면 라이프치히와 같은 선상에 드레스덴이란 옛 도시가 있다. 두 시간 반이면 갈 수 있어 같은 플릭스 버스를 예약했다. 아침 8시 출발이었다.
아침에 나갈 차비를 하는데 출발이 한 시간 지연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잘 됐다 싶어 가면서 먹을 과일을 챙기는데 원래 시간으로 다시 바뀌었다는 문자가 또 왔다. 버스 출발까지 삼십 분밖에 시간이 없었다. ’이게 뭔??‘하면서도 서두르면 되겠다 싶어 우버택시를 불렀다. 택시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예상 도착 시간을 보니 8시 1분이었다. 버스 터미널에 거의 왔을 때 택시가 신호대기로 섰다. 세워 줄 것을 부탁하고 냅다 달렸다. 8 시였다. 지들이 멋대로 시간을 바꿨으니 좀 봐 주겠지,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드레스덴이라고 쓴 승강장을 찾아 헤맸다.
한 승강장에서 ‘8시 드레스덴’이란 글자가 보여 안도했으나 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벌써 출발했나 싶어 두리번거리는 사이에 다른 도시의 이름과 시간표로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버스가 출발한 게 분명했다. 불과 1-2분 사이에… 우왕좌왕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한 젊은 여성이 말을 걸어왔다. 비엔나 간다는데 알고 보니 같은 버스였다. 드레스덴을 경유하는 버스의 종점이 비엔나였던 것이다. 그녀도 같은 처지였다. 안내 데스크에 물어보니 아직 출발하지 않았다며 문자를 계속 확인해 보라는 희미한 말을 했다. ‘이런 일이 독일의 수도에서 벌어지다니.’ 우리나라 같았으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데. ‘천안발 **고속 1분 연착’이란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알림 전광판이 눈에 어른거렸다.
별 뾰족한 수가 없어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비엔나 간다는 여성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페루에서 온 그녀는 직업이 치과 의사로 독일 소도시의 병원에서 근무한다고 했다. 처음 듣는 도시 이름이었는데 아름답다며 놀러 오라고 사진을 보여줬다. 그녀의 꿈은 노르웨이인지 핀란드(아무튼 북유럽)에서 사는 것인데 그곳의 물가가 너무 비싸 일단은 독일에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페루 같은 더운 나라에서 살다가 추운 데서 살아야 하고 무엇보다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숨도 쉬지 않고, 재밌다고 답했다. 이제 이십 대 후반의 그녀 왈, ‘한번 뿐인 인생인데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고 싶어요.’ 그녀는 비엔나에서 하는 영국 가수그룹 <콜드플레이> 공연을 보기 위해 그녀가 사는 소도시에서 베를린으로 와서 버스를 갈아타려고 기다렸던 것이다. 절대로 버스를 놓칠 수 없다며 울상을 짓는 그녀의 애절함 때문인지 버스는 예정대로(?) 9시에 출발했다. 드레스덴에 내리면서 그녀의 앞날과 도전에 행운을 빌었다.
엘베 강으로 양분된 드레스덴은 예뻤다. 하지만 아침부터 한바탕의 소동 뒤라 드레스덴의 멋진 풍경이 생각만큼 즐길 수없었다. 나는 과거의 경험을 새로운 환경에 대입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도착하니 배가 고팠다. 라이프치히는 역에서 가까운 곳에 광장이 있었고 주변에는 식당이 줄지어 있었다. 그곳에서는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사람 구경하고 주문한 음식에 달려드는 파리와 벌을 쫓으며, 여유로이 브런치를 즐겼었다. 비슷한 상상을 하며 드레스덴에 내렸으나 도시의 구조가 완전히 달랐다. 광장이 있긴 했으나 관광객이 넘쳐나는 곳에서 편안히 즐길 분위기는 아니었다. 대충 끼니를 때우고 더위를 뚫고 다니려니 금방 지쳤다.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니 같은 경험을 또 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플릭스 버스는 기차도 같이 운영했다. 시간표를 확인하니 마침 예약한 버스 시간보다 일찍 출발하는 기차 편이 있었다. 버스보다는 기차가 정확하겠지 하며 기차표를 사러 창구로 갔다. 제일 빨리 출발하는 표를 달라고 하니 한 시간 뒤에 출발하는 기차가 있다고 했다. 휴대폰으로 확인한 시간대의 기차가 그새 한 시간 지연된 것이었다. 찜찜했지만 ‘설마, 기차’인데 하며 일단 표를 샀다. 원래 예약한 버스보다 출발 시간이 빨랐고 가는 시간도 덜 걸렸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역 근처의 슈퍼에 가서 장을 봤다.(독일은 일요일이면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다. 그날이 마침 토요일이었다.) 쇼핑한 물건을 들고 역으로 가 시간을 확인하니 우리 기차의 출발 시간이 또 한 시간 늦어졌다. 불안감과 짜증이 몰려왔다. 기차역의 전광판에는 여러 기차 편이 지연됨을 알렸다. 플랫폼에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바닥에 주저앉은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느긋했다. 인도의 어수선한 기차역이 떠올랐다. 결국 기차는 예정 시간보다 두 시간 늦게 왔다. 여행이란 기존의 습관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평생 잊지 못할 기차여행이었다.
영국과 세계 최초를 다투며 1800년대에 시작된 독일의 기차는 이제는 철로가 낙후되어 국가적인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시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공청회를 거치는 등 국민의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시간과 돈이 드는 문제라 독일인은 불편함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았다. 정확성으로 정평이 난 독일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었고 내 사대주의에 대한 일침이 되는 사건이었다.
(202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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