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의 바람은 유난히 얇고 날카로웠다.
칭다오의 겨울은 눈보다 바람이 먼저 찾아왔고,
학교 정문 앞 은행나무들은 잎을 다 털어낸 채 앙상했다.
중앙 난방이 틀어진 교실 안은 그나마 따뜻했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외투를 벗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몇몇은 에어컨 송풍구 바로 아래로 모여
손을 호호 불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선생님, 저기서 따뜻한 바람 나와요.
여기 앉으면 너무 좋아요.”
“너무 가까이 있으면 졸려요, 조심하세요.”
아이들은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 너머엔 어딘가 이상한 기류가 있었다.
중간 쉬는 시간.
내가 칠판을 닦고 있는데, 뒷자리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 너 뉴스 봤어?”
“어제 그거? 우한에서 뭔 이상한 폐렴 퍼졌다는 거?”
“근데… 우리랑은 멀잖아.”
나는 잠시 손을 멈췄다.
아이들의 대화를 엿들으려는 건 아니었지만,
그 단어들 ‘폐렴’, ‘우한’,
묘하게 교실 공기를 달궈 놓았다.
“선생님, 중국 뉴스 안 보세요?”
앞줄의 리나가 물었다.
“가끔은 보지. 왜?”
“요즘 감기가 빨리 퍼진대요. 한국에서도 기사 떴어요.”
한국 뉴스를 자주보는 소왕이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기사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중국 후베이성, 원인 불명 폐렴 확산…감염자 수 증가”
나는 짧게 읽고,
“지나가는 감기일 수도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눈빛은 여전히 찜찜한 듯했다.
수업 중.
문득 교실을 둘러보니
마스크를 쓴 학생이 두세 명 있었다.
물론 그동안도 감기 기운이 있으면 쓰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그건 예의나 습관이 아닌,
불안을 대처하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교무실에 들렀을 땐
중국인 동료 교사 둘이 웅성이고 있었다.
“후베이 갔다 온 애들 리스트 정리했어?”
“응, 명단 올라왔더라.
혹시 모르니까 이번 달은 체온 체크도 한다더라.”
그 대화를 들으며
나는 조용히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달지도, 쓰지도 않은 맛이 입 안에 남았다.
12월이 깊어질수록
하늘은 탁해졌고,
학생들의 농담은 줄어들었다.
“선생님, 설에 고향 안 내려갈 수도 있대요.”
“저 엄마가 마스크 한 박스 사놨어요.”
“근데 진짜 이거 무서운 거예요?”
나는 어떤 질문에도
확신 있는 답을 하지 못했다.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아이들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게
과연 책임 있는 태도일까
그런 고민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으로 다시 한국의 뉴스를 검색했다.
그냥 심각한 감기 수준이라는 가벼운
중국 뉴스블로그를 보다가 오랜만에 보게 된 한국의 뉴스에는
심각한 수준의 내용의 헤드라인이 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람 간 감염 가능성’,
‘사망자 증가’
이제는 기사 제목이 바뀌어 있었다.
나는 조용히 수첩을 꺼내,
오늘 수업 일지 아래 작은 글씨로 적었다.
“이건 그냥 유행성 감기겠지. 그래야 할 텐데.”
밖엔 겨울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습한 공기 속에서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지금까지 '잔교의 파도'를 구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시리즈 '칭다오, 그리고 우리'도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