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또 걷는다 꽤 많이 걷는다
끊임없이 걷다 보면 닿지 않을 아늑한 저곳이
내 발 끝에 놓이는 그런 날이 오겠지
눈에 보여도 손 끝으로 만질 수 없는
안타까운 것들이 머리 위로 지나가고
또 걷기를 반복한다
아픈 것들은 상대적이다
누군가의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나의 견딜 수 없는 슬픔은 견줄만한가?
각기 다른데 어느 것이 더하다 못하다 따질 수 있을까
똑같이 걷고 있어도 생각이란, 느낌이란 원하는 건 모두 달라 이렇게 살아지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닌지 분간도 못하고 그렇게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끝'이라는 것도 오겠지
생각이란 침묵은 잔혹하다
찰나의 즐거움을 뽑기 하듯이 찾아내 버티기에는
무뎌진 두 다리의 감각이 어림도 없다 한다
고스란히 받아내기에 그 시간이 버겁다
찾아오고야 마는 고된 갈래들이 헤집고 또 헤집어 너덜 해진다
많은 것을 느끼고 감내한다
선뜻 내미는 친절에는 독이 있어 의심해 보고
적당한 이유와 핑계에는 사심이 있어 피해야 하며
공손한 태도에 약해 혹하고 넘어가버린다
그렇게 잠깐 쉬어 가려했더니 의식이란 게 참 무섭지
깨닫는 순간은 늦었다
하염없이 질책하고 의기소침한 걸음을
다시 시작한다
이따금 근사한 것들이 물과 공기 같은 양분처럼
버텨줄 만한 근사치를 준다
이게 또 그리 달콤하지 않을 수 없는지라
이 행군을 멈출 수가 없다
지식도 이해도 필요 없는 때면
노곤해지는 안식도 있다
그럼에도 단순해지지 않는다
알 길이 없다
해가 저물고 돌아갈 길과 가야 할 길이 뚜렷한 사람들아,
대체 무슨 목적을 가지고 그리도 열광하며 걷는지 묻고 싶다
때때로, 아니 수시로 나는 우울하다
당최 모를 그들의 발걸음을 흉내도 내보고 연구해 보지만 내 것이 아닌 그들의 방법으로는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없다
좁은 보폭으로 시커먼 감정의 끝을 향해 자박자박 걸어간다
경험이란 살 수 없고 겪기 전에 알 수 없으니
그저 들은 대로 덜 아프게 더 잘하게 혼자만의 터득으로 아장 댄다
확신은 많은 손실과 부담을 떠안고 출발
과정 중의 부상은 어디까지나 온전한 내 몫
많은 것들이 발아래 놓여있고 몸을 휘감고 날아가고
정작 손에 잡고 안달 난 나는 내 힘으로 안 되는 그것들을 놓칠까 죽을 맛이고 그나마의 것들도 잃을까 전전긍긍해 목메는 삶이 돼버렸다
아직 끝나자면 멀었구나, 내뱉는 숨 사이로 한숨이 섞인다
흥미로운 무엇이 다리에 걸려 넘어진다
뿌리치기엔 근사해 보이는 무언가 들이
그마다의 타당성을 안겨주며 달랜다
속고 모른 척 쉬어간다
그래도 될까-하고 자문하자면 지친 마음과 호기심은
된다라고 속삭인다
날 좋은 날 예쁘게 걷고 싶다
간혹 흥얼거릴 줄도 아는 제법 여유 있는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들이 주는 유쾌함만 가지고
좋은 걸 좋다고, 이제 안심이라고
너무나 가벼워 마치 소원해 마지않던 하늘을 나는 기분으로
쇳덩이를 발목에 묶고 그 무게를 감당한 채로는 싫으니까 저 산 끝의 경계엔 마치 하늘이 맞닿아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익히 가 본 바, 그게 사실이 아니란 걸 안다
그게 현실이지
죽어버린 사람은 거기에 있지 않다
착각 혹은 진짜의 경계에서 확신이 내미는 진실은 불편해졌다
깨닫는 것은 왜 항상 고통이 동반되는가
내가 걷고 있다는 것
생각하고 있다는 것
아직도 가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것,
그게 현실이지
잠시 눈앞에 있는 당장의 '기쁨'이란 게 또 어마어마해서 더 잘 까먹게 되던데..
이렇게 걷다 보니 중요한 어느 날이 그 어느 때였는지 아득해지고 기억이 선사하는 최악의 그날만 절벽 끝으로 인도한다
지친 열상을 안고 주춤거리는 모양새로 어찌 걷다 보니 여기까지 이르렀다
막상 걷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멈추지 못했다
그 어느 날엔, 휴식도 있는가..
걷다 보면 끝이 날 그 길 위에 혼자 나가떨어지더라도
슬픔도 고통도 기쁨도 이제는 됐으니 다른 어떤 것도 주지말길.
더 이상 걷지 않아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 떨구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