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by 새벽

(존 윌리엄스 글, 1965)


세 번쯤 읽은 소설이다.

이번에 이유가 있어 다시 읽었다.

음... 난 왜 이 글을 세 번이나 읽었을까?

왜 이 책은 출간 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 갑자기 많은 이들의 인생책이 됐을까?


아마 ‘윌리엄 스토너’라는 인물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가난한 농가의 유일한 자식으로 아버지가 부여한 임무(농대에 입학해 땅에 대한 과학으로 무장한 후 가족의 생계를 유지·발전시켜라)를 가지고 미주리 대학 농대에 입학한다. 하지만 2학년 때 듣게 된 교양 영어가 그의 인생을 바꾼다.


교수가 그에게 물었다. “셰익스피어가 30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자네에게 말을 걸고 있네, 스토너 군. 그의 목소리가 들리나?” (20) 그날부터 그는 눈이 아플 정도로 책과 씨름을 하면서 문학에 빠져든다. 고향집과 아버지의 땅과 농사는 그에게 어떤 의미도 없는 것이 됐고, 그는 천천히 영문학자의 길을 가게 된다.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에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6)


스토너는 조교수까지밖에 올라가지 못한 것뿐만 아니라, 연구자로 대가가 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주립대 보직 교수로 학교 타운 밖을 벗어나 본 적 없이, 운전면허증 한 번 받아본 적 없이 평생을 자기 집과 연구실, 그리고 강의실만을 뚜벅뚜벅 걸으며 오갔던 사람이다. 그는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지 않았고, 그냥 자신이 택한 길 위에서 천천히 그러나 계속 걷다가 그 길 위에서 세상과 작별했다.


글의 어느 부분에도 파격이라는 건 전혀 없다. 요즘 작가들이 보여주는 현란하고 기교 넘치는 문장도 전혀 없고, 도파민을 뿜뿜 솟게 할 얘기도 없다. 그저 묵묵하게 버티는 삶의 진수를 보여준 한 인간이 살아온 얘기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생이 겨우 이건가’ 같은 실망을 하는 독자에겐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간 스토너의 삶이 큰 울림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친구도 별로 없었고, 가족과도 깊은 유대감을 쌓지 못한 그의 삶에 오류가 없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른 인간들처럼 그도 이런저런 실수를 했고,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발을 내디뎠다. 천천히. 그러나 계속.


평범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자신의 길을 갔던 이 인물은 가성비가 낮은 내 삶이 보잘것없이 느껴질 때마다 낮은 소리로 내 귓속에 말을 해 주곤 했다. 가능한 한 오래 버티라고. 그러니 아마 스토너는 앞으로도 계속 내 인생책으로 남아 있을 듯하다.


암으로 죽어가던 그는 섬망을 경험하면서 초여름날 같은 젊은이들의 웃음소리를 듣는다.

살아온 날들을 관조하는 스토너가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


“넌 무엇을 기대했나?(387)


...


난 무엇을 기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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