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날갯짓이 가져온 변화(4)
회의는 다시 열리지 않았다.
대신 ‘추가 검토’라는 이름으로작은 자리가 하나 더 생겼다.
정세린은 서류를 들고 들어오지 않았다.
칠판도 쓰지 않았다.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말했다.
“오늘은 토론 안 합니다.”
누군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정세린이 말을 끊었다.
“문장 하나만 고정합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정세린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다.
** “확인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계속 진행할 수 없다.” **
그녀는 더 말하지 않았다.
먼저 반응한 사람은 반대쪽이었다.
“너무 단순합니다.”
정세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기준입니다.”
“그 문장 하나로 모든 상황을 다…”
정세린은 짧게 자르고 말했다.
“판단하지 않습니다.”
“판단은 사람에게 남깁니다.
구조는 딱 하나만 봅니다.”
정세린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 한 번 쳤다.
“통과했는가, 못 했는가.”
잠시 정적.
정세린은 시선을 들어 회의실을 둘러봤다.
“이게 낯설게 느껴지면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그녀는 첫 번째 예로 가장 극단적인 공간을 꺼냈다.
“수술실.”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수술은 의사가 칼을 들면 시작하는 게 아닙니다.”
“시작은 ‘확인’입니다.”
환자가 수술 가능한 상태인지, 마취가 준비됐는지,
혈액과 장비가 갖춰졌는지, 팀이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이 통과하지 못하면 수술은 시작할 수 없습니다.”
정세린은 숨을 고르고 말했다.
“수술실에서 이걸 ‘과하다’고 부르지 않습니다.”
“멈춤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기본 절차이기 때문입니다.”
정세린은 두 번째 예를 꺼냈다.
“공항 관제탑도 똑같습니다.”
“비행기는 조종사 혼자 뜨지 않습니다.”
활주로 상태, 시야, 바람, 항공기 간 간격, 지상 이동 동선, 게이트 상황.
“확인이 통과되지 않으면 이륙은 보류됩니다.”
“착륙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세린은 덧붙였다.
“비행기가 멈추면 손해가 큽니다. 그래도 멈춥니다.”
“왜냐하면 사고가 나면 그 손해는 비용이 아니라 파국이 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반문했다.
“그건 전문 영역이니까 가능한 거 아닙니까?”
정세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래서 더 분명합니다.”
“거기는 ‘용기’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정세린은 한 박자 두고 말했다.
“절차가 사람을 대신해 멈추게 해줍니다.”
그녀는 말의 방향을 바꿨다.
“우리는 지금까지 현장에게 용기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니 멈춤은 벌칙이 됐고, 확인은 사라졌고,
책임은 아래로 흘렀습니다.”
정세린은 문장 하나로 결론을 끌어왔다.
“우리가 하려는 건 사회 전체를 수술실로 만들자는 게 아닙니다.”
“다만, 수술실과 관제탑이 이미 증명한 원리를
국가 운영의 기본값으로 넣자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같은 문장으로 돌아왔다.
** “확인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계속 진행할 수 없다.” **
의장이 물었다.
“그럼 책임은 어디로 갑니까?”
정세린은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같은 문장에 이미 들어 있습니다.”
** ‘계속 진행할 수 없다.’ **
“진행을 멈추게 한 구조가 책임을 집니다.”
“그래서 이 문장은 명령이 아니라 귀속 선언입니다.”
또 다른 반발.
“그렇게 하면 멈춤이 잦아집니다.”
정세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멈춤이 잦아지는 게 아니라 확인이 촘촘해집니다.”
“확인이 촘촘해지면 오히려 멈출 일은 줄어듭니다.”
정세린은 아주 짧게 덧붙였다.
“사고가 줄어드니까요.”
회의실은 완전히 설득된 얼굴도, 완전히 반대한 얼굴도 아니었다.
다만 모두가 ‘이건 취향 문제가 아니다’라는 걸 알아버린 표정이었다.
정세린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 문장이 과해 보인다면, 안전이 과한 게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진행이 너무 관대했던 겁니다.”
결론은 길지 않았다.
해당 문장
중단 기준 조항으로 삽입
모든 운영 지침 상단 고정
예외 조항 없음
회의는 끝났다.
정세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판을 뒤집지 않았다.”
“판의 바닥을 드러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