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장_국가가 국민에게 지르는
전화는 끊기지 않았다.
번호만 바뀌었다.
처음에는 교육청이었다.
받는 쪽은 정중했다.
“말씀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다만 그 사안은 저희 소관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학부모가 물었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합니까.”
짧은 정적이 흘렀다.
상대는 준비된 답을 꺼냈다.
“행안부 쪽에 문의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안전은 거기가 주관입니다.”
행안부 민원실은 더 빨랐다.
“교육활동 중 사고는 교육부 소관입니다.”
“저희는 지자체 안전관리 총괄이긴 합니다만, 학교는 교육부 체계로 움직입니다.”
학부모가 다시 물었다.
“그럼 지자체가 해야 합니까.”
“지자체는 법적 근거가 있어야 움직입니다.”
“학교 담장 안은 학교 책임입니다.”
이번에는 구청이었다.
구청은 먼저 선을 그었다.
“학교 담장 안은 관할이 아닙니다.”
“학교 담장 밖 통학로도, 학교 요청이 있어야 조치합니다.”
“요청은 학교에서 하셔야 합니다.”
학교에 전화가 돌아왔다.
행정실은 한숨을 삼켰다.
“저희도 위험한 건 압니다.”
“그런데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공문 요청뿐입니다.”
“공문은 교육청 통해야 합니다.”
학부모가 말했다.
“교육청은 행안부로 가라고 했습니다.”
행정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그럼… 저희도 그쪽에서 지침을 내려야 움직입니다.”
전화는 다시 교육청으로 갔다.
교육청은 목소리를 낮췄다.
“지침은 쉽게 못 내립니다.”
“지침을 내리면 책임이 생기거든요.”
학부모가 묻자, 답은 한 문장으로 바뀌었다.
“그건 저희가 결정할 사안이 아닙니다.”
결정권이 없다는 말은 익숙했다.
다만 이상한 건, 모두가 ‘결정권’을 말하면서도
누구도 ‘결정’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문서는 더 잔인했다.
문서는 감정을 숨기고, 책임만 미끄러뜨렸다.
교육부 회신:
학교 안전은 중요하나, 안전관리 주관 부처 협의 필요.
행안부 회신:
교육활동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교육부 중심의 검토가 타당.
지자체 회신:
법적 근거 및 예산 배정 없이 선제 조치 곤란.
교육청 회신:
학교 자율 운영 범위 내에서 조치 권고.
학교 공문:
상급 기관 지침 부재로 자체 조치 한계.
모든 문장은 완벽했다.
완벽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 사이에 변했다.
안전 교육을 더 받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이거 해도 소용없어요.”
“어차피 바뀌는 거 없잖아요.”
그 말이 어느 반에서 시작됐는지 아무도 몰랐다.
이상하게도, 다른 반에서도 같은 말이 나왔다.
교사는 아이를 혼내지 못했다.
교사는 자신이 뭘 바꿀 수 있는지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학부모는 민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답변은 템플릿이었다.
**관계기관과 협의 중입니다.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협의는 계속됐다.
재발은 이미 됐다.
그때부터 핑퐁은 기술이 됐다.
부서가 바뀔 때마다 말투도 바뀌었다.
“저희가 하겠습니다”는 없었다.
대신 이런 문장이 늘었다.
“검토해 보겠습니다.”
“관련 부서에 전달하겠습니다.”
“협의가 필요합니다.”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예산이 없습니다.”
“전례가 없습니다.”
“지침이 없습니다.”
마지막에 남는 건 언제나 하나였다.
“그래서, 지금은 어렵습니다.”
결국 고위 정책 회의 소집이 떨어졌다.
회의 명칭은 길었다.
참석자 직함도 길었다.
그러나 그 직함들이 길어진 만큼,
현장의 시간은 더 짧아졌다.
회의실 문 앞에서 누군가 말했다.
“오늘은 결론 내야 합니다.”
다른 누군가가 조용히 받았다.
“결론은… 누가 가져갑니까.”
“주관은 누가 가져갑니까.”
그 질문에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사망자 명단이 테이블 가운데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