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3권 3장-1)

지금 필요한 건 뭐_스피드

by 또 래 호태

유레 없는 정책 속도_책임 있는 기구라 가능한 일



이태원 이후, 말은 더 이상 시간을 벌어주지 못했다.

사과는 남았지만, 사과로는 더 이상 회의를 열 수 없었다.


대통령이 사과를 했다.

국민은 그 문장을 이미 외우고 있었다.

이번에는 문장 다음에 무엇이 오느냐가 문제였다.


그날 밤, 선지훈은 회의실이 아니라 복도에서 결론을 받았다.

복도에는 장관도 없고 카메라도 없었다.

대신 한 가지가 있었다.

*결정이 늦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하는 공기*였다.


선지훈이 말했다.


“이번에도 검토로 가면, 다음 명단이 옵니다.”


누군가가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선지훈이 답했다.


“속도로 갑니다.”

속도라는 말은 원래 관료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다.

속도는 절차를 건너뛰게 만들고, 절차를 건너뛰면 책임이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책임은 이미 남아 있었다.


정세린이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종이는 계획표가 아니었다.

*결재선 지도*였다.


“결재선을 줄이면 됩니다.”

“줄이는 기준은 하나입니다.”

“사람이 죽지 않게 하는 데 필요 없는 단계는 전부 삭제.”


정세린은 이유를 길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회의가 길어지면, 그만큼 누군가의 시간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호태가 말했다.


“현장은 기다리지 않습니다.”

“오늘 결정하면, 오늘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박철우가 덧붙였다.


“오늘 결정하고 내일 움직이면, 그 사이에 또 벌어집니다.”


그 말이 끝나자, 선지훈이 단호하게 정리했다.


“법. 예산. 인사. 권한.

네 가지를 따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묶습니다.”

“묶어서 오늘부터 실행합니다.”


다음 날 아침, 법안이 올라갔다.

법안 제목은 길지 않았다.

길면 쟁점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법안의 첫 조항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었다.

“무엇을 하지 말 것인가”였다.


개인 데이터 수집 금지.

랭킹 금지.

성과 보고 금지.

홍보 금지.


이 금지 조항들이 시스템 요구사항으로 고정됐다.

금지 조항이 고정되자, 논쟁이 사라졌다.

논쟁이 사라지자, 속도가 생겼다.



<법 제정>


국회 일정이 잡혔다.

상임위가 열렸다.

토론은 길지 않았다.


반대 논리는 늘 같았다.


“권한 충돌 우려가 있습니다.”

“재정 부담이 큽니다.”

“전례가 없습니다.”


선지훈은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정세린이 나갔다.

정세린이 숫자를 들고 가지 않았다.

정세린은 *구조*만 들고 갔다.


“권한이 충돌하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은 권한이 비어 있는 게 문제입니다.”


그 한 문장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 문장은 반박이 어려웠다.

반박하려면, “비어 있어도 된다”라고 말해야 했기 때문이다.


법안은 묶이지 않았다.

다른 법안과 병합되지 않았다.

정쟁의 언어가 붙기 전에 통과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전례 없는 속도”라는 말이 복도에서 나왔다.

이번에는 자랑이 아니라, 체념에 가까웠다.

이제는 늦을 수 없다는 체념이었다.



<예산>


예산은 더 빠르게 움직였다.


기획재정부 라인이 물었다.


“근거가 있습니까.”


선지훈이 답했다.


“근거는 이태원입니다.”


정세린이 이어받았다.


“재정 추계는 사고 비용입니다.”

“사고가 나면, 우리는 이미 지출합니다.”

“지출을 예방으로 옮길 뿐입니다.”


예산은 ‘추경’이라는 단어로 묶이지 않았다.

우선 집행이 결정됐다.

정산은 나중이었다.


관료들이 가장 싫어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인사는 더 노골적이었다.


선지훈은 파견 요청서를 다시 쓰지 않았다.

*지정서*로 바꿨다.


부처는 이름을 적어야 했다.

거절하면 기록이 남았다.

기록이 남으면, 다음 브리핑에서 질문이 온다.

질문이 오면, 장관이 서야 한다.


부처는 결국 사람을 보냈다.

보낸 사람이 국장급인지 아닌지는 그다음 문제였다.

정세린이 그 문제를 잘랐다.


“국장급만.”

“대리 참석은 시스템에 없습니다.”


호태가 한 줄을 더 얹었다.


“현장 권한 없는 사람은

현장을 늦추는 사람입니다.”


그 말이 인사 기준이 됐다.

능력보다 경험, 경험보다 권한.

권한이 없으면 의미가 없었다.



<권한>


그리고 마지막이 권한이었다.


권한은 문서로 주지 않았다.

*자리로 줬다.*


관리공단 설립이 확정됐다.

운영 주체가 확정됐다.

감독 주체가 확정됐다.

개발사는 운영권이 없다는 조항이 박혔다.


정세린이 운영을 쥐었다.

호태가 현장을 쥐었다.

박철우가 사후를 쥐었다.

선지훈이 문장을 쥐었다.


권한이 분산되지 않자, 핑퐁이 멈췄다.

핑퐁이 멈추자, 속도가 유지됐다.



<책임자 서명>


그날 저녁, 선지훈은 서명했다.


서명은 ‘건의’가 아니었다.

서명은 ‘책임 표시’였다.


기자들이 물었다.


“왜 이렇게 빠릅니까.”


선지훈이 답했다.


“빠른 게 아닙니다.”

“이제야 제때입니다.”


정세린이 옆에서 덧붙였다.


“우리는 오래 준비했습니다.”

“준비하지 않은 척했을 뿐입니다.”


호태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현장은 내일부터가 아닙니다.”

“현장은 오늘입니다.”


그날, 전례 없는 속도는 기적이 아니었다.

전례 없는 속도는 *늦음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국가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았다.

속도가 생겼다는 건, 이제부터 핑계가 줄어든다는 뜻이었다.

핑계가 줄어든다는 건, 마침내 *현장으로 내려간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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