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포스를 낭만으로 보다

by 또 래 호태

시시포스의 또 다른 이름



날마다 똑같은 일상이 반복됐다.

호태는 문득 시시포스를 떠올렸다.


거대한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지만,

결국 다시 굴러 떨어지고 마는 인간.

끝없는 노동, 그러나 멈출 수 없는 숙명. 죄의 대가 그리고 형벌.


채석장의 하루는 매일 똑같았다.

무한 반복되는 일상,

피로와 권태가 뒤섞인 생존의 루틴.

허름할 수밖에 없는 작업복은 늘 먼지와 기름 범벅이었다.


그는 청소부였다.

채석장 바닥의 석분을 치우고 또 치우고

쓸어낸 돌가루가 또다시 쌓이는 그 현장에서 호태는 깨달았다.


채석장 청소부.

그것은 시시포스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하루 천 삽 분량의 석분을 퍼 날라야 하루 일과가 끝나는 사람.

그러나 그 반복 속에서

그는 조금씩 ‘살아 있음’의 의미를 다시 배워갔다.



시시포스의 낭만



시시포스의 하루가 고행이라면, 그의 삶은 지옥일 것이다.


끝없이 반복되는 일,

언제나 제자리로 굴러 떨어지는 바위.

그 무의미한 순환 속에서 누구라도 절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호태는 다른 생각을 했다.

만약 그가 오늘, 어제 이루지 못한 꿈을 다시 이루기 위해

또다시 산을 오르고 있다면?



낭만의 시지푸스.png 낭만의 시시포스


그것이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삶을 다시 시작하려는 시도라면?

그렇다면 시시포스는 불행한 존재가 아니다.

그는 세상 누구보다 낭만적인 사람이다.


어제와 똑같은 돌,

그러나 매번 새 마음으로 그 돌을 밀어 올리는 사람.

그는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그는 하루를 어제를 조금 넘어서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호태는 깨달았다.

시시포스가 절망하지 않는 이유,

그건 어쩌면 그가 그 일을 유쾌하게 해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 유쾌한 시시포스.

그것이 바로 나의 또 다른 이름이다.”



시시포스를 낭만으로 보는 순간



시시포스를 낭만으로 보는 순간,

호태의 삽질은 유쾌해졌다.


고통은 여전했지만, 의미가 달라졌다.

삽의 무게는 그대로였으나,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반복되는 노동이 형벌이 아니라, 삶을 이어가는 하루의 예식이 되었다.


땀은 더 이상 피로의 증거가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 있음의 흔적이었다.

삽질의 순간마다, 호태는 깨달았다.


“행복이란 결국,

돌을 밀어 올리는 마음의 방향에 달려 있구나.”


그때부터 그의 하루는 달라졌다.

그의 시시포스는 절망의 인간이 아니라,

삶을 긍정하는 낭만의 노동자였다.


그리고 그는 유쾌한 청소부였다.


작가의 이전글나이 예순이 넘으면 채석장 청소부로 일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