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자는 날은 조금은 두렵습니다.
중간에 깨는 날이 많거든요.
어제도 그랬습니다.
대게의 깨어남은 이 꿈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공교로운 안타까움이 숨어있습니다.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거나 주변의 무언가를 치면서 몸과 소리로 이승으로 돌아오고자 하는 절실함이 실려있습니다.
어제는 무슨 일일까요, 울지도 않고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혼자서 기분 나쁘게 깨어났습니다.
조용히 일어나 이 기분 나쁜 꿈의 내용을 얼른 메모장에 적어야지 하면서도 빛을 눈에 쐬면 아예 잠이 달아나버릴까 염려되어 내용을 몇 번이고 곱씹으면서 애써 잠에 들었습니다.
주로 꿈에 나오는 제 고향의 집과 길은 현실과 조금은 차이가 있는 꿈 속에만 있는 이미지로 존재합니다.
거기서 저는 돌아가신 아빠의 실체를 살아있는 존재로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웃을 때도 있지만 미워했던 아빠의 근성을 제가 불러오는 건지 가끔은 언성을 높여가며 다투기를 반복합니다.
어제의 아빠는 나쁜 아빠였습니다.
엄마와 말다툼을 심하게 하고 있었고 지켜보고 있는 저는 자해를 감행했습니다.
고향엔 대나무가 없습니다.
때아닌 대나무살이 있었는데 그걸 집어다 살갗에 휘둘렀습니다. 소리는 찰지게 나는데 멍도 들지 않았고 아프지도 않았습니다.
어찌나 충실하게 휘둘렀는지 꿈속의 아빠도 벙찌고 말았던 것일까요, 싸움을 멈춘 것 같았습니다.
다만 저는 조금 마음이 쓰렸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관심을 끌어 이 일을 멈추어야 했을 제 스스로가 안타까웠던 것인지 대나무살이 스쳐간 팔과 몸뚱이를 살피며 멀쩡한 것에 대해 억울했던 건지 ‘욱’스러운 기분을 안고 혼자 깨어났습니다.
놀라웠습니다.
걱정도 앞섰습니다.
이 정도면 조금 심각한 지경이 아닌가 합니다. 한동안 꿈에 의한 스트레스는 덜하다 생각했는데 잠시를 놓치지 않고 엄습하는 것이 이제는 한계에 다다르지 않았나 하는 스스로의 소견에 섬뜩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조곤조곤한 말투로 쓰게 된 것은 왜 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그리 된 것입니다.
설날 아침, 아빠를 보러 다녀왔습니다.
처음 몇 해는 이해가 안 갔습니다.
왜 이런 땅속에 갇혀있는지, 갑갑했을까요?
가족들 누구도 꿈속에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는데 저한테는 자주 나타나 벼라별 일을 다 던져주고 가버리는 것이.. 이번 겨울 유독 눈도 많이 오고 시렸을 땅이 처음 같았으면 눈물 찔끔거리며 돌아섰을 묘 앞에서 이제는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친부에게 큰 재물과 행복과 가족들의 건강을 요구했습니다.
서운했을까요?
아빠 안녕- 하고 돌아섰던 제게.
주변에선 아빠 생각을 그만하라고 하는데..
드는 생각을 막을 재간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조금 덜 미워했다면 숫자 여섯 개 정도는 알려줬을 것 같기도 한데.
친하다 싶으면 냅다 장난부터 갈기는 성격이 꼭 아빠를 닮은 것이 영락없는데 이승에서는 더 이상 증명할 길이 없네요.
저만 아는 아빠는 외롭고 온순했지만 이기지 못할 술을 좋아하고 내리사랑에는 강했지만 사랑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쑥스러움을 많이 탔으니까요.
제가 제일 친하고 익숙했나 봅니다.
술을 마시고 푸념을 늘어놓으면 저는 글라스에 소주를 따르고 나랑 마시자-이야기를 해보자-라고 살살 꼬드기면 아빠는 어릴 때 이야기와 자신의 불온한 처세에 이유를 늘어놓았습니다.
이토록이나 그리울 줄 알았다면 저는 그때 좀 더 다독여 줄 걸 그랬습니다.
많이 뱉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꿈에서라도 안녕을 고해야 새로운 세상의 새로운 무언가로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사항이 된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놓아주지 못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렇게라도 내 생각이 전달된다면 우리는 조금 평안해질 것도 같기에.
반복되고 상관도 없는 저의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펑펑 흘려버리고 말 눈물을 대신해 입술을 꽉 물고 썼습니다.
이 정도면 아빠도 그만 애쓰자-라고 할까요?
31st. Jan.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