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정원
감정을 적지 않는다.
철저하게 일어난 시간적 순서대로 했던 일,
하는 중인 것 위주로 '기록'만을 할 뿐이다.
혈당이 얼마이며, 인슐린 몇 유닛을 맞고 무얼 먹었으며 식후를 체크한다.
기분과 감상은 배제한다.
언제든지 뒤져 볼 '나'임을 알기에 그 어떠한 루트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날의 내 기록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장치와
나의 행방, 최소한의 생활 패턴만이 기록된다.
하지도 않던 짓을 하면 결국은 체해버리고 만다.
그 언젠가 본가에 다녀왔을 때,
거실에 누워 커다란 창문으로 들어오는 해가 보이고 질 때의 모습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정신이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해가 지면 니네 아빠가 저 문으로 들어올 것만 같다"라는 엄마의 말을 들어서다.
엄마 혼자 감당해 낼 이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처신할지, 도저히 이해가 가면서도 상상도 안될 만큼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에 숨이 턱 막힐 듯한 감정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려운 게..
엄마에게 단단히 삐져버린 추석명절
통칭 '옥수수 사건'이 있었는데
언니에게 전활 걸어 이 비통함을 토로하며 기차에서 대차게 울었었다.
그렇게 엄마, 엄마 하는 '엄마바보'면서도
그릇이 작아서인지 감당 못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고 맘에 안 들고 비뚤어져 프로필 사진을 '갓파'로 바꿔버렸다.
아빠는 알랑가 모르겠다.
잘려나간 아버지의 팔을 든 원수를 보고 터져버린 갓파와 내 심정을..
엄마는 모른다. '옥수수 사건' 같은 건.
아마 미움받기 싫은 나는 죽을 때까지 말 않겠지.
덜 컸지 싶다.
성장 없던 과거 하나 더.
사회생활 초반, 그렇게 힘이 들었었다.
제대로 된 사수를 만난 적도 없으며 그걸 간파한 웬 실장 놈이 자기가 이끌어 주겠다며 그럴싸하게 딜을 요청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질릴 대로 질린 인간 군상에 보기 좋게 '전 이 시간부로 관두겠습니다!'
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다.
나중에 내 작업의 스킬을 궁금해하며 다른 디자이너를 시켜 전화가 왔었다.
그 순간 참 통쾌했다.
짧게 짧게 다니며 연봉을 타협하고 옮길 때마다 난관은 찾아왔다.
일 힘든 건 참겠는데 사람한테 워낙 덴지라 참 싫더라. 밤이든 새벽이든 늦은 퇴근시간 혼자 집으로 가고 있자면 날 괴롭히던 박대리년을 그렇게 씹어대곤 했다
어둑한 묵정주차장을 가로질러 터덜터덜 걸어 나오며 진작부터 자고 있을 집으로 엄마나 아빠가 받길 바라며 전화를 돌리던 그때를..
생각해 보면 그때가 좋았다.
올해도 유독 덥다고 한다.
만나지 못한 아빠와의 마지막 그 해 여름도 무척이나 더웠다.
이젠 여름도 싫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간다.
감정이 무뎌진다고 생각했는데 다 거짓부렁이다.
아무리 싹을 쳐내고 무시하려 해도 나이가 들면서 유일하게 함께 자라는 열정적인 감정.
어릴 땐 싫고 좋음이 분명했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적음에도 찾을 줄 알았고 무엇부터 할지 순서를 정하기가 바빴는데..
이제는 점점 할 수 있는 일들이 줄어들고 하고 싶은 것들도 없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거다.
선택은 갈수록 난해하고 애매한 것들 투성인데 어째서 날마다 결정은 눈앞에 닥치는지.
오늘도 중대한 사안을 두고 난 사다리 타기를 한다.
운을 운에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