お帰り, 松子。
세상에 하나일 수밖에 없던 다시는 없을 가여운 나의 캐릭터를 소개할까 한다.
마츠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그 마츠코.
생경한 한 단어를 죽도록 갈구하던.
다들 왜 그렇게 생겨먹었는지..
상황, 태도는 다른데 모두가 다 '그것'이라 한다.
'사랑'
저 말을 입에 담기가 부끄러웠던 겉멋 들고 시니컬한 때에는 이게 뭔지도 모르고 깝치다가 '효도'별 거 있나?
매일 전화하고 잘 웃고 '사랑한다' 표현해!
아끼면 똥 되는 짓 하지 말자고.
사는 것은 보다 심플하고 명료하다고.
'다자이 오사무'의 재탄생이 낳은 시련도 사랑이라면 난 문학을 포기하겠다. 이래서 뭐든 처음이 중요.
객관적으로 사랑스럽지 않다.
대단한 사랑을 했던 아니, 받은 역사도 없는.
가엾고도 불온한 삶의, 내가 제일 '혐오'하는 단어인 '불쌍'한 여인.
태어나보니 밀려버린 그 누구에게도 온전한 온기 한번 받아본 적 없던 기묘한 표정의 마츠코.
그 순간 웃고 말았던 아빠의 얼굴에서 마츠코 당신은 기뻤을까, 슬펐을까, 안도했을까..
주기적으로 봐줘야 하는 몇 안 되는 영화에 속해있다.
길거나 짧았던 인생의 한토막을 처연하게 치르고야 말던 인물들이 주인공이다.
밝고 명랑하고 말 그대로 사랑스러운 캐릭터들도 많다. 이 모둠으로 글을 쓰겠노라!라고도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마츠코를 거론하는 순간 내겐 분명(적어도 내겐) 사랑스러운? 인물임엔 분명하지만 다른 인물들과 나눠 가지기엔 이 인물의 서사가 너무 길다.
또 미루기로 하며..
지독한 애정결핍이 만들었다고 하기에 너무나도 모든 과정에 '웃상'이라 짜증 나는 일생이었고
지금에야 흔한 단어로 설명이 완벽할 수 있었던 가스라이팅의 일본판 오리진인 마츠코.
왜 당신은 그렇게나 열심일 수밖에 없었나.
답답하리만치 자신을 수렁에 빠트리고도 실낱같은 희망에 의지해 버텨내고 말았구나.
남루한 모습이 처음부터 처량해 보이지 않았던 결국 몇 번의 반복 끝에 당신의 비극에 통감하고 말았던
그마저의 헤아림도 오래 걸려 미안하기까지 했던 당신은 왜 그렇게 또 열심 인체로 마지막을 맞았을까.
유난히 잿빛과도 같던 일생에서 온갖 예쁜 색깔로 선명하고 싶어 부단히도 노력형이었던 마츠코.
흐린 눈으로 볼 수밖에 없던 마츠코의 노력이 향한 끝은 늘 배신이 따랐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신념과 자신에게.
마츠코는 또 언제나 그랬듯, 혼자였다.
비로소 혼자가 아님을, 할 수 있음을 깨달았지만 마츠코는 일어날 수 없다.
오랜 회상의 아빠도, 빼앗긴 봄 같던 그녀의 동생도, 가진 적 없던 우정 어린 의리도, 그나마의 애정도, 흔적을 찾아 고모의 일생을 밟아갔던 조카도..
모두가 부질없고 안타깝지만 늦었기에.
혼자서 맞던 그토록이나 무겁게만 내리던 빗속의 삶이었다면 그만 끝내자.
이제 조금은 편안해졌으면 한다고.
お帰りな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