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자와 남은 자

후계의 공백_권력투쟁의 서막

by 또 래 호태

저 세상에서의 해후


사공의 배가 강을 건넜다. 물은 잔잔했고, 소리는 낮았다.


공작왕은 배 끝에 서 있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볼 곳이 이미 사라졌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강 건너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부엉이 바위 사자였다.

가까워질수록 얼굴이 선명해졌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공작왕의 숨이 갑자기 막혔다.

반가움이 먼저 올라왔다. 그다음에야 울컥이 따라왔다.


부엉이 바위에서의 그 장면이 스쳤다. 홀로 등을 돌렸던 그날의 등.
그날 미처 건네지 못한 말들이 목에 걸렸다.


배가 닿자 사자가 먼저 다가왔다.


“왔구나.”


그 한마디에, 공작왕은 고개를 숙였다.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사자는 말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단단했지만 따뜻했다. 그리고 조용히 어깨를 감쌌다.

그 순간, 둘 사이의 시간들이 한꺼번에 돌아왔다. 젊은 날의 토론. 밤을 새워가며 짜던 판.

같은 적을 향해 섰던 순간들. 같은 오해를 함께 견뎌야 했던 시간들.


사자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말했다.


“고생했다.”


그 말은 평가가 아니었다. 함께 걸어온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인정이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다. 강가의 바람은 차지 않았다. 오히려 묘하게 따뜻했다.


저편에서 두루마기를 입은 선생님이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보이자, 공작왕의 걸음이 잠시 느려졌다.

그는 처음 정치를 배울 때를 떠올렸다. 말보다 눈빛이 먼저였던 시간.

권력이 아니라 책임을 먼저 말하던 스승의 모습.


선생님이 미소 지었다.


“왔나.”


그 한마디에, 공작왕의 눈이 젖었다.

큰 짐을 홀로 감당하고 온 동지에 대한 애틋함과
먼저 떠난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이 말없이 오갔다.


선생님이 그의 손을 잡았다.


“사람은 많이 남겼겠지.”


그 말에는 믿음이 섞여 있었다. 공작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많은 사람을 세웠다고 믿었다. 앞에 세웠고, 보호했고, 때로는 밀어 올렸다.


선생님이 조용히 덧붙였다.


“그 사람들… 네가 없어도 설 수 있겠나.”


그 질문이 가슴을 쳤다.

공작왕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정치인이 아니었다.

홀로 남겨진 부인이었다.


언제나 마지막에는 그녀의 뜻을 물었다.
공식 일정이든, 비공식 판단이든, 끝에는 그녀의 눈을 확인했다.

그는 그걸 존중이라 믿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내가 없으면, 누가 그녀를 존중할까. 그 질문은 정치보다 먼저 사람을 향했다.


그리고 그다음이 정치였다.


임시로 세운 카드가 있었다.
위기를 넘기기 위해, 시간을 벌기 위해 썼던 얼굴.

친노와 친문이 사라진 판 위에 던져 놓은 이름


그는 그 카드를 오래 둘 생각이 아니었다.

자신은 조율자였고, 진짜 후계는 따로 준비하고 있었다.


명과 청을 다시 묶어낼 얼굴

민주연대의 정통을 복원할 인물

그는 천천히 판을 정리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끝을 닫지 못했다.


선생님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여기 와 보면 다 허망하다.”

잠시 후, “평생 허망함을 설계하느라… 고생 많았다.”


그 말이 끝나자, 공작왕의 속에서 무언가가 늦게 도착했다.
비난이 아니라 위로인데도, 이상하게 가슴이 찔렸다.
그는 순간적으로, 자기가 늘 ‘설계자’라고 믿었던 시간을 떠올렸다.


그런데 그 시간들 사이로 자꾸만 같은 장면이 끼어들었다.

회의실 구석에서 말없이 기록하던 그녀.
부드럽게 웃으며, 그러나 거절할 틈을 주지 않던 목소리.


“이건 명예직입니다.”


그는 그때 ‘선택’했다고 믿었다. 자기가 유리한 수를 골랐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보였다.

명예라는 말이 한 사람을 옮기는 가장 안전한 손잡이였다는 것.
거절할 수 없게 만든 ‘예의’가 사실은 퇴로를 닫는 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자기가 공작한 줄만 알았지, 자기가 공작의 대상이었던 건 아닐까.

