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길, 초록 사과

by leolee

수업이 끝난 교실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아이들이 모두 나간 뒤, 나는 칠판에 남겨진 ‘5W1H’라는 글자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엄마와의 마트’, 또 다른 누군가는 ‘친구와의 다툼’을 써냈고, 나는 그 짧은 문장 속에 담긴 감정의 결들을 읽을 수 있었다.


고요한 복도를 지나 교문 밖으로 나서자,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다.

도시의 소음도 오늘따라 한 박자 느리게 들리는 듯했고, 내 발걸음도 그 리듬에 맞춰 천천히 느려졌다.


이어폰을 귀에 꽂았지만 음악은 재생되지 않았다.

대신 마음속에 하나씩 문장이 떠올랐다.


“마트에 다녀온 건 그냥 일상이지만, 오늘은 엄마랑 마음이 조금 더 가까워진 날이었다.”

“친구는 가까운 사람이지만, 그래서 더 말에 상처받을 수 있다는 걸 배운 하루였다.”


아이들의 문장은 간단했지만, 묘하게 울림이 있었다.

그건 아마, 나도 누군가와의 거리에서 그렇게 마음을 다잡아 본 적이 있어서일까.


걷다 보니 어느새 익숙한 편의점 앞에 다다랐다.

나는 무심코 안쪽 쇼케이스를 들여다보다가, 초록 사과 주스를 발견했다.


그 순간, 메이린이 쓴 일기의 문장이 떠올랐다.

“엄마는 빨간 사과보다 초록 사과가 더 아삭하고 달다고 했다.”


나는 웃으며 주스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냥 그 문장이 좋았다. 그 단순하고 따뜻한 마음이.


계산을 마치고 편의점을 나서자, 빗방울이 하나 둘 이마를 스쳤다.

나는 우산을 쓰지 않고 가방 속에 넣은 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은 누나 주려고 초록 사과 주스 샀어. 애들 일기, 꽤 재밌더라.”


잠시 후, 그녀에게서 답장이 왔다.


“초록 사과? 잘 골랐네. 집 오면 얘기해 줘. 커피 끓여놓을게 :)”


그 말에, 오늘 하루가 단단히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우산을 접고, 비 맞은 어깨를 살짝 털었다.


“이런 하루도… 문장으로 남기면 꽤 괜찮겠지.”


비는 조용히, 그리고 부드럽게 나의 어깨와 마음을 적셔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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