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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May 06. 2023

겁나고 불안하지만 오늘을 사는  마가렛에게

첫 출간 후 50년이 지나서야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기사를 읽고, 오래전에 읽었던 이 깜찍한 이야기를 떠올린다. Are you there god? It’s me, Margaret. (거기 계시죠, 하느님? 저, 마가렛이에요.) (Blume, 1970) 제목만 보면, 종교 얘긴가 싶지만, 그건 아니다. 마가렛에게 신은 그저 사는 순간순간 기원이 필요할 때 기도하는 대상일 뿐이다. 그러니 그분의 이름이 무엇이든 그건 별로 상관없다.


1970년 첫 출간이래, 전 세계적으로 천오백만 권 이상이 팔렸다고 하는 이 책은 오늘을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꼭 읽게 해 주고 싶은 책이다. 특히 여자아이들은 분명 50년 전 열한 살이었던 마가렛과 현재의 자신을 쉽게 동일시할 수 있을 거다. 그래서 엄마가 읽었던 마가렛 이야기를 딸의 손에도 쥐여 주게 되는 게 아닐지.


소소하게 잘 그려 낸 마가렛의 일상에서 평범하지만, 중요한 순간순간을 포착해 내는 작가의 깊은 내공을 가늠할 수 있다. 열한 살 마가렛은 새로 이사한 동네와 전학 간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그룹에 끼어 보려고 노력한다. 모든 게 겁나고 걱정된다. 친구들 사이에 무사히 안착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고, 정상적이라고 하는 성장 테이블에서 벗어날까 봐 겁난다. 아이는 밤마다 일기를 쓰듯 누군가(God)에게 기원한다. ‘아이들처럼 정상적?으로 자라게 해 주세요∼’ 아직 월경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몸에서 이차 성징이 나타나기 시작한 아이들은 모이기만 하면 자기 몸에 나타나기 시작한 (혹은, 아직 나타나지 않아 걱정되는) 변화를 얘기하고, 누구든 먼저 경험하는 사람이 서로에게 얘기 해주로 약속한다. (요즘 애들이라고 다를까!) Grow bust (가슴아 커져라!)를 기도하듯 외는 애들이 어찌나 귀여운지∼


아동, 청소년 문학의 가장 큰 소재는 역시 정체성인데... 마가렛도 자신이 누구인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기독교인 엄마와 유대인 아빠를 둔 마가렛은 현재 어떤 종교도 갖고 있지 않다. ‘네 종교가 무엇이냐?’는 어떤 사람들에겐 중요한 이슈일 수 있다. 보통 아이들은 엄마가 교회를 다니면, 자신도 교회에 가고,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면, 석탄일 같은 날 엄마를 따라 절에 가서 절밥을 얻어먹는다. 진지하게 생각해 볼 틈 없이, 말하자면 비자발적 모태신앙을 갖게 된다.


엄마, 아빠는 종교에 대한 결정권을 마가렛에게 주었지만, 마가렛은 그게 좋기도 하고 불만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아이는 이런저런 종교를 알아보려 노력한다. 와... 이제 열한 살인데, 정말 성숙하고 괜찮은 아이 같다! 어쨌든 좋다.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면서 누군가에게 기도할 수 있다는 건, 마치 일기 쓰기처럼 자신의 하루를 뒤돌아보게 하고,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할 거다. 당연히 아이를 한 뼘 더 성장하게 한다. 글이 끝날 때까지 마가렛은 종교를 선택하지 못한다. 하지만 괜찮다. 아이에겐 앞으로도 시간이 많이 있으니. 이 또한 우리 중 많은 이들의 모습이 아닐지... 난, 누구에게 내 하루를 털어놓고 기원하나? 그걸 하고는 있는지?


출간 당시 몸의 이미지나 생리, 소녀들이 경험하는 두려움 등에 대한 과감하고 상세한 묘사에 종교 이슈까지 합쳐져, 이 책은 몇몇 보수적인 곳에서 금지서가 되기도 했다. 에...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 것 같지만 또 막상 뜯어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게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둘러대면서 이런저런 작품을 뭇매질한다. 그래도, 막 십 대에 접어든 아이들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이슈들을 예리하게 다룬 이 작품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동안 Judy Blume이 워낙 까다로워 영화로 만들어지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 우리가 사랑했던 마가렛이 그저 흔한 영화 속의 한 아이로 적당히 묘사됐었다면, 엄마가 돼, 딸들에게 마가렛을 소개했던 그녀들로부터 원성이 만만치 않았으리라.


50년 전 아이들처럼, 지금 막 십 대에 접어든 아이들도 마가렛처럼 걱정하고 불안해하면서 자란다. 신체 변화, 친구, 그리고 몇 배로 늘어난 공부 걱정까지 떠안고 자라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50년 전에도 너 같은 마가렛이 있었다는 걸 알려 주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자연스럽게 누구나 비슷한 걱정을 하며 자란다는 걸 알게 될 테니. 그건 불안한 마음에 꽤 큰 위로가 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어떤가? 오랜만에 추억에 젖어 볼 수 있다. 분명 나도 마가렛이었는데... 지금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나? 그때를 추억하니 떠오르는 얼굴이 많다. 그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으려는지... 궁금해진다.      


Are you still there, God? It’s me. I’m still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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