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아무래도 이혼해야 될 것 같아.
문득 새벽에 눈이 떠지던 날이었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내 기억은 당시 그 톡을 받았던 그 시간에 머물러 새벽이라 기억하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나는 연말을 맞아 부산 엄마네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 있었다. 사실 아직 어린 두 딸들을 데리고 혼자 부산까지 엄마를 보러 내려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 전부터 부부사이가 좋지 않았었고 마음도 안 좋은데 일년에 두 번인 명절 중 한 번을 볼까 말까한 엄마를 한 해가 지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 그렇게 힘들지만 혼자 부산행을 강행했던 날이었다.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한방에 아이들과 엄마, 우리 넷 졸졸이 누워 자던 밤. 그 새벽 문득 눈이 떠져 무의식적으로 폰을 확인했다. 남편에게서 온 카톡이 무려 36개 . 평소에 이렇게 톡을 많이 보내거나 새벽에 연락을 할 만큼 다정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살짝 다투고 내려와서 마음이 불편했을까? 혼자 있으니 나와 아이들이 많이 보고 싶어서? 다툰게 미안해서 이 새벽에 이렇게 긴 사과글을 보냈으려나? 조금은 의아한 마음으로 대화창을 열었다.
분명히 발신자는 남편이었으나, 나에게 메세지를 보낸 사람은 그가 아니었다. 상대방은 정확히 나를 겨낭하고 있었고, ’그쪽‘이라는 말로 나를 가리키며 18년 4월부터 매일매일 만나면서 해외여행과 전국 방방곳곳 , 회사에서부터 퇴근하고 나서도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둘이 함께 여행갔던 사진들, 사랑을 속삭이던 대화들, 나를 지칭하던 언어들, 그 모든것들이 그 카톡 메세지 창에 다 있었다.
분명히 내 남편이었는데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내가 모르는 행복한 표정으로 이벤트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내가 언제 여기를 간 적이 있었던가?‘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어쩜 이렇게도 까맣게 몰랐을까 나는. 어쩜 이렇게도 믿었던 걸까 사랑을, 그 사람을.
이런 생각도 잠시. 옆에서 주무시던 엄마가 깨서 손녀들 굶길 새라 국 끓일 준비를 하러 일어나셨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아이들도 일어나 꼬물락거리고 있었다. 폰을 닫고 엄마를 바라보고 덤덤히 내뱉었다.
“엄마, 나 아무래도 이혼해야 될거 같아.”
평소 지독하게도 속 이야기를 안 하던 딸래미가 갑자기 꺼낸 그 말에 엄마는 나를 바라보고는 놀란 눈빛보다는 강인한 눈빛으로 내 잘못이 아니라는 듯 “그래,네가 못살겠다면 그렇게 하자.”라고 딱 한마디 하셨다.
덤덤히 엄마를 도와 밥을 차리고 아이들 밥을 먹이며 새벽에 상간녀에게 문자가 왔었고, 다른 건 모르겠지만 이거 만큼은 난 참을 수가 없노라며 엄마가 속상하실까봐 일부러 더 단단하게 이야기했다. 엄마 앞이라 눈물이 나와도 있는 힘껏 참았겠지만 그땐 너무 당황스러워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진실과 마주한 그 순간 만큼은 사고가 멈추고 시간이 멈춘 듯 했다. 뒤늦게 남편이 부산으로 부랴부랴 내려와 대문 앞에서 나를 찾았다. '이렇게 내려올 수도 있는 거리를 그 간 친정이 멀다며 그렇게 생색내었구나 . 고작 1년에 한 번 이었을 거리를.' '할 이야기 없으니 돌아가' 라는 원망과 함께 대전 남편의 본가로 돌려 보냈다.
그렇게 나는 그 한 해의 마지막 날 이혼소송을 준비하기 위해 아이둘을 데리고 그가 없는 대전집으로 돌아왔다. 진실을 마주하고 찰나를 지나니 그 사람의 지나온 행동과 말들의 어긋났던 파편들이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차에서 잠들고 온전히 혼자가 된 시간. 부산에서 대전으로 올라오는 세시간 남짓하는 그 시간 내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이 흘러 휴게소 곳곳을 쉬면서 가야했다.
분명히 내 잘못이 아닌데도 모든 것이 내 잘못처럼 느껴지는 순간. 의미없는 원망과 자책이 몰아쳤다.
그렇게 그 날 밤 불현듯 이혼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