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별-2
「장례식장」
갓난아이를 신생아실에 맡긴 채, 동이는 빈소를 지켜야 했다.
미역국 한 그릇도 챙겨 먹지 못한 몸이었다.
그녀는 영정 앞 구석에 축 늘어져 앉아 있었다.
조문객이 들어올 때마다 그저 고개를 까딱이는 것으로
미망인의 예를 대신했다.
눈은 퉁퉁 부었고, 손끝은 파르르 떨렸다.
모유가 차오르는 가슴은 뜨겁게 아팠고,
눈물은 말라 더는 나오지 않았다.
사연을 아는 문상객들은
그저 안타까운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어찌 저 어린것이… 저 어린 산모가…”
그리고는, 잘못한 것도 없는 이가 미안한 사람처럼
서둘러 조문을 마치고 자리를 떴다.
「서방 잡아먹은 년」
변기 물을 내리고 나오려던 동이가 멈칫했다.
화장실 안쪽 칸에서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서방 잡아먹은 년이라잖아.”
“왜, 내가 틀린 말 했어?”
그 목소리는 너무 또렷했다.
누군가의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내뱉어진 말.
그건 말이 아니라, 사람의 심장을 찢는 칼날이었다.
동이는 방금 들은 단어를 천천히 되뇌었다.
‘서방 잡아먹은 년.’
손끝이 저릿했고, 귀가 화끈 달아올랐다.
그녀는 그대로 변기에 주저앉았다.
울음이 치밀었지만 목구멍이 막혀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숨죽여 울었다.
얼마나 그랬을까.
그때 동이는 깨달았다.
자신이 마주한 현실을, 냉정하게.
“그래. 살아내야 한다.”
“저 어린것 둘을 업고라도, 나는 살아내야 한다.”
화장실 안의 수군거림 따위,
이제는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그날 이후,
동이는 누구의 말에도 무너지지 않는 여자가 되기로 했다.
「태양. 그 어이없음의 기억」
남편의 발인 예배가 끝난 뒤,
병원 정원 한편에 서서
동이는 남편의 관이 운구차에 실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운구차 바로 위로 태양이 떠올랐다.
눈부시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순간, 동이는 눈을 의심했다.
세상이 이상했다.
“나는 절망인데… 태양은 왜 저렇게 찬란한 거야?”
그 말이 새어 나오자,
다리가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눈앞이 하얗게 번졌다.
폭염 속에서도 새들은 노래하고, 수목은 여전히 푸르렀다.
그 모든 게 잔인했다.
세상이 아무렇지 않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 깊은 어둠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한 줄기 햇살이 그녀의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그 빛은 위로 같기도, 모욕 같기도 했다.
동이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하늘을 향해 푸념을 쏟아냈다.
“하나님… 왜 그 사람 이렇게 일찍 데려가셨어요?
새벽마다 간절히 기도했잖아요.
그 사람이 다치지 않게 지켜달라고…
그런데 왜, 제 기도 들어주지 않으셨어요.”
그날, 그녀는 아직 몰랐다.
그 찬란한 태양이
언젠가 또 한 사람의 이름으로 자신에게 다가올 줄은—
「외면의 시간」
남편을 허망하게 보내고 난 뒤,
동이는 세상에서 홀로 남겨진 외톨이가 되었다.
언니들 사이에서는 늘 미운 오리 새끼였고,
왕따와 구박의 대상이자 누구에게나 짐처럼 여겨지는 존재였다.
친정 식구들 앞에서는 늘 면목이 없었다.
자존감은 바닥까지 떨어졌고,
눈치 보는 건 이미 일상이 되어 있었다.
형제들이 모이는 자리에 나서기도 망설여졌다.
그 앞에 서면 언제나 마음이 무거웠다.
함께 의논할 남편도 없었다.
사랑받지 못한 마음은 결국 사랑을 줄 힘조차 앗아가 버렸다.
의지할 곳 없는 현실 속에서 결국 혼자 살아내야 했다.
하나는 둘러업고, 하나는 손을 꼭 쥔 채
좁은 집을 나서던 나날들.
