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결함

by vakejun


정상인들이 가장 느끼지 못하는 오만방자한 장애

-라고 나는 생각




버리고 싶고 모른 체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왜 난 아직도 열을 내는가.

얼마간 화를 삭이지 못해 뜻하지 않은 손님을 맞았다.

극도의 스트레스가 전달해 준 반갑지 않은.

귀가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는데..

이거야말로 진정한 공포가 아닌가!


살아가면서 내가 모를 그 어떤 낯선 병이 또 올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꼬락서니 참으로 굴곡지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더니 나의 근원지는 바로 너로구나.




메니에르,

살아서는 알 수 없으나 죽어서 뇌를 꺼내 봐야지만 확정할 수 있는 병이라 했던가?

고용량의 스테로이드를 혈관으로 투여하면서 갖가지의 검사를 받았다.

덩달아 혈당도 미친 듯이 솟구쳤다.


'돌발성 난청' 혹은 '메니에르',

동네 이비인후과의 처방으로 낫지 않자 다니던 대학병원에 문의를 했다.

기저질환이 있으니 빨리 응급실로 오란다.


그렇게 또 입원을 하고야 만다.


이(耳) 충만감!

귀가 물속에 잠겨있다. 꽉 차 있는 그 기분은 설명할 길이 없다. 들리지 않고, 방향감각을 잃고, 이명과 함께 누워도 어지러운 상태가 지속된다.


다행히 조금씩이나마 청력이 돌아오자 이비인후과마저 추적 검사를 하자고 했다.

추측으론 '메니에르'.. 이 병과 더불어 프랑스 의사양반까지 별 걸 다 알았다.


"중요한 이벤트가 있을 때 약을 미리 드세요!"

대충 스트레스가 폭발하기 전엔 먹으라는 뜻이다.


예.. 그럽지요..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네요.

"반드시 재발은 합니다."

그렇게 확신할 필요까진..


반문하면 아닐 가능성도 희박하게나마 있다고 해주지 그러셨습니까.

그렇게 돈 백 날리고 참 민폐 인생이구나 싶었다.


그래도 입원당시 먹었던 생크림 케이크는 참 맛있었다.

간호사에게 애걸하듯 간식 좀 먹을 수 없겠냐고(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저도 알아요 쌤)

나름 특별하다면 특별한 걸로 치자.

아는 동생은,

"한번 겪어봤으니 다음엔 재발하더라도 지금처럼 당황스럽거나 놀라진 않을 수 있을 거야."

라는 너다운 위로..

오랜만에 만나서 그동안 쌓인 내 병치레를 늘어놓고 위로를 받고 짧게나마 만났으니 그걸로 됐다.


이게 과연 친구인가.. 하는 너는 화가 치밀어 도저히 쓰기도 짜증 나네.

안 쓸란다. 짜치니까..




뭔가 쓰다 보니 투병일지 모음 같아 티 안 나는 공들임을 발휘하고 있다.

중요한 걸 빼먹은 걸까, 혹은 이거 너무 TMI인가에 대해..



내 결함은 정상인이 아닌 것에서부터였는지 그전부터였는지 모호한 경계에 있다.

1형 당뇨에 걸리면서 생긴 강박이 준 커다란 흠인데..


사람 많고 허름하며 시끌시끌한 노포의 분위기가,

그 어디든 사람들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인슐린 주사를 맞기가, 나에게는 적잖은 용기와 '뭐 어쩔 건데?!'의 마인드셋이 필요했다.


이사하던 날 새벽,

집 앞 우동집에서 시원하게 우동을 말아먹고 10년간의 내 ‘병’든 인생도 함께 말아먹어치웠다.



'일반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얼른 먹고 집으로 튀어가 인슐린을 맞으면 되는 짓을,

이 쉬운 일을, 그 우동 한 그릇을 먹기까지 얼마나 망설였던가.


잘 먹지도 않는 길거리 음식을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먹을 수 있던 당연한 보장의 일상이, 이제는 어떤 느낌인지 아무리 애를 써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스스로가 정상인이고자 일반인 이고자 너무나도 달콤하게 원했던 것.

엄두도 못 낸 '일탈' 같은 짜릿함은 우동 한 그릇에 담겨있더라.

깨부수기 힘들어서 미뤘던 거, 진작 발견하지 못한 거, 마치 자동차의 사이드 미러 같은 그거.



내가 가지고 있던 결함은 일반인은 알 수도 없고

흠이라 여길 고지식한 '편견'

나는 아니지만 다른 이는 그럴 수도 있을 거라는 무서운 1퍼센트의 '만일'

그 '만일'때문에 참 오래도 걸렸다.

우동 한 그릇 먹는데 까지..




사실 이제야 말하는데,

나 단거 안 좋아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