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바이더 씨』

by 새벽

(케네스 로너건 감독, 2016)


전혀 의도치 않았던 일이었으나, 상실과 애도에 관한 소설을 읽고 다음 날 이 영화까지 보게 됐다. 덕분에 며칠을 ‘상실’ ‘애도’라는 감정에 깊이 빠져 허우적거렸다.

음... 영국의 그 맨체스터가 아니라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작은 도시 맨체스터가 배경이다.

영화는 도시의 항구를 화면 전면에 담으며 리 챈들러라는 남자의 상실과 고통에 관한 얘기를 풀어낸다.

보스턴에서 건물 관리일을 하던 리가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맨체스터로 돌아온다. 그는 혼자 남겨진 열여섯 살 조카의 후견인이 됐다는 소식에 어쩔 줄 몰라하는데.


그는 맨체스터를 떠나야 했다. 그곳에선 살 수가 없다고 느낀다. 하지만 조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그 애를 돌봐야 하는 리는 고민할 수밖에 없다.


점차 그가 고향인 맨체스터를 떠나야 하는 이유가 나온다.


자신의 실수로 발생했던 화재와 아이들을 잃은 아픔.


리는 체류해 보려고 애쓰지만, 곳곳에 자신의 과거가 스며있는 그곳에서 머물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어떤 아픔은 결코 극복할 수 없기도 하다.


누군가는 ‘시간이 약이다.’‘살면 살아진다.’라고 하지만, 영화는 ‘살아진다는 게’ 그 아픔을 극복했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잔잔하게 말하고 있다.


워낙 추운 지역이니 땅이 얼어 사체를 매장할 수 없었던 리는 형의 사체를 냉동고에 보관하고 봄이 되면 매장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를 냉동고에 보관하는 게 끔찍했던 조카는 집의 냉동고를 열자 떨어지는 닭고기 팩에 거의 패닉 상태가 되는데...


아마 그 아이에게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지 모르는 아빠의 죽음과 장례 과정 등을 정말 현실적인 눈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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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기만 한 고통 속에서 서서히 빠져나온다고 해서 그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는 것도,

잊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고통은 그렇다.

그저 그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것뿐이지.


리로 분한 배우(케이시 애플렉)의 까칠하고 건조한 눈빛과 맨체스터 바닷가가 잊히지 않은 채 지속되는 고통의 무게를 아주 잘 그린 작품이 아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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