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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by vakejun


타인은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점이 있을 때 궁금해하는 속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렇다 해서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내 얘기'


사실 이렇다 할 인생도 아니고, 특출 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나간 일을 회상해 보면 그렇다.

겉으로 유쾌한 척 가식 못 떨고, 솔직히 까발리기에는 묘한 본능이 '거기까지!'라고 경고한다.

직설적임에도 불구, 살면서 찌들어버린 성격이 갈수록 소심해져 가는 게 반증이랄까.


겪어야 할 더 많은 일들이 내게 어떻게 들이닥칠지 겁부터 내며 살았다.

생각이 생각을 잡아먹고, 잠을 못 이룬다.


잡생각이 많을수록 그러한데, 그때는 정말 답이 없다.

시간을 그냥 보낼 요량으로 게임도 해보고 쓸데없이 별 감흥 없는 것을 보고 또 본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훔쳐보고 나와 비교를 하고, 눈으로 좇고, 나와 상대의 갭을 인식한다.

다들 파티에 쇼핑에 여행에 부유하지 않은 삶이 없고, 잘 나가지 않는 인생이 없다.

부럽기도 하고 '태생이 다른데 뭐'싶다.

그러면서도 계속 보게 된다.


불행의 시작은 손가락 끝에 달렸지만 도박인 걸까.

쉽게 끊을 수가 없는 거다.

잘난 사람들이 판을 칠수록 갭은 점점 벌어지고, 내 정신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는 것임엔 틀림없다.




허무맹랑한 것은 접고 원래의 내가 잘하던 것에 베팅을 해볼까?



어렸을 땐 공상을 잘하곤 했는데 그게 그렇게 유익했다. 나 혼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돈 안 드는 짓을 스스로 마련한 거다.

상상으론 되지 않는 것이 없었고, 무엇이든 가능했다.

거기서 나는 나라도 구했다.

(다음 생에 누구를 만나려고?)


공상을 풀어놓을 수는 없으니 과거를 끄집어내 보련다.



아마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가장 어린 나이..

6살쯤으로 추측.

무서운 게 생겼고, 칭찬의 희열을 느낄 줄 알고, 관심받기 위한 수단을 마련하고,

아마 거짓말도 할 줄 알 나이.




날씨가 화창한 오후-


길을 걸어가고 그 옆에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젊었던 아빠가 있다.

아빠는 아랫동네의 논의 물 수위를 확인하러 다녀오는 길 같았고, 난 아마 마중을 가던?

반팔소매의 원피스를 입은 걸로 봐서 초여름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빠 손엔 삽이 들려져 있고, 난 깔깔댔다.


아빠와 나는 삽으로 스카이콩콩을 타 듯 흙길에 대고 낮은 점프를 했다.

신났다.

신나고 신나서 깔깔대고 웃으며 아빠 역시 웃었다.

그게 그렇게 신나서.. 많이도 웃었다.


그래서 기억이 나는 건가. 생각해 보면 대단한 에피소드도 아니지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나이의 나와 아빠의 한 때다.


아직도 그 장면만 생생하다.



조금 자란 나의 첫 조직생활은 초등학생, 직무는 양호실 청소 당번이었다.

양호실 소독냄새도 좋고, 커튼도 맘에 들고 간이침대도 너무 좋았다.

교실 반 만한 그 공간에 나와 단짝인 친구 둘이서 침대를 폴짝 뛰며 노는 건지 청소하는 건지 모를

그 시간이 나는 그렇게 즐거웠다.

그러다 문을 닫는다는 게 그만 발을 사이에 두고 보기 좋게 미닫이 문을 당겼다.

나무문도 아니고 샤시로 된 좋은 문이었다.


타격이 컸다. 금세 피가 번져 나왔고 아팠다.

절뚝거리며 당황스럽게 교무실로 들어갔더니 놀란 눈의 선생님.

청소 확인은 안 하시고 그렇게 뛰어놀던 양호실 침대에 앉혀 놓고 치료를 해 주셨다.

양호실에서 받아본 첫 치료였다.

세 번째 발톱 위의 살이 벗겨져 피와 양말이 엉겨 붙었다.


벗겨진 살 위로 면이 들러붙어 쓰라리고 아팠다.

하얀 가루를 후추 뿌리듯 솔솔 뿌리니 보기만 하는데도 치료가 되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경험해보지 못한 신기한 체험에 호기심 많은 나는 이런 것도 나쁘진 않군-이라고 느꼈다.

하얀 천을 둘둘 감아주셨다.

참으로 친절하고 정성스러운 치료였다.

둘둘 말아버린 천 때문일까 운동화 끝에 발가락들이 닿자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진기한 경험을 한 것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그 상처는 몇 년을 갔다.


한번 다친 두 번째 발가락의 발톱만 유독 크다.


어? 쓰다 보니 세 번째 발가락이 아닌 것 같아 두 번째 발가락으로 고쳐 썼는데..

직접 내 발가락을 보니 이건 뭐.. 분간이 더 안 간다.

역시.. 너무 오래된 기억인 걸까.

그 정도 경험이면 기억이 날 법한 일인데 헷갈린다니.. 조금 충격적이면서 그런가 보다 한다.


확실치가 않다.

그만하기로 한다.

아무튼, 그때의 기억은 아직 남아있다. 뭐가 중요한가. 다친 게 중요하다.


그랬다는데.. 이제와 두 번째인지 세 번째인지 알게 뭔가. 세 번째여서 덜 아프고 그러진 않았을 거다.



확실히 공상보다는 있었던 이야기가 진솔한 편이다.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이다 보니 이것 또한 나름의 의미가 있다.

옛날 이야기 하듯 털어놓은 '값진 어린 나이의 나'는

돌이켜보면 조금 귀여운 구석이 있었네 싶다.

(나중에 누구를 만나려고 이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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