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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May 03. 2023

이상한 나라에서 헤매기

아마 내 주변에 앨리스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같은 아이가 있었다면, 난 그 아이에게 무지 관심을 가졌을 것 같다. 그 아이가 툭하면 풀어놓는 불평도 잘 들어주고, 끊임없이 해 대는 혼잣말에 귀도 기울이고, 되지도 않는 질문에 나름 답도 해주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왜?? 일단 나 포함 하루 종일 말 몇 마디 안 하고 사는 우리 식구랑은 매우 다른 긴장감을 줄 것 같고, 어이없이 꾸며대는 빤한 얘기가 너무 귀여울 것 같고, 지치지 않고 이야기를 꾸며내고 거기다 정리, 평가까지 붙여가며 얘기를 불려 갈 아이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줘야 할 것 같고, 암튼, 늘 뭔가를 떠들어 대느라 요리조리 움직이고 있을 그 통통한 볼따구니를 꼬집어 주고 싶은 그런 아이가 아닐까 싶어서다.

평소와 다름없이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앨리스의 일상에 갑자기 이상한 이야기가 끼어버렸다. 자기 몸이 연거푸 늘어났다 쭈그러들었다를 반복하지 않나, 동물들이 주인공처럼 등장하는 이상하고 엉뚱하고 뭔가 신비스럽기까지 한 세상이 펼쳐진다. 그 세상의 언어는 매우 이상해서 죄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은데, 또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또 잘 생각해 보면 완전 난센스인 얘기들 투성이다. 뭔가 이상하고 어지럽지만 지겨울 틈이 없어 또 재밌는 세상이다. 우리 꼬마 아가씨는 이 이상한 나라에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듣고, 그리고 여러 사람(동물)을 만나는 일로 아주 신이 났다.

많은 이들은 이 글이 아동 청소년 문학의 클래식으로 알고 있겠지만 (그게 맞겠지만), 사실 난 이 글은 성인이 읽기에도 매우 녹녹지 않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훌륭하신 분들께 무수한 영감을 주었다고 하는 클래식 중의 클래식이니… 분명, 심오하고 중요한 메시지가 있을 거야, 란 생각에 양미간을 찡그리며 읽고 생각하고를 반복하지만, 마구잡이로 나열된 듯한 에피소드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뭔가 심오한 것을 읽어 내기도, 혹은 행간에 숨어있는 뭔가?? 를 읽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에… 결국… 케이오 패를 인정하고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 보는 수 밖엔 없다는 걸 깨닫는다.

① 앨리스에게 갑자기 끼어 들어온 이상한 나라는, 애들 눈에 보이는 말도 안 되고, 이상하고, 게다 위선적이기까지 한 어른들의 세계를 비유한 걸로 (많이들 이렇게 얘기한다)…. ② 그 이상한 나라에 퐁당 빠져 울고, 즐기고, 화내고, 분노하며 따지고, 겁나 쫄고… 뭐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아이는 훌쩍 자라 천둥벌거숭이 같던 모습에서 어엿한 숙녀의 모습을 보이고, 그러다 보니 꿈같은 꿈은 끝나버리고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인 걸로… ③ 작가가 에피소드마다, 혹은 인물들에게 숨겨 놓았을 거라 믿었던 심오한 무언가는, 사실 그냥 난센스 게임이고, 잘 안 풀리는 수수께끼 그 자체인 걸로…

너무나 나 다운 단순한 해법을 찾고 나니, 글이 생각보다 단순하고, 유쾌 해진다.

이 세상이나 저기 이상한 나라나 별거 없지 않을까? 이 글이 이리도 오래 읽히는 건 아마 먼 이상한 나라에 가서 살게 돼도 앨리스처럼 경험하고, 배우고, 적응하고, 실패하고, 울고 웃으면서 살아야 한다는 걸 엉뚱하고도 재미지게 가르쳐 주기 때문이 아닐지. 물론, 1865년부터~ 오랜 시간 동안 무수한 분야에 영감을 주었다고 소개가 되는 이유는 단순히 이런 메시지 때문만은 아닐 거다. 중간중간 삽입되어 이해를 엄청스레 도와주는, 당시 엄청 획기적이었을 듯한 삽화나 수수께끼, 기기묘묘한 메타포, 게다 뭔가 있을 것 같은 (그러나 잘 모르겠는) 수학적 로직 (작가가 수학자였으니). 이런 것들이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수많은 독자를 좌절도 시키고 감탄도 시켰기 때문일 거다.

기타 등등, 기타 등등…

평범한 일상에도 가끔 이상한 나라는 끼어든다. 대체 어쩌다 이런 이상한 세계에 떨어졌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는 상황도 경험하게 된다. 발버둥 쳐도 탈출할 수 없다면, 그 이상한 나라에서 정신없이 흔들리면서도 뭔가 경험하고, 버티며 사는 법도 배워야 하는 거겠지. 그렇게 배울 수 있다면, 그런 경험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거다. 우리 꼬마 아가씨의 경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