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이틀째 맞이한 희망 셋

그래서 오래 근무할 결심

by 또 래 호태

출근 이틀째(7월 20일)


희망의 조짐 셋.


1. 일출


아침 식사를 마치고 팀장님 차를 타려는데 배가 아팠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걸어가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화장실에 비데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게 웬 떡!'. 횡재한 기분이었다.


항문 건강을 위해

집이든 직장이든 비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월세방에 따로 설치하지 않아도 되었다.

채석장이 내게 준 선물 열 가지를 꼽을 때, 반드시 ‘비데’를 포함시킬 작정이다.


용변을 마치고

한결 좋아진 기분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내려가다가, 순간 숨이 멎었다.


일출.


콘(Cone) 동(棟) 지붕 위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희망의 조짐 셋(일출).png 콘(cone) 동(棟) 지붕 위로 떠오른 태양


평생 빛을 좇아 살았으나 오랜 기간 어둠에 갇혀 신음하던 내 눈앞에,

강렬한 태양빛이 정면으로 비친 탓이었다.


일출이든 석양이든 해를 보면 가슴이 뛰는 나다.

그런데 출근길에 마주 보는 저 태양은

'채석장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내게' 틀림없는 서광처럼 느껴졌다.


일터로 내려가는 길에 매일 일출을 볼 수 있다면, 날마다 희망이 아니고 무엇이랴.


브런치_가로3장_붙임.jpg 채석장 일출(3)



2. 굉음


희망의 조짐은 아침 해뿐이 아니었다.

내일도 또다시 떠오르는 해를 보게 되리라는 기대를 품고 걷는 중,

엄청난 굉음이 귀에 걸렸다.


쿵쾅, 쿵쾅!

콘 동(棟)에서는 그저 ‘소음’으로만 들리던 충돌음이었다.

거대한 이빨 달린 아가리를 벌린 기계, 조(Jaw) 크러셔에서 원석이 떨어져 부서지는 소리였다.


가슴이 뛰었다.

위축된 삶 속에서 쪼그라들어 있던 심장이,

그 굉음의 파동에 공명하듯 박동한 것이다.


심장이 뛴다는 건—생물학적으로—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비록 꿀잠은 잤지만, 어제의 호된 신고식으로 녹초가 된 몸이었다.

그런데 심장에서 뿜어내는 혈액이 전신을 돌며 새로운 기운을 불러일으켰다.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채석장이다.

하지만 날마다 쿵쾅거리는 저 굉음을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가슴을 뛰게 하고 피를 솟구치게 하는 진군의 북소리로 들을 수만 있다면

나는 이곳에서 시무룩할 이유도, 의기소침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저 가슴이 뛰는 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아모르파티!



3. 터널 너머의 빛


사전 점검 시간이 끝나고(오전 8시경) 터널 동(棟)에 올라갔다.


터널은 조(Jaw) 크러셔와 콘(Cone) 크러셔 사이에 진동 피더가 설치된 곳이다.

조 크러셔에서 파쇄된 원석이 진동 피더를 거쳐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분쇄기(콘 크러셔)로 이송되는 공간이 바로 터널이다.


터널 동(棟)은 콘 동(棟)과 마주한 벽면만 터져 있고,

나머지 세 벽면은 막힌 구조다.

그래서 안쪽은 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늘 어둡다.


건물 안쪽 군데군데 쌓인 석분 청소를 마치고 출입구 쪽으로 나오던 길이었다.


어두운 터널 너머, 출입구 쪽에서 찬연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마치 “어둠의 끝에는 반드시 빛이 있다”고, 내게 직접 보여주는 장면 같았다.

어두운 터널에 갇혀 허우적대던 내 삶에도 이제 드디어 서광이 비치는 것이 아닐까~~~

그런 기대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출근 이틀째인 오늘은,

호된 신고식으로 기진맥진했던 어제와는 사뭇 달랐다.

출근길의 아침 해,

심장을 격동시키는 굉음,

그리고 터널 너머의 눈부신 빛.


이 세 가지는 분명 희망의 조짐이었고, 내 안의 용기를 북돋우는 신호였다.


어쩌면 채석장은

병약해진 몸으로 호구지책을 찾던 내게,

심신 재건(再建)의 기회

그 이상을 제공해 줄지도 모르겠다.


아마 나는

채석장에서 오래 근무하게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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