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 남편이 미국의 휴스턴으로 발령이 났다. 잔디 깔린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된 아들은 개를 키우자며 졸랐다. 형제가 없는 아들의 정서에 좋겠다 싶어 개를 입양하기로 했다. 어느 날 신문에서 골든리트리버 분양을 한다는 광고를 보고 아들과 그 집을 찾아갔다. 생후 6주 된 새끼 8마리가 어미 개 곁에서 고물거리고 있었다. 비슷비슷한 가운데 왠지 눈이 가는 한 녀석을 조심스레 들어 안았다. 내 품을 파고드는 녀석의 체온이 부드러운 털을 통해 전해졌다. 다른 강아지들을 살펴보던 아들이 내게서 그 강아지를 건네받고는 ‘엄마, 얘가 좋아’ 했다. 인연이다 싶었다. 강아지를 안고 곧장 ‘PETS MART’로 향했다. 미국에 처음 와서 슈퍼마켓의 규모에 놀랐었는데 애완동물 가게 역시 입이 벌어질 정도로 컸다. 90년대에 브리지드 바르도란 프랑스 배우가 개를 먹는 한국인을 보고 경악한 나머지 한국 제품 불매운동을 주도하여 세계 토픽 뉴스에 난 적이 있었다. 남의 문화를 지네들 잣대로 판단하는 그녀의 태도에 반감이 일었지만 그녀가 한국인이었다면 동참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그때 그 시절 한국에서는 ‘개 삽니다'라는 광고가 심심찮게 보였고 시장에서 개고기를 버젓이 팔았다. 개와 집안에서 같이 생활하는 미국인을 보니 그 프랑스 배우가 우리를 야만인이라며 흥분한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마리의 건강검진차 들린 동네병원 수의사는 골든리트리버가 자궁암에 약하고 생리를 하게 되면 원치 않는 임신을 할 수 있으니 나이를 더 먹기 전에 자궁적출 수술을 받도록 권했다. 생리하는 마리를 남편과 아들이 보는 것도 민망하고 건강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동의했다. 무자궁인 마리는 수캐가 와서 킁킁대면 나를 쳐다보고는 난감해했다. 자신을 개가 아닌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 이기심 때문에 본성을 잃어버린 마리에게 두고두고 미안한 결정이었다. 나와 마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했다. 아침에 등교하는 아들을 바래다 줄 때도, 공원 산책도, 쇼핑도. 친구가 별로 없던 휴스턴에서 마리는 나의 베스트 프렌드였고 막내둥이였다. 휴스턴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는 갈바스톤이란 바다 마을이 있다. 낚시를 좋아하는 남편을 따라 우리 가족은 그곳을 자주 갔다. 물을 좋아하는 마리는 바닷물에 달려들어 첨벙첨벙 개헤엄을 쳤다. 바다에서 나와 털에 묻은 물기를 없애려 몸을 부르르 떨면 옆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기겁을 하다가도 즐거워했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마리는 사랑둥이였다.
3살 무렵 하루는 마리가 헛기침을 했다. 목에 뭐가 걸려 그런가 여겼는데 증세가 없어지지 않았다. 목을 살펴보니 팥죽 알만한 덩어리가 만져졌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병원에 데려갔다. 수의사는 암이 의심되니 종합병원에서 정밀검사받기를 권유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같은 소리였다. 갑자기 쏟아지는 눈물을 어떻게 거둬야 할지 몰랐다. 황망해하는 나에게 “이런 경우 개 보호자는 개가 아픈 걸 본인 탓으로 여기는데 그러지 마세요. 원인은 알 수 없습니다. 죄책감을 가지지 마세요”. 의사의 위로는 뜻밖이었다. 하지만 내 탓이란 생각은 쉬 없어지지 않았다. 의사는 소견서와 함께 전문 병원을 소개해 주었다. 동물병원도 전문병원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우리나라의 대학병원처럼 동물용 종합병원에는 반려동물을 위한 각종 전문 진료과와 첨단 의료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태고적부터 인간과 더불어 살아서인지 인간의 질병을 앓고 있는 개들을 보고 놀랐다. 인간 세상과 다를 바 없었다. 생로병사는 만물의 숙명이겠지만 인간의 책임이 상당하다는 것만은 확실하리라. 의사와 간호사들은 정성스레 병든 동물을 치료했다. 말 못 하는 마리의 고통을 덜어주려 애쓰는 그들을 보니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진단 결과는 림프암이었다. 이미 온몸에 퍼져 수술도 불가능했다. 그냥 두면 앞으로 5-8개월. 항암치료를 받아도 생명 연장은 그리 길지 않으며 재발할 거라고 의사는 심각하게 말했다. 사람 치료비만큼의 돈이 드는 문제이기도 하니 신중히 결정하라고 덧붙여 조언했다. 가족회의 끝에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보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마리를 위한 최선의 방법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기적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은 날이면 마리는 며칠간 먹지도 못하고 토하기만 했다. 그런 마리를 보는 내 가슴은 아렸다. 못할 짓을 시켰나 하고 자책하며 후회했다. 그러기를 8번, 8개월간의 치료가 끝났다. 마리 목의 팥죽 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리는 다시 기운을 차렸고 언제 아팠냐는 듯이 마당을 힘차게 뛰어다녔다.
