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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소개 1

by vakejun


우리 엄마로 말할 것 같으면..

그냥 우리 엄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엄마의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날 낳아주신 엄마.

그 자체다.


어릴 때 점 꽤나 보신다는 분이 그랬다고 한다.

엄마의 말년엔 언니도 오빠도 아닌

내가 있다-라고(엄마 피셜)

굳이 어린 내게 저 말씀을 하신 건 약간의 착한

가스라이팅이 아닌가라고 합리적 의심..


하지만 엄마에겐 몇 년 전 남자사람 친구가 생겼다.

코로나로 인해 통화로만 연명하던 그 격변의 시절을 함께 계셔주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엄마의 인생은 내가 대신 살아줄 수 없으므로

엄마가 무얼 하든 누굴 만나든 어떤 삶을 택하든

난 뭐든지 응원하고 존중할 거다.


내게 있어 엄마란 그렇다.

언니가 시집갈 때엔 빼앗기는 기분이었지만

엄마에게 남사친이 생겼을 때는 묘한 가슴통증이

따르는 안도와 질투, 온갖 잡탕 같은 기분이 섞인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엄마는 젊은 나이에 집안을 세우는 데에 매진하셨다.

결과는 허리 디스크 수술, 손목터널 증후군 수술, 무릎 수술, 수지방아쇠 수술로 이어졌다.

엄마는 '수술은 지긋지긋하다'고 하신다.


내려앉은 쌍꺼풀을 예쁘게 올려드리고 싶지만

나에겐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다.

3개월마다 가는 대학병원비 만으로도 어마하므로.



엄마는 한결같은 사람이다.

통화를 하면 엄마의 목소리에서 그날의 심정,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거짓말을 못하고 잘 들킨다.

기다리면 이야기해 주신다.


오늘도 한 시간 반 동안의 통화를 했다.


주로 신경 쓰고 속 쓰린 이야길 하시고는

언니와 오빠에겐 이야기하지 말라 신다.


전엔 그랬다. 나는 알아도 되고 다른 형제들은 몰라도 되는 이야기면 난 어디에 풀어야 하는 거지?

감정이 통째로 날아와 버리고 나면 묵직한 나는

그 덩어릴 안고 울었다. 야속했기 때문에.

지병은 있으나 놀고먹는 백수주제에 감정 쓰레기통쯤은 감내해야지 하고 뒤틀린 효도를 했다.



약이 좋긴 좋다.

아니면 내가 철이 들었거나.


더 이상 엄마의 너만 듣고 잊어버려-는

내게 타격을 주지 않는다.

마음을 고쳐 먹었기 때문이다.


엄마도 내 엄마로 사는 건 처음이니까!

엄마도 지금의 나이는 처음이야.

철들고 계시는 중이지.

난 엄마보다 젊고 잘 키워 줬으니 이쁜 짓만 하자.

엄마는 내게 더 많은 걸 항상 주시니까.

나란 인간 엄마복은 있다.



엄마의 손목터널 증후군은 긴밀한 시간을 주었다.

수술 싫다! 두 번은 더 싫어!!

하시더니 쿨하게 한 번에 양쪽을 받으셨다.

문제는 샤워인데..


엄마가 부끄럽지 않도록, 당신이 나이 들어 보이지 않도록, 이건 단순한 씻고 헹굼의 연속인데

와중에 또 시원하고 깨끗하게 잘해.

결국엔 개운했다-의 의미만 남도록 세심한 관찰과

행동이 필요했다.

너무나 성공적이어라. 엄마는 만족해했다.

나 밖에 없지 뭐.


붕대 감은 모습의 사진을 보여줬더니

오빠는 복싱선수 같다고 웃으며 고생이 많다고 했다.


고생.. 이거 또 할 말이 많다.


엄마의 첫 번째 수술,

서울의 유명한 병원 세 군데를 들러 맘에 드는 곳을 찾았다. 인공 바이오 어쩌고를 척추에 심는 아주 큰 수술.


전신마취의 트라우마를 갖고 계셨던 엄마는

다행히 성공적인 수술을 마치셨고, 나의 슬기롭지 못한 간병생활은 시작됐다.

나는 할 수 있는 최선과 최고만을 바쳤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엄마의 휴대폰 너머엔 늘 '우리 아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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