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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권

by vakejun


대학 동창과 같은 회사를 다녔다.

쉬고 있던 나는 친구에게 인력 부족하면 나를 써달라고 했다.

취업을 했다.

하나 친구의 근태가 날이 갈수록 나빠져만 갔다.


회의 때 무례한 말로 선을 넘고

치사한 방법으로 긴장상태를 유지했다.

당연한 결과지만 친구는 마음이 떴다.


실장은 선택했다.

친구는 아웃되고 나와는 연봉협상을 하잔다.

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 뺀다고 뭔 놈의 의리인지

같이 관두겠다고 했다.


맘이 뜬 친구는 나를 끌고 '지인'의 회사로 옮기자고 했다.(나도 아는 사람이다)

'지인'은 우리가 가게 될 회사의 비전에 대해 거창하게 이야기했다.

속았다.


'요란한 빈 수레'에 '빛 좋은 개살구'가 담겨있다.


거기가 딱 그랬다.

돈이 많았다. 사장이.


서울 외 경기도권에 간판회사와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거느리고 있는 인력이 200이 넘는다고 어깨뽕이 치솟았다.


문제는 이 사장님께서 '간판장이'란 말이 듣기 싫단다.

무시하지 않는다.

사장님은 신문사를 차렸다.

사장 자리에 본인을 앉히고 편집장 자리에 간판 실무를 보던 사모, 부장 자리에 사촌, 경리 자리에 딸을 앉혔다. 고생 안 한 티가 역력한 딸은 그 옆에 친구도 앉혀놓더라.

심심하지 않아서 좋겠다.


신문사라고 그럴 싸하게 차려놓으니 편집부도 생기고

독방에 친구와 나를 가둬 디자인팀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편집부 기자와 디자이너가 회의를 하면?

신문동아리 친구가 그렇게 외치던 '칼보다 강한 펜'으로의 기자 신분은 기가 센 디자이너의 말발에 무너지고 만다.


내용은 고스란히 사모(편집장)의 귀에 들어간다.

경리가 모든 걸 듣고 메모(낙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 말 잘한다고 적어놓은 건 고맙다.


신문창간은 처음이다.

광고나 편집이나, 감각이나 센스나

신문도 마찬가지겠지.

어마어마한 양의 일에 치여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창간을 얼마 앞두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내 젖살은 그곳에서 빠졌다.


와중에 친구가 얄팍한 수를 쓴다.

'지인'과 썸 아닌 썸을 타면서 이 회사를 거느리는 집단

즉, 그들의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줄 팁을 전수받는다.


친구의 알랑방귀가 하늘을 찌른다.

보고 있자니.. 같잖다.

모든 일은 계단에서 일어난다.


친구를 따로 불렀다.


"**아.. 너 회사 오래 다니고 싶어?"

말이 없다. 그렇겠지. 뻔한 걸 물었다.


"그럼 누구한테 잘 보여야 될 거 같아? 편집장? 부장?.. 아냐, 나야."

말이 없다.


"너 나랑 틀어지고 이 회사 계속 다닐 수 있겠어? 잘하자."

대놓고 뀌는 알랑방귀에 나도 까놓고 말했다.


친구는 손바닥을 펼치고 반대 손 검지와 중지를 굽혀, 손바닥 위에 올렸다.

내 손바닥 안이라고 말한다.


아, 너의 생존방식을 알겠다.



창간일이 코 앞..

대략의 파일을 넘기고 마지막 컨펌만 받고 넘기면 종료되는 날, 기념적인 저녁 회식을 앞두고 있었다.


늘 하던 대로 샤워만 후딱 하고 나가는 길, 친구에게 확인전화를 했다.

받지 않는다.

도착 직전까지 전활 했지만 아예 신호가 꺼졌다.

애가 타는 마음으로 갔지만 회사에 없다.

내 일, 네 일 할 거 없이 미친 듯이 일을 쳐냈다.


친구의 부재를 안 회사 사람들은 놀라움과 의심을 금치 못했다.


그렇게 불가능할 것 같은 기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회식 자리에서 나는 마감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뒤늦게 자리한 친구는 어느 정도의 눈총을 견뎌야 했다.


창간도 되었겠다, 모든 게 느릿하게 지나가는 여유를 만끽하려 하자 슬슬 친구는 또 입질이 온다.

사모가 높은 연봉을 줄 테니 1호점의 간판회사로 가 디자인을 빼라는 것이었다.

달콤하게 속삭인다. 넌 집도 가깝고 '지인'도 거기 있고 여러모로 좋을걸?


이제 겉보기 그럴 듯 한 신문사는 잘 만들어놓은 내 광고로 우려먹으면 그만이고 값싼 디자이너를 고용해 유지만 하면 된다는 심보였다.


친구는 이미 홀렸다. 200% 확신으로 이미 거기에 가 있다.

사모가, 아니 편집장 신분으로 우릴 앉혀놓고 그럴싸한 포장으로 우릴 꼬셨다.

믹스 커피는 맛없고 불합리한 이야기를 저렇게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잘도 하신다.

대단한 영업이다.



- 모회사든 자회사든 가라면 가는 게 맞는데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죠!


간판장이 무시하는 거 아니고 나 디자인하라고 뒷바라지 한 부모님 생각해서 내 '직성'맞는 회사 찾아 떠나련다.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 '당신들의 지랄 속'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 친구씨는..**씨가 말하는 동안 한마디도 안 하네?"


확실한 의지는 있었지만 앉혀놓고 따져보니 제 의견 하나 피력하지 못하는 친구는 그렇게 나가리가 되고 말았다.



그 친구? 연락 안 한다.

하는 짓이 여우라 모든 게 읽히는 나름 귀여운 친구였는데 가는 길이 달라 그렇게 돼버렸다.




경고한다.

모든 건 한 끗 차이지만 끝은 내가 내는 게 현명하다.

휘둘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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