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4권 3장-1)

무기한 연기

by 또 래 호태

공동책임자에게 설명하다_로드맵 2030



호태는 봉투에서 문서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두 장이었다.

위에는 수정된 2030 로드맵,

아래에는 국공위 대책회의 요약본.


“이건…”


그가 아래쪽 문서를 가볍게 눌렀다.

설명을 이어가려는 순간, 전화가 울렸다.

호태는 화면을 확인하고 바로 받았다.


통화는 짧았다.

그는 몇 번 고개만 끄덕였고, 추가로 묻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뒤, 문서를 다시 가지런히 맞췄다.


“대통령 보고 일정이요.”
잠시 말을 골랐다.
“무기한 연기랍니다.”


그는 아래쪽 문서 설명을 그대로 멈췄다.
그리고 로드맵에는 손대지 않았다.


“관찰 일정은 그대로 갑시다.”
호태가 말했다.
“어차피 현장 검증은 필요했고,

이번이 그 기회였어요. 저는… 차라리 잘됐다고 봅니다.”


정세린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확인권 제정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금 더 급한 건,

초대교실이 시스템으로 버틸 수 있는지예요.”


그는 정세린의 메모 노트를 흘끗 보았다.


“부위원장 결재 문서 공란 한 문장,

그 결론은 방금 메모로 충분히 나왔습니다.”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남은 시간은 결론을 늘리는 데 쓰지 맙시다.
구조를 보죠. 개입 기준, 언어, 실패 대응.

가능하면 이후 앱 개발의 기초 자료로도 쓰고요.”


호태는 말을 덧붙였다.


“지시가 아니라, 공동책임자로서 묻는 겁니다.”


정세린은 노트를 덮지 않았다.
잠깐 생각한 뒤, 고개를 들었다.


“관찰 연장은 타당합니다.”
그녀는 짧게 말했다.
“다만 남은 기간은 확인권을 증명하는 시간이 아니라,

확인권이 없어도 무너지지 않는 구조를 보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정세린은 메모 첫 장에 선을 하나 더 긋고 말했다.


“그럼 남은 4일은 관찰이 아니라 설계 실험이죠.
멈추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있는지,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호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촉박해지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그는 그제야 위에 놓인 로드맵을 손끝으로 두드렸다.


“확인권 제정은 미뤄진 게 아니라,
현장을 먼저 보라는 신호로 읽읍시다.”


이번에는 정세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붙이려 했던 이 로드맵의 명칭은

책임관이 관찰을 마치고 복귀한 후에 진행합니다."


테이블 위에는 닫힌 로드맵과, 정세린의 열린 노트만 남아 있었다.



[같은 시각]


국공위 부위원장실에서도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비서실장의 목소리는 낮았고, 속도가 없었다.

속도가 없다는 건, 이미 결론이 정리됐다는 뜻이었다.


“부위원장님.”


선지훈은 수화기를 귀에서 떼지 않았다.

창밖을 보고 있었다.

대답은 짧았다.


“말씀하시죠.”


“방금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코로나 *안정 국면* 판단을 공식화했습니다.”


선지훈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메모를 하지도 않았다.

‘안정’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지우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긴급, 우선, 즉시—그 단어들이 가장 먼저 내려간다.


비서실장이 말을 이었다.


“그 판단에 따라

대통령 주재 일정과 국정 우선 과제를 재정렬합니다.”


선지훈은 창가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재정렬이라는 말이

무엇을 테이블에서 내리는지 역시 알고 있었다.


“확인권 대통령 보고,”

비서실장이 말했다.

“연기로 정리했습니다.”


선지훈의 손가락이 책상 모서리를 눌렀다.


“기간은요.”


“확정된 날짜는 없습니다.”

비서실장이 답했다.

“후속 재조정으로만 남깁니다.”


선지훈은 한 박자 쉬고 물었다.


“연기입니까, 유보입니까.”


이 질문이 나올 걸 비서실장은 예상하고 있었다.


“보고 자체가… *유보*입니다.”

“‘긴급’에서 내려갑니다.”


선지훈은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다.

유보는 실패가 아니다.

하지만 유보는 늘, *기준이 공중에 뜨는 상태*로 시작한다.


“사유는요.”


“안정 국면 판단입니다.”

비서실장이 말했다.

“지금은 방역보다 회복으로 넘어가는 구간이라는 판단입니다.”


선지훈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회복’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먼저 결론을 낸다.


*이 정도면 됐다.*


“알겠습니다.”

선지훈이 말했다.

“보고는 테이블에 올라가지 않는 걸로 이해하겠습니다.”


“예.”


선지훈은 전화를 끊지 않고 덧붙였다.


“다만,”

“보고가 유보됐다고 해서 관찰이 유보되는 건 아닙니다.”


비서실장이 잠깐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계속 진행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오히려 지금이 필요합니다.”

“‘안정’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조직은 가장 빨리 잊습니다.”


잠시 침묵.


선지훈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오늘부터 ‘연기’라는 단어는 쓰지 마십시오.”

“그 단어를 쓰는 순간, 사람들은 기다려도 된다고 판단합니다.”


비서실장은 짧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통화가 끝났다.

선지훈은 책상 위의 결재문서를 보았다.

공란 하나가 여전히 비어 있었다.


그는 펜을 들지 않았다.

아직은 아니다.

문을 나서며 선지훈은 한 줄을 떠올렸다.


*보고가 미뤄진 게 아니다.*

*대통령에게 던질 질문의 무게가, 이제 더 무거워졌다.*


그 질문을

올릴 자격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선지훈은 보전관(호태)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전화를 들었다


그 전화가 닿았을 때,

호태는 이미 설명을 멈춘 뒤였다.

작가의 이전글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4권 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