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자. 연출자 공모
회의는 길어질 생각이 없었지만,
분위기는 기획자들 마저 들뜨게 하고 있었다.
결론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 얼굴에 묘한 기대가 번지고 있었다.
선지훈이 먼저 웃으며 말을 꺼냈다.
“이쯤이면,
김천 폐막식 가수 선정은 오디션으로 갈 필요는 없겠죠?”
말투는 가벼웠지만, 이미 답을 알고 묻는 질문이었다.
정세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이유가 전혀 없어요.
이 무대는 누가 더 잘하느냐를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라,
누가 함께 어울리느냐를 확인하는 자리니까요.”
호태가 그 말을 받으며 한 박자 쉬었다.
“차라리 국민이 먼저 떠올리게 하면 좋겠습니다.
‘이 무대에 어울린다’고 생각나는 사람을요.”
강한국이 동의했다.
“아, 그럼 심사위원도 필요 없겠네요.
국민 머릿속이 이미 심사위원인 셈이고.”
“맞아요.”
정세린이 말을 받았다.
“그래서 참여자 한 사람당 가수 세 명까지 추천하는 걸로요.”
“한 명만 고르게 하면, 그 순간 이건 싸움이 돼요.”
선지훈이 펜을 돌리며 말했다.
“세 명이면…
사람들이 생각을 한 번 더 하겠네요.”
“최애 말고, 진짜 이번 행사에 어울리는 가수를.”
회의실에 짧은 공감의 웃음이 돌았다.
웃음을 머금으며 강한국이 말했다.
“실시간 집계는 하되,
결과는 1위부터 10위까지만 공개하죠.”
“이건 순위표가 아니라, 국민들 바램의 결과니까.”
호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수 입장에선 선정되는 것 자체가 상일 겁니다.”
“출연료보다 더.”
정세린이 덧붙였다.
“국민이 직접 ‘이 무대에 당신이 어울린다’고 불러준 건데요.”
“그걸 마다하기는 쉽지 않죠.”
선지훈이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말했다.
“불참하면…
설명은 좀 해야겠네요.”
호태가 어깨를 으쓱했다.
“안 나올 자유는 있죠.”
“다만 그 선택이 어떻게 읽힐지는 본인도, 기획사도 다 알 겁니다.”
강한국이 덧붙였다.
“‘국민이 원하는 행사에 왜 안 나왔지?’
이 질문은 꽤 오래갑니다.”
정세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기획사들도 일정 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설 겁니다.”
“이건 출연 계약 문제가 아니라 이미지 관리 문제니 까요.”
선지훈이 페이지를 넘겼다.
“그럼 가수 선정 이후는 어떻게 연결합니까.”
정세린이 답했다.
“선정된 가수의 이름으로 기부가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모였다.
“김천 전국체전 자원봉사자와 폐막식 관중용 공식 티셔츠 제작비를
해당 가수 이름으로 기부하는 겁니다.”
강한국이 말했다.
“가수는 무대에 서고, 이름은 현장에 남고.”
“팬들은?”
윤필순이 물었다.
“‘우리가 불러낸 이름으로 이 일이 이루어졌다’고 느끼겠죠.”
정세린이 답했다.
“이게 함께 이바지의 가장 직관적인 장면입니다.
선지훈이 말했다.
“출연료 이야기는 굳이 꺼낼 필요 없겠군요.”
“네.”
정세린이 단호하게 답했다.
“기부 구조만 남기면 충분합니다.”
분위기가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강한국이 자연스럽게 화제를 넘겼다.
“주관 방송사는요.”
“중계권 말고, 기록 파트너로 가는 게 맞겠죠?”
“국민 공모.”
선지훈이 말했다.
“어디가 잘 찍느냐가 아니라, 어디가 이 과정을 잘 남길 수 있느냐로.”
정세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위 만들고, 자극적인 편집하는 곳은 처음부터 제외합니다.”
선지훈이 정리했다.
“김천에서 광주까지 과정을 어떻게 기록할지.”
“학교, 군부대, 마을, 해외 팀까지.”
“국민 의견 반영 후 선정.”
강한국이 말했다.
“이건 국민 참여 프로젝트니까요.”
선지훈이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총연출자는요.”
이번엔 호태가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공모죠.”
“국민이 주인공인 무대를 국민과 함께 설계할 사람.”
윤필순이 단호하게 보탰다.
“엔딩은 고정합시다.”
“손에 손잡고 와 홀로 아리랑 두 곡으로요.”
선지훈이 물었다.
“연출자들이 답답해하지 않을까요.”
호태가 웃었다.
“아니요.” “오히려 편해질 겁니다.”
그는 천천히 말했다.
“무엇을 말할지는 우리가 정하고,
어떻게 보여줄지는 전부 맡기는 거죠.”
정세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메라도, 동선도, 조명도.”
“연출자는 거기에 마음껏 상상력을 쓰면 됩니다.”
선지훈이 자리에서 몸을 조금 뒤로 기대며 말했다.
“그럼 올해 김천은 리허설이 아니라…”
“체험이죠.”
호태가 말을 이었다.
“2002년을 한 번 더 느끼는 자리.”
강한국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감각을 내년에 광주로 넘기는 거고요.”
회의실에 말없이 흐르는 공감이 있었다.
누군가 굳이 “결론”을 선언하지 않았다.
이미 다들 같은 장면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지훈이 말했다.
“이거…
생각보다 꽤 좋은 그림인데요.”
정세린이 웃었다.
“네.
국민들 모두, 좋아할 겁니다.”
멋진 행사에 어울리는 멋진 기획
이날 회의는 그런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