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 딸

by vakejun



오랜만에 엄마가 서울에 오셨다.

- 잘하자



잔소리를 하더라도 했던 이야길 또 하시더라도 간섭을 하더라도

- 응, 그럴 수 있어




밖에서 점잔 떨고 유식, 가식 떨지 말고 엄마한테나 잘해. 나 좋다는 사람 내 욕은 안 하겠지만 그들에게 쏟는 진심 담은 애정은 시시콜콜하지만 각별한 이유로 운 좋게 좋은 사람들을 옆에 뒀다.


가까울수록 가시 돋친 말로 상처 주고 돌려 말하지 않고 쌓일수록 내지르는 한방이 컸다.

엄마는 그렇게 어린 자식과 다툼을 가졌었다.


이게 아닌데라고 후회해 봤자 모든 일은 일어난 후, 서로 과거로 묻어두고 있지만 알고 있다.

우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 전적이 있다는 것을.



- 힘드니까 택시 타자 엄마



- 그때 네가 아프고 그렇게 힘든 줄 엄마가 몰랐다.



묵은 과거에 대해 엄마가 먼저 이야기를 꺼낸 건 처음


아.. 한 번씩 밀려오던 서운함이었지만 잊었고 인정했던 묵혔던 서로의 꽁깃했던 과거를 말끔하게 청산시키는 고백과도 같은 말..


모녀의 사랑은 유별났다.

- 세대차이가 나니 네가 이해해라.

- 엄마는 늘 아들밖에 없지?



예민한 둘은 상대방의 말을 들어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 결혼해라.

- 나 00살까지는 그 말하지 마. 스트레스받아.



가슴에 난 3센티 섬유선종 제거를 한 후, 식탁에 앉아 밥을 드시다 말고 울음을 내뱉으셨다.

- 엄마로서 우리 딸한테 처음으로 사과한다. 엄마가 미안해. 너한테 그게 그렇게 스트레스일 줄 몰랐다. 네가 싫으면 이제 안 하마. 아프지 마라.



속으로는 기뻤고 겉으로는 침묵을 지켰다. 엄마는 여태껏 결혼이란 단어를 단 한 번도 거론하지 않으셨다. 그 후로도 수술은 몇 번 더 한 것도 있지만..



- 돈은 있나?


없어도 있어도 늘 있다고 한다.

- 밖에 나가서 커피라도 마시려면 돈이 있어야지. 집에만 있지 말고 햇빛도 보고 그래.



엄마의 미간엔 11자 주름이 있다. 고단한 세월이 얼마나 주장이 강한지 비껴가지 않고 걱정을 자주 낳아 그만 눈썹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시술이라도 받으면 쫘악 펴지는데 해줄까?라고 했지만 평생 가는 거 아니라면 싫으시다고 하신다.


어릴 땐 엄마의 걸음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왜 그리 빨리 가냐고 했더니 평생을 바쁘게만 살아서 나도 모르게 빠른 걸음이 습관이라던 엄마는 이제 나보다 걸음이 느리시다. 왜 그리 천천히 걸어라고 했더니 서울엔 볼 게 많아 구경하면서 가느라 그렇다고 하셨다.

반은 거짓말이라서 배로 슬프다.


엄마랑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나란히 그리고 천천히 걸으면서 시시한 사람들 욕이나 하면서 맞장구를 친다.


내가 누굴 닮아 옷을 이렇게 좋아하나 했더니 엄마였다. 나만 좋은 거 하지 말자고 명품 방도를 생신 선물로 드렸다. 어디 가서 안 꿀리는 거니까 아끼지 말고 쓰시라 당부했다.


다음 모임에 신고 갈 새 신발과 예쁜 모자도 사드리고 10년은 더 젊어진 거 같다고 했더니 웃으신다.

11자 주름이 있어도 어여쁘기만 하다.

빚지고는 못 사는지라 기어코 신발값과 모자값을 주신다. 거절하지만 다음에 안 올 거라고 협박을 해 백수는 그냥 받았다.


다음 생엔 혼자 살고 싶다고 하신다.

끝내주는 부잣집 딸로 태어나 나를 아들로 낳으라는 약속을 잊으셨나 보다.

아무래도 이번생에 끝내주게 효도를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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