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브런치에 글을 올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 너무 무거운 얘기만 했구나.
세월호, 이태원, 코로나, 오송.
“안전하지 않다”는 말은 맞았지만, 읽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숨이 찼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결론은 늘 비슷했다.
“그러니 준비해야 한다.”
“그러니 함께 이바지해야 한다.”
틀린 말은 아닌데,
솔직히 말하면 그 말만으로는 사람이 오래 못 버틴다.
계속 이를 악물고 걷기만 하면
어느 순간 다들 제자리에서 멈춰 서니까.
그래서 용기를 내서, 조금 엉뚱한 걸 꺼내봤다.
말을 적어놓고 나도 웃음이 났다.
이 타이밍에 신난다고? 이 와중에 축제라고?
그래서 브런치 독자들에게 조금 미안했다.
내가 그렇게 무거운 얘기 해놓고 갑자기?
너무 태세 전환 아닌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2002년은 안전해서 신난 게 아니었다.
형편이 좋아서 웃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같이 있었고, 같이 움직였고,
그 잠깐의 상태가 세상을 덜 무섭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이제 좀 신나도 되지 않을까.
책임을 피하는 신남이 아니라,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숨을 고르는 신남.
그리고 그 유쾌한 상상을 하다 보니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서울의 정치도, 댓글 창도 아니라
김천과 광주였다.
올해 전국체전을 준비하는 김천은 아마 이렇게 말할 것 같다.
“그럼 우리가 먼저 해보면 되겠네.”
김천의 준비는 화려한 선언보다 체크리스트에 가깝다.
동선 한 번 더 보고
아이들 안전 확인하고
체육관 마이크 음량 맞추고
‘이거 진짜 따라 할 수 있나’ 직접 해보고
그러다 누군가 툭 던질지도 모른다.
“어… 생각보다 다들 잘 따라 하는데?”
그 말 한마디면 김천의 역할은 분명해진다.
김천은 올해, 징검다리가 된다.
우리가 먼저 넘어져보고, 먼저 맞춰보고, 먼저 웃어보는 도시.
그리고 마음 한편엔 이런 바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도 2002년 같은 장면… 한 번 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내년에 전국체전을 개최하는 광주는 처음부터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반대가 아니라 경계다.
“왜 또 광주냐.”
“이번엔 우리를 뭘로 쓰려는 거냐.”
그런데 공고문에서 이상하게 눈에 걸리는 문장이 하나 있다.
광주를 숨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길게 설명하지도 않는다.
“광주의 아픔은 광주에서 치유되어야 한다.”
그 문장을 보고 광주는 쉽게 박수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이렇게 말할 것 같다.
“그럼, 우리가 결정해야겠네.”
그리고 광주는 아마 먼저 김천에게 물어볼 것 같다.
“너희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냐”라고.
곧바로 광개토연구소에도 연락할 것이다.
“이건 행사냐, 검증이냐. 우리가 맡을 역할은 어디까지냐”고.
전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한체육회에도 묻고, 폐막식 동선과 안전, 무대 운영의 경계를 확인하고,
필요하면 광주 시민단체에도 손을 내밀 것 같다.
누가 대신 말해주길 기다리기보다,
이 일을 ‘우리 일’로 만들기 위해 먼저 확인하고 먼저 연결하는 방식으로.
광주는 내년에
현수막보다 회의를 먼저 하고,
축하보다 확인을 먼저 하고,
환호보다 각오를 먼저 준비할 것이다.
이번엔 누가 진심으로 아파했느냐를 묻지 않고,
이번엔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안아줄 거냐를 묻는 방식으로.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기대가 움틀지도 모른다.
“이게 진짜라면…
다시 못 올 치유의 기회일지도.”
나는 여기서부터가 가장 유쾌한 상상이라고 생각한다.
거창한 회의록이 아니라,
결의문도 아니고, 선언도 아닌 대화들.
김천과 광주가 서로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
“이건 이렇게 하면 되겠지?”
“그럼 우리는 여기까지 맡을게.”
“이건 넘어가도 될까?”
“그건 우리 쪽에서 정리해 볼게.”
이 문장들은 작아 보이지만,
나는 안다.
이게 바로 함께 이바지가 실제로 시작되는 방식이라는 걸.
누가 위에서 밀어붙여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부담을 가늠하고,
가능한 만큼 맡고,
필요한 만큼 조율하면서 일이 굴러가기 시작하는 순간.
이게 진짜 통합의 문법이다.
그래서 나는 브런치 독자들에게 조금 덜 미안해진다.
무거운 이야기 끝에 신나는 대한민국을 꺼낸 게
도망이 아니라
다음 걸음을 만들기 위한 숨 고르기라면, 이건 유쾌해도 된다.
아니, 어쩌면
이쯤에서는 유쾌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정말 같이 움직일 수 있으니까.
그리고 만약,
김천과 광주 사이에서
저 대화가 정말로 시작된다면,
그때는 나도
조용히 확신할 것 같다.
우리도… 2002년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다시 만들어볼 수는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