그로부터 1년여 지났을까. 남편이 이번에는 카타르로 발령이 났다. 2004년 여름이었다. 이사 준비를 하다 마리를 데리고 가기 위해서는 동물 수출입 검역절차를 받아야 하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마리에게 필요한 서류를 만드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하는 수 없이 동네 병원에 마리를 맡기고 관련 수속을 부탁한 후 우리는 카타르로 먼저 떠났다. 카타르에 도착하고 열흘 뒤 마리가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우리 가족은 부랴부랴 도하 공항으로 달려갔다. 한참을 기다리니 커다란 케이지안에 있는 마리가 수화물 사이로 보였다. 마리는 우리를 발견하곤 포효했다. 그 절규는 너무도 크고 길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괴성이었다. 그 소리가 내게는 기쁨의 탄성보다는 “왜 이제야 왔어”라는 원망스러운 울부짖음처럼 들렸다. 마리에게 달려갔다. 아들도 나도 엉엉 울었다. 이산가족 상봉의 순간이었다. 케이지가 열리자마자 뛰쳐나온 마리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줌을 쌌다. 미국과 아라비아 반도 사이의 대서양 물을 다 쏟아내는 듯한 엄청난 양이었다. 비행기 화물칸에서 열댓 시간 동안 오줌을 참았나 보았다. 케이지 안에는 잘게 찢은 신문지가 수북이 깔려있었는데 깨끗했다. ‘ 마리는 암스테르담에서 비행기가 경유하는 동안 물을 먹었습니다.’라고 쓰인 메모가 케이지 창살에 붙어있었다. 마리가 무사히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의사부터 생면부지의 사람들의 따뜻한 손길에 나는 또 한 번 울컥했다.
카타르의 여름은 지독히 더웠다. 나는 해뜨기 전 마리를 데리고 동네를 산책했다. 기온이 섭씨 4-50도를 훌쩍 넘는 한낮은 마리가 걷기에는 너무 뜨거웠기 때문이었다. 마리가 카타르 생활에 적응할 즈음, 3달 정도 지났을까, 마리 목에 예전과 같은 크기의 멍울이 잡혔다. 올 것이 왔구나, 라는 생각에 앞이 캄캄했다. 급한 마음에 동물 병원으로 마리를 데리고 갔다. 의사에게 그간의 마리 진료기록을 보여주며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카타르의 수의사는 낙타나 말 같은 야생동물 전문이라 개의 질병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카타르인들은 개를 키우는 문화가 아니었다.) 휴스턴 의사에게 전화로 마리의 상태를 설명했다. 마리 의사로부터 병력과 처방을 들은 카타르 수의사는 스테로이드를 처방해 주었다. 효력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지만 남은 방법이라고 했다.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덧붙였다. 마리는 다시 활력을 찾고 집안을 기운차게 돌아다녔다. 멀쩡한 마리를 보며 의사 말이 틀리기를 바랐지만 마음 한 구석은 불안했다. 얼마 후 마리의 상태는 다시 나빠졌다. 약효가 더는 듣지 않았다. 산책을 나가면 몇 발자국 걷다 가만히 멈춰 나를 쳐다보았다.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어느 순간부터 마리는 먹지 않고 종일 엎드리고만 있었다. 몸은 말라 깃털처럼 가벼워져갔다. 말 못 하는 마리의 고통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인간처럼 신음이라도 하면 알아차릴 텐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며칠 뒤 마리는 우리가 잠이 든 사이에 하늘나라로 갔다. 살면서 무수히 죽음에 관한 간접 경험을 했지만 ‘사체’를 그때 처음 보았다. 숨을 거둔다는 말의 의미가 비로소 와닿았다. 생과 사는 한 숨의 차이였다. 마리는 눈을 감고 있을 뿐 이승을 떠났다고는 보이지 않았다. 언어가 없는 동물은 시간 개념이 없어 다가오는 죽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어느 책에서 본 기억이 있다. 만일 그렇다면 마리는 죽음의 공포 없이 이 세상과 작별했을 것이다. 그 말을 믿고 싶다. 우리 가족에게 무한정의 사랑을 퍼주기만 한 마리가 이 세상에서 숨을 쉬며 산 시간은 고작 4년 남짓이었다. 마리에게 항암치료를 받게 한 것이 잘한 결정인지, 그냥 뒀더라면 어땠을까. 다른 집에서 자랐다면 오래 살 수 있었을까. 여전히 모르겠다. 지금도 길을 가다 골든리트리버를 보면 생각이 난다. 마리야 사랑해! (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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