가끔 시어머니가 들러
하루 이틀 아이 둘을 돌봐주곤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때 누군가 나를 감싸주고,
따뜻하게 위로해 주고, 다독여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그 모든 시간은
결국 내가 홀로 감내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영혼결혼식. 」
남편의 1주기 날.
추도예배가 끝난 뒤,
동이는 시어머니와 마주 앉았다.
어머니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철이 아빠랑… 영혼결혼식을 하면 어떻겠니?”
동이는 순간 말을 잃었다.
눈앞의 어머니는 평소처럼 다정했고,
목소리에는 애처로움이 묻어 있었다.
“너도 알잖니. 그 어린 나이에 세상 떠난 애비 생각하면…
걔 불쌍해서 나는 아직도 숨이 막힌다.”
동이는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의 무게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동안 자신도 고분고분한 며느리로 살아왔다.
시어머니의 눈물 앞에서는 늘 아무런 말도 못 했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달랐다.
잠시 침묵 끝에,
동이는 단호히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 저… 싫어요.”
“뭐?”
“애들은 제가 잘 키우겠습니다.”
그 한마디에 시어머니의 눈빛이 흔들렸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찻잔의 김이 사라지고, 방 안에는 묘한 냉기가 감돌았다.
그날 이후,
동이는 이제까지의 ‘고분고분한 며느리’가 아니라
‘혼자 살아내는 여자’가 되었다.
두 아들의 존재.
「혼자 살아내는 시간」
동이는 울지 않았다.
이제 울어도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두 아들은 아빠 없는 아이들이었다.
스물셋, 청상도 서러운데
‘아비 없는 애들’이라는 말은 정말 죽기보다 듣기 싫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살았다.
배운 기술도 없었고, 돈을 벌어본 경험도 없었다.
세상은 냉정했고, 하루 벌어 하루를 버티는 게 전부였다.
그 시절, 생계의 무게는 몸으로 내려앉았다.
겨울이면 손끝이 갈라지고,
여름이면 땀에 젖은 옷을 그대로 말려 입었다.
그래도 감사했다.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자라준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세상에 버틸 이유가 있었다.
동이는 두 손을 모으며 속삭였다.
“그래… 이게 하나님의 은혜일지도 몰라.”
「두 번째 운명의 시작」
'억척이'
동이를 두고 이웃들이 붙여준 이름이었다.
축복받지 못하고 태어난 첫째,
그리고 유복자로 태어난 둘째 아들.
궁핍한 처지에 삶은 막막했지만,
동이는 스스로 마음을 다잡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녀는 남편이 세상을 떠났어도
한 번 맺은 인연은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옛 생각을 품고 사는 여자였다.
재혼 같은 건 아예 마음에 두지 않았다.
오직 두 아이를 키워내는 일,
그 하나에만 모든 힘을 쏟았다.
닥치는 대로 일했다.
거칠어진 손엔 굳은살이 박였고,
햇볕에 그을린 피부는 더 이상 햇살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최저생계비만 남겨두고 적금을 부었다.
조금씩 돈이 모였다.
거기에 남편의 사고 보상금을 보태
마침내 방 세 칸짜리 작은 집을 마련했다.
큰아이는 곧 초등학생이 되었고,
둘째는 유치원에 보낼 때가 다가왔다.
생활은 여전히 빠듯한데 아이들 교육비까지 더해졌다.
결국 방 한 칸을 세를 놓기로 했다.
다행히 그 방은 출입문이 따로 있었다.
교차로 신문에 작은 광고를 실었다.
광고를 내자마자 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
중저음의 남자 목소리였다.
약속 시간에 맞춰 그가 집을 찾아왔다.
동이는 아이를 둘러업은 채 대문을 열었다.
마침 그녀는 석양을 등지고 서 있었고,
남자는 그 석양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순간,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눈부신 빛이 번졌다.
남자의 시야에는 그녀의 등에 업힌 아이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석양빛에 물든 한 여인이
찬란하게 서 있는 모습만이 남았다.
석양 탓일까.
동이의 눈에 남자는 왠지 모르게 따뜻해 보였고,
세상의 그늘과는 한참 멀리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방을 둘러본 남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계약서에 서명했다.
한준수.
두 번째 운명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