그 깨달음은 분노가 아니었다. 허탈함이었다.

그리고 묘하게도, 안도였다.
그래서 선생님의 위로가 ‘허망함’이라는 단어로 들렸던 것이다.


공작왕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평생 판을 움직였다고 믿었던 사람이,

사실은 판 위에서 움직여진 적도 있었을지 모른다는 걸 이제야 받아들이는 얼굴이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또 하나의 장면이 겹쳤다.

취소될 수 없다는 일정. 비워질 수 없다는 자리.
몸이 먼저 무너지고 있는데도 “이번만”이라는 말로 밀어붙이던 시간.

그가 설계해 온 구조가 마지막에는 그를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이 낮게 말했다.


“끝을 닫는 것도 설계다.”


공작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사람을 남겼지만, 사람을 넘어서는 틀을 남기지 못했다.

카드를 썼다고 믿었지만, 자신이 카드였을지도 모른다.


강물은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천국에는 당권이 없었다.
공천도 없었다.
명도 청도 없었다.


그저 허망함을 느낀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지상에는,
중심이 비어 있는 판이 남아 있었다.



지상_비워있는 판


공작왕의 장례식은 생각보다 요란하지 않았다.

검은 양복들이 질서 있게 줄을 섰고, 조문은 절제되어 있었다.


그러나 언론은 떠들썩했다.

조문객 명단이 분석되었고, 상주의 동선이 해석되었으며, 누가 더 오래 머물렀는지가 기사로 만들어졌다.


애도는 짧았고, 계산은 길었다.


장례가 끝난 지 이틀째 되던 날, 당 안팎에서 만남이 잦아졌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웠다. “지금은 추모할 때다.” 그 말이 돌았다.

그러나 같은 날 저녁, 다른 말이 더 빠르게 돌았다. “이제 정리해야 한다.”


정리.

누가 중심을 잡을 것인가. 누가 그의 언어를 계승한다고 선언할 것인가.

판 위에서 한 축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곧 빈자리의 크기를 가늠하게 만든다.


명과 청.

이름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이제는 그 간격이 분명해졌다.

은 정통성을 말했다. 명은 국가의 속도를 말했다.

한쪽은 “뿌리”를 말했고, 다른 쪽은 “현실”을 말했다.

그러나 둘 다 설계권을 노리고 있었다.


임시 카드로 세워진 얼굴은 아직 제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위기 속에서 불려 나온 사람이었고, 그 불림은 우연이 아니었다.


청은 이미 당권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당권만으로는 부족했다. 당권 위에 설계권이 있어야 했다.


외곽에서는 연대의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과거의 상징을 복원하려는 시도. 잃어버린 중심을 되찾겠다는 말.


보고서에는 단어가 적혔다.

“주류 재편 가능성.”


권좌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이 영구적인 중심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은 민주연대의 주류는 아니었다. 위기 속에서 호출된 카드에 가까웠다. 설계자는 카드를 오래 두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계산했다.

완충은 쉽지 않다. 청을 적으로 돌리는 순간, 싸움은 당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청의 속도에 휩쓸리는 순간, 설계는 그의 손을 떠난다.

시간은 네 달. 지자체 선거는 판정이다. 공천은 생존이다.


구중궁궐 안은 조용했지만, 조용할수록 고립은 선명해졌다.

그는 생존왕이었다. 그 말이 칭찬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자신이 알고 있었다.


최근 그는 당을 통하지 않는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회의 대신 생중계. 결재 대신 설명. 아직 선언은 없다.

그러나 방향은 바뀌고 있었다.


줄은 이미 갈라졌다.

그리고 그는,
처음으로 판을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보고서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일정 조율 라인 영향력 확대.”


그 문장이 눈에 걸렸다. 일정은 겉으로는 행정이다.

그러나 일정은 사람을 움직인다. 자리를 만들고, 자리를 비운다.


공작왕의 마지막 일정이 떠올랐다.

취소되지 못한 순방. 비워지지 못한 자리.


그는 천천히 생각했다. 당권은 눈에 보인다. 조직도 눈에 보인다.

그러나 시간을 쥔 손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는 비서에게 물었다.


“일정기획관, 지금 어디에 있지.”


그는 개인의 대화를 떠올리지 않았다.
다만 구조를 읽고 있었다.


판은 사람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판은 시간으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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