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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May 19. 2023

어느 가족

고레야다 히로카즈의 영화에는 다양한 가족이 나온다. 혈연집단도 있고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걸어도, 걸어도 (2008),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013), 바닷가 마을 다이어리 (2015), 어느 가족 (2018)...


그의 영화 속 가족은 혈연집단에서 점점 확장되더니 어느 가족에서는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찐으로 가족 같은 가족이 나온다. 그러니 영화를 볼 때마다 자주 질문을 던지게 된다. ‘가족이 대체 뭘까?’ 우리처럼 핏줄이 중요한 사람들에게 가족은 당연히 피로 연결된 사람들이었다. 그게 아마 굳건한 제1 필요조건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는데 가족의 모습이 변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작년에 읽었던 훌훌 (문경민, 2022) 역시 ‘가족이 뭘까?’란 질문을 하게 했다. 유리는 그냥 혼자 사는 아이 같았다. 어렸을 때 입양됐고, 유리를 입양했던 엄마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어린 유리를 떠넘기고 가출? 했고, 그나마 어른다운 할아버지는 유리가 성인이 될 때까지 맡아주겠다며 아이에게 집과 음식 그리고 약간의 생활비를 제공하고 있다. 덕분에 고2인 유리는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할아버지와 같은 집에서 동거인으로 살며, 대학 가면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이에게 드리웠던 그늘과 그 애가 입었을 마음의 상처는 가늠하기도 어렵지만, 그래도 아이는 자립심 강한 아이로 잘 자랐다. 그러다 갑자기 연우라는 아이가 끼어든다. 입양모의 죽음으로 덩그러니 혼자 남은 연우가 할아버지와 함께 살기 위해 그 집으로 들어오면서 문제가 좀 복잡해진다. 게다 암 치료 중인 할아버지까지 신경 쓰인다.


입양이라는 이슈가 글의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다. 쉽지 않은 결정이고 노력이 많이 필요한 가족살이일 거다. 하지만, 결정하고 약속하고 이미 가족이 된 사이니, 그들은 그냥 가족인 게 아닐까? 굳이 입양, 혈연, 이런 거 구분할 필요 없이 말이다. 그냥 서로에게 징글징글한 사이지만, 공기처럼 내 일부인 그런 가족. 가족이란 사람들이 원래 서로에게 그런 존재들이다. 입양으로 맺어졌든, 혈연관계든, 서로에게 징글징글한... 그러나 내 편인 사람들.


작가의 말을 읽어 보면, 인터뷰한 가정에서 입양이 소재인 글이니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던데. 대상화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상처가 깊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처가 되는 눈길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위해

단단해지게 하는 게 또 가족이다. 혼자가 아니니, 함께 당당히 살아야 할 누군가가 있으니... 나를 단단해지게 하는 그들. 바로 가족... 그러니, 그분들도 단단해지길 바란다. 서로를 지켜주는 가족으로 말이다.


아버지가 떠나시던 순간 난 말했다. 미련 두지 말고 훌훌 떠나시라고, 좋은 곳으로 빨리 가시라고...

그 때문인지 내게 ‘훌훌 떠난다’는 말은 참 쓸쓸하게 들린다. 유리에겐 어땠을까? 어떤 관계도 맺지 못했던 곳. 아무도 자신을 잡지 않을 곳이니 떠나버리겠다는 상처의 자조적인 표현? 하지만 어린 연우가 끼어들면서

유리는 진짜 누나가 돼 간다. 그게 싫지만은 않다. 아마도... 유리의 훌훌 떠날 계획은 실현되지 못할 듯하다.


이제야 가족을 갖게 된 유리를 꼭 안아주고 싶다. 열일곱이 되도록 늘 혼자였던 그 아이에게 드디어 가족이

생긴 거다. 그 아인 틀림없이 연우의 누나로, 좋은 어른으로 살아가게 될 거다.


대학만 가면 이 집을 훌훌 털고 떠나려 했는데,

징글징글한 과거는 싹둑 끊어 내고 오롯이 나 혼자 살고 싶었는데,

연우를 만나고 진로 고민이 조금 복잡해졌다.

연우와도 거리를 둘 수 있을까? 거리를 두어야 할까?     

떠나지 못할 이유가 생겼는데 이상하게 가뿐했다.


어떤 가족은 몇 대가 모여 복닥복닥 살아간다.

어떤 가족은 함께 살자고 약속한 여자와 남자가 아이 없이 반려 동물과 함께 살아간다.

어떤 가족은 동성의 파트너가 사랑으로 입양한 아이와 함께 살아간다.

어떤 가족은 영화 속 가족처럼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함께 살아간다.     


이들 모두가 가족이다. 징글징글하게 내 편인 가족.

살아가는 모습은, 가족의 모습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알록달록한 색을 띠게 될 거다. 그러니 그 다채로운 색을 그 자체로 볼 수 있는 마음과 눈만 있으면 될 일 아닐까. 내가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가족을 맞게 될지 모를 일이니...


그래서 가족은 대체 뭘까? 여전히 딱 떨어지는 정의는 모르겠다. 하지만 혈연관계가 필요조건이 아니란 건 분명하다. 피를 나누지 않았어도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사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이미 가족 아닐까?


유리와 연우 그리고 할아버지.

그들은 이미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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