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 Apr 29. 2023

꼭 한 번만 내민 손을 잡아 준다면

Anthony Browne의 Voices in the park (1989) 같은 시간에 같은 공원에 산책하러 나간  가정 (①엄마와 아들 그리고  ②아빠와  그리고 ) 경험을  개의 다른 목소리로 얘기한 그림책이다.  목소리에 따라 색채, 폰트, 그림의 형태, 화면 곳곳의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변하고 있기 때문에,  페이지  페이지를 구석구석 들여다보면 아주 쏠쏠한 재미를 느낄  있다. 게다  때마다 새로이 눈에 들어오는 무언가가 있으니, 이것 만으로도 작가의 역량이 짐작된다.


글은 하나의 상황을  개의 다른 관점에서 읊어주니, 관점에 따라 같은 사건도 얼마나 다양하게 보여질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준다. 물론 그걸 잊고 내가 보는  유일한 거야,라는 굳은 신념에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보기에도  사는  같이 보이는 엄마와 아들 가정은 엄마가 집안의 모든 , 심지어는 개까지도 완벽하게 장악한 명실공히 리더로 보인다.  엄마라는 분은  사는  엄마의 전형을 하나도 거스르지 않고 보여준다.  공원을 천방지축 누비고 다니는 저런 아이들 이랑은 다르다,  아주 바쁜 와중에 잠시 쉬는 거니, 쉬기만 해야지 다른 얘들과 말을 섞을 필요가 없다. 비록 대사로 처리되지는 않았지만, 엄마의 드높은 자부심에서 나오는 표정은  대사를  입에 달고 사는 얼굴이다. 반면 실업자인 아빠와  가정은 무기력하고 우울해 보이는 아빠를 귀엽고 발랄한 딸과 더더 기운 넘치는 개가 끌고 다니면서, 엄마와 아들 가정과는 아주 딴판의 권력관계를 보여준다. 아빠는 가난과 자신의 우울함에 빠져 어린 딸의 인생에 관여할 엄두조차 내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그저 하루하루 시간을 때우는 사람처럼 보인다. 다행히 아직은 발랄한 딸과 개가 오히려 아빠를 끌고 다니며 자신들의 에너지를 아빠에게 전해주어, 엄마와 아들과 개의 가정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가정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정만 놓고 본다면 부자 가정과 가난하고 우울한 가정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이런 작품이 독자에게 대체 무슨 재미와 가치를 전달할까 의심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괜히 Anthony Browne 아니다. 핵심은 아이들에게 있다. 완전히 다른 각자의 스토리를 가진 아이들이지만,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개들은 개들끼리 친구가 되어 함께 뛰어논다. 물론 아이들도 처음부터 스스럼없이 서로를 받아들인  아니다. Charlie 자기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아이가 여자인 것이 탐탁지 않았고, 여자아이 Smudge 엄마 옆에  붙어 앉아 있는 남자아이가 샌님 같아 별로였다. 그래도 아이들은 내가 가진 편견을 깨고 나와 다른 남을 받아들이기, 그리고 함께 놀기라는  어려운  해낸다.


? 어른들은 결코 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낼까? 그림을  보고 있다 보면, 흔히 짐작할  있는 이유, 그러니까어른들보다 쌓아온 편견의 무게도 덜하고 다름 유연하게 받아들여서? 같은 것보다는 조금 다른 이유가  오른다. 그건 바로 아이들이 느끼는 외로움이다.  분명 그것도 크게 한몫했을 거로 생각한다. 엄마가 정해 놓은 시간표에 맞춰 사는 Charlie  외로웠다. 아이답지 않은 깔끔한 옷차림으로 혼자 우두커니 창밖을 응시하는 Charlie 모습은 (I was at home on my own again,  다시 혼자였다)  아이를 어른처럼 보이게 했다. 주머니 속에 넣은 손과  그림자가  아이의 극심한 외로움을  표현해 준다. 엄마는 아마도 옷을 더럽히며 아이들과 뛰어노는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Charlie 밖에서 아이들과 치고받고 노는 것이 얼마나 꿀잼인지 배워  기회 또한 없었을 거다. 옷은 언제나 정갈, 깔끔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모습으로 아침부터 밤까지 살았을 것이다. 그건 신나지도 재밌지도 않은 일이었고, 지루하고 무엇보다 외로운 일이었을 거다. 그건 천성이 밝은 Smudge 마찬가지가 아니었을지. 밝고 사교성이 많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절대 아니다. 특히나 무기력한 아빠 밑에서  가난에 쪼들리며 사는   아이의 사회도 아주 협소하고 단조롭게 만들어 버렸을 것이고, 때문에 친구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최강 밝은 성격의 아이에게도 무겁고 힘든 외로움이  따라다니지 않았을까?


  번만 내민 손을 잡아 준다면~~ 밤하늘을  수도 있을 텐데~ 

좋아하는 뮤지컬   넘버의 가사다. 아래층 여자를 보고 바로 사랑에 빠지는 위층 남자는 노래한다.   번만 내민 손을 잡아 준다면 ~ 밤하늘을 날 수도 있을 텐데~ 몽골 남자와는 달리 이곳 세상을 조금 더 아는 아래층 한국 여자는 아마 처음부터 그 남자에게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그의 손을 잡아 준다. 결과... 당연히, 밤하늘을 날지 못한다!! 그래도 아주 조금 덜 외로웠을 거다. 남자가 여자에게 빠졌던 것도, 여자가 피하려고 했던 남자의 손을 결국엔 잡아 주었던 것도 결국엔 외로움이라는 무서운 녀석 때문이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적어도 두 사람은 어제보다 오늘은 1만큼이라도 나아졌으면 하는 소망을 이룬 건 아닌지.


어른 같은 표정을 일관하던 Charlie는 Smudge와 함께 놀면서 점점 아이의 얼굴을 되찾는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외롭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Smudge와 놀다 보니 이상한 여자애라고 느꼈던 Smudge에 대한 선입견도 금방 참 괜찮은 아이 같다, 로 변해버린다. 그러니 더더 행복할 수 있었다. 물론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말이다. 다시 엄마에게 끌려가는 Charlie의 곁눈질하는 모습이 어찌나 애잔하던지.


나와 다른 사람의 손을 잡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그건 용기를 내서 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 일 거다. 밤하늘을 나는 기적 같은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지만, Charlie처럼 잠깐이라도 신나는 경험 정도는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 그림책은 네 개의 다른 시선, 다른 목소리, 인물의 전형성, 기타 등등, 기타 등등, 많은 얘깃거리를 풀어내고 있지만, 난 이런 훌륭한 이슈 중 외로움이란 것에 특히 더 집착하게 된다. 아이들 얘기에서 왜 굳이 외로움에?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느 시 에서처럼 (수선화에게, 정호승) 외로우니까 사람 아니겠는가! 아마도 아이들은 어른보다그 외로움이란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풀어나가는 건지도.



작가의 이전글 강물처럼 말하는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