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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Apr 27. 2023

강물처럼 말하는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기

I talk like a river (Scott, 2020)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다.

물론 잘 만든 그림책 대부분이 그렇지만, 이 책은 그림만으로도 정말 많은 얘기를 전달한다. 유화일 듯한데, 그림 한 장 한 장이 외로운 나를 부드럽게 위로한다. 강물과 아이의 얼굴, 그리고 뭉개진 배경, 중간에 삽입된 접지까지.. 모두 과하지 않게 말 더듬는 아이의 이야기를 해 주려 애쓰고 있다. 배달되어 온 그림책을 휘리릭 넘기다 접지인데 파본인 줄 알고 부글거리다 칼로 붙어 있던 부분을 잘라버린 부끄러운 순간도 있었다. 덕분에 그 아름다운 장이 잘려 나가는 거대 손실을 보았다. (쓸데없이 왜 이런 일에선 행동이 그리 빨랐을까!)

     

아침에 눈을 뜬 아이의 시야에 많은 게 들어온다. 눈에 들어온 것들은 저마다 이름을 가지고 있고, 당연히 그 이름은 소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아이는 조용하다. 학교에서 발표해야 하는데... 입이 딱 달라붙어 말이 나오지 않는다. 뚫어져라 바라보다 킥킥거리는 아이들이 자신을 잡아먹으려 덤벼드는 괴수처럼 무섭다. 도망가고 싶다. 아빠는 상처받은 아이를 강가로 데려간다. 강물은 말없이 아이를 위로한다. 강기슭에 부딪히는 강물을 보며 아빠가 말한다. “너는 저 강물처럼 말하는 거란다.”      


잔물결도 움직임도 없어 보이는 잔잔한 강물도, 거칠게 흘러가고 여기저기 바위에 부딪히며 물살이 빨라지기도 물길이 꺾이기도 하는 강물도. 강물이 흐르는 모습은 아주 다양한데, 아이가 말하는 모습은 어떤 강물을 닮았을까? 아마 아이는 발표하기 위해 달달 외우고 연습에 또 연습했을 거다. 그래도 발음도 어눌하고, 목소리 크기도 조절이 안 돼, 듣는 이를 당황하게 만드는 소리가 나올 뿐이다. 물론 그마저도 나오지 않는 날이 훨씬 더 많다. 어쩌면 평생을 안고 가야 하는 장애일지도 모른다. 아이처럼 ‘다른 모습’을 하고 사람들 앞에 서는 건 어른에게도 몹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아이는 아빠가 가르쳐 준 대로 “난 강물처럼 말한다.”라고 한다. proud river (당당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말을 잘한다는 건 대체 무얼까? 말 잘한다, 하면 떠 오르는 여러 이미지 안에 분명히 이 아이 같은 모습은 없다. 하지만 어떤가! 아이는 이미 자신 모습대로 아름답게 말하고 있는데.

검색해 보니 작가 자신이 말을 더듬는 이슈를 가졌다고 한다. 와! 내가 보기엔 그는 아주 훌륭한 시인이다! 강물처럼 이야기하는 시인! 그렇다면 그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닐까? 이 아이처럼 말이다.


책 마지막에 삽입한 How I speak에서 작가는 fluency (유창성), normal speech (정상적인 말)라는 단어를 stutter (더듬는다)라는 단어와 대비시켜 사용하고 있다. 어린 시절 작가의 언어치료사가 궁극적으로 유창성에 다다르는 것이 치료의 목표라고 했단다. 아마 그건 언어치료를 위한 입문서 1장 정도에 나오는 내용일 텐데, 그 대목을 읽는 순간 무언가가 가슴을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것만 같다. 어쩌면 이 아이는 언어치료사가 말한 유창성을 내내 얻지 못할지 모른다. 그 ‘다름’을 지니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건, 발표를 못 한 자신을 비웃던 아이들을 견디는 거 정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외롭고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강물 같은 자연 앞에선 어떨까? 강물 앞에 서면, 유창하게 떠들어대는 멋진 말도 그저 소음으로 묻혀버리지 않을까? 그 앞에선 아무리 달라도, 어떤 장애가 있어도 그저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게 아닐지.    

  

작가는 말했다. 자신도 가끔은 불안해하지 않고 우아하게 적확한 말을 잘하는 사람이고 싶다고... 그러나 또 말한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다. 

    

한 번쯤 이런 질문을 해 보는 것도 좋겠다.

나는 나답게 말하고 있나?

나는 ‘다른’ 사람들의 ‘다른 화법’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인가?

치료사가 말하는 언어 유창성이 떨어져도, 강물처럼 말을 하는 사람의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있나?

얼마나 멋진 일인가! 강물처럼 하는 말을 이해한다는 건 말이다.

강물처럼 말하는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는데, 나는 이미 아이의 말에 아주 큰 위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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