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찰나에 머물다 간 사람이 물었다.
일기를 쓰냐고.
쓴다고 했다. 개인홈페이지에.
자신도 그렇게 하다 치웠단다. 손으로 직접 쓰게 되지 않으니 볼 때마다 고치게 됐다고.
그럴 수도 있구나.
나 역시 볼 기회가 있으면 고쳐댔다.
그때의 내 기분은 좀 더 우악스럽고 시끄러웠지만 매끄러운 문장으로 손을 덧댔다.
분명 순간의 기억이, 기분이 그러했음을 증명해주고 있었지만 그 기록을 꼴사납게 냅두지 않았다.
순간을 수정한다.
내가 알고 있다.
더 이상 일기를 쓰지 않게 되었다.
블로그도 집어치웠다.
되도록이면 일상의 기록은 메모와 같은 기능으로, 잡다한 감성은 어지간한 기분으로는 쓰지 않게 되었다.
부작용, 당시의 내 기분이 잘 떠오르지 않게 되었다.
써도 문제고 안 써도 문제구나 싶었다.
그래서인가.. 가장 자주 써대던 말이 '잘 모르겠다'
왜 난 항상 모르는 것 투성이인지 그것조차 모르는 애매한 기분에 늘 뭔가를 적고 있었던 거다.
적는다는 행위는 생각 따위를 옮기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느끼고 있는 감정을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적확하게 꼬집어내기엔 모자람이 컸다.
해서 또 집어치웠다.
보고 느낀 것을 전제로 핑퐁이 될 때 나란 사람의 표현이 무궁하여 좋다고 했다.
"글을 써 보지 그래?"
남 얘기..
묻혀버린 블로그를 헤집어 예쁘게 고쳤던, 날이 서게 고쳤던 페이지를 눈으로 밟았다.
꽤나 적극적인 때도 있었구나.
미비한 글을 쓰고 카페에서 시간만 죽이지는 않았다는 자랑을 할 겸 짐숭1에게 던졌다.
그게 시작.
짐숭2가 대체 몇 개를 쟁여놓은 거야?라고 묻기에 쓸데없는 것까지 대략 10개 정도의 소스는 가지고 있지-라고 했다.
"부자잖아?"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창조경제가 뭔지 내가..
됐고, 난 나를 잘 아는데 '끈기'가 없다.
비슷한 '인내' 없다.
약간의 완벽주의가 나태를 건드렸고 운 좋게도 잘
모르던 것들 투성이에서 알고자 하는 알리고자 하는 이중성과 깊은빡침이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이를 테면 키패드 위에서 작두 탄다고 봐야지.
하지만! 난 이래서 부정문이 싫어.
막힐 때, 소재가 고갈일 때, 재미없을 때.
많다. 오고야 만다.
대단하게시리 나 그 창작의 고통!! 뭐 그런 건가?
아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빌어먹을 디자이너시절 이미 질리도록 했다.
그냥 정신적, 체력적 소모가 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쯤 온 것도 신기해 죽겠다.
이따금 오늘 밤 도둑질은 안 들키게 해 주세요-라고 야무지게 빌던 맹랑한 소녀들이 생각난다.
타고난 기술도 갖췄는데 기도까지 하다니..
배울 점이 많다.
나는 종교도 없는데 누구한테 빌어야 하나 라는 쓸데없는 고민. 도 아닌 의미 없는 헛소리.
라고 하기엔 내 소개에 버젓이 있는 '살풀이하듯 흘러갈'..
토테미즘이라도 만들까 싶기도 하고.
기왕이면 인셉션의 팽이가 낫겠다.
한 때 고퀄의 저 아이템을 구하려다 비싸서 짜게 식었지만.
살아가지는 동안 '한'까지는 아니고 맺힌 것이 많기는 하다. 아마 그것을 풀어헤치는 데엔 저만한 소개 이상이 생각나지도 않았고 수족냉증이 빠르게 적어나간 나름의 의도 있는 풀이이다. 라며 우겨본다.
손과 발이 따뜻한 사람이 좋다.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것 같아서. 손과 발이 찬 사람도 좋다. 동지애만큼 강한 것도 없어서. 이 정도면 사람이면 냅다 다 좋아하는 '개' 아닌가?
개한테 물린 경험 두 번이나 있는데, 흉터도 있는데 갑자기 개에 대한 온도가 식는다. 의식의 흐름대로 적는 것도 나쁘진 않다.
난 아직 인기 있는 글도 아니고 유명하지도 않아서 눈치 안 보고 고치지 않고 마음대로 써갈겨도 된다.
나중에 인기 있는 글쟁이가 되더라도 이 내용 없고 불찰 있는 짓거리는 고치지 않는 줏대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