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me before you'와 연극 'bea'를 보고...
얼마 전 연극 bea를 보았다. 안락사를 다룬 연극이라 수년 전 보았던 영화 me before you 가 떠올랐다.
영화에서 윌은 잘생기고 부유한 전신마비 환자다.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그에게 발랄하고 엉뚱한 루이자가 간병인으로 오게 된다.
윌이 안락사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된 루이자는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삶의 소중함을 알려주려 노력한다. 둘은 마음 깊이 사랑하지만 윌의 선택을 존중하며 그를 보낸다. 안타까운 결말이다.
회복할 가망이 전혀 없는 것에 대한 절망이 그를 안락사로 이끌지만 그가 가진 많은 것에 주목했다. 물론 그는 오토바이 사고로 인한 전신마비로 그가 좋아하는 익스트림 스포츠나 사업을 전혀 할 수 없는 몸이다. 하지만 젊고 매력적인 얼굴을 갖고 있고 부유하고 교양 있는 부모님이 있다. 더군다나 그를 사랑하게 된 간병인 루이자가 있다. 더구나 루이자는 그에게 삶의 또 다른 즐거움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물론 사고가 안 났다면 더 좋겠지만 하나뿐인 생명을 버려야만 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거의 십 년 전 영화이니 그때의 나는 윌에 대해서 안쓰럽고 가슴 아프지만 소중한 자신의 생명을 너무 가볍게 버린 게 아닌가 했었다.
연극 bea도 상황은 비슷하다. 만성 체력 저하증으로 8년째 침대생활을 하고 있는 bea에게 간병인 레이가 찾아온다. 공감능력 최고로 유일하게 bea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간병인이다. 둘의 만남은 유쾌하고 당돌하다.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어눌한 bea의 상태를 극에선 내면의 상태로 바꾸어 놓았다. 침대에서 춤을 추는 bea는 상상 속의 bea 다.극에서도 bea는 간병인 레이를 통해 엄마 캐서린에게 편지를 쓴다. 좋아질 가능성은 조금도 없는 자신이 죽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편지다. 엄마에게 자신의 상태와 마음을 공감해 달라는 호소다. 캐서린은 수많은 번뇌 끝에 bea의 존엄사를 수락한다. 디데이에 bea,캐서린, 레이 모두 제일 아름다운 옷을 입고 마지막 파티를 준비한다. 어두컴컴한 자신의 방에서 드디어 bea는 자신이 바라는 세계로 훨훨 춤추며 날아간다.
영화에서와 달리 극의 bea와 캐서린의 결정에는 공감이 많이 갔다. 거의 십 년 차이를 두고 본 존엄사 영화지만 나의 가치관이 많이 변했다. 비의 상태에 많이 공감이 되면서 내가 캐서린이라면? 내 자식이 bea라면? 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삶과 죽음은 극히 주관적이라 자신의 생명이나 죽음에 관해선 남이 무어라 왈가왈부할 수 없다.
꽃동네에 콧줄을 끼고 누워있는 전신마비 환자에게 물었다고 한다.
‘언제 가장 행복하세요?’
‘호스로 죽 넘어올 때 제일 좋아요. 하루종일 그때만 기다려요‘
이렇게 행복의 차이는 그 사람이 처한 환경과 무관하게 극히 주관적이다. 이제 나도 서서히 남의 아픔에 공감이 되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가나 보다.
bea의 결정도 이해되고 꽃동네에 사는 그 환자도 이해된다. 삶이 그렇지 아니한가. 내가 좋으면 다 좋은 것이다.
연극 내내 많은 대사와 함께 레이의 역할을 찰떡같이 소화한 강기둥 배우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 이런 무거운 주제를 유쾌하고 당돌하게 풀어낸 극 관계자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