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봄, 아이들의 웃음

by leolee

문을 열자, 창문 사이로 봄볕이 밀려들었다.

햇살은 아직 차가운 공기 위에 살며시 올라앉았고,

교실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소란한 목소리들이 가득했다.

책상 위에 얼굴을 묻고 졸고 있는 아이,

몰래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보는 아이,

친구 책상에 끄적이는 장난스런 낙서.


나는 가방을 교탁 위에 올려두고, 가볍게 손뼉을 쳤다.


“자, 수업 시작할게요.”

“선생님~ 5분만요!”

“누구는 아직 꿈나라예요!”

“아까 밥먹고 자버렸어요!”


한숨이 나올 법도 했지만, 나는 웃으며 말했다.


“꿈속에서 단어라도 외우고 있었으면 인정.”

“그건 무리~”

아이들이 일제히 웃었다.


돌아온 한국어 회화 수업.

오늘의 주제는 “봄에 하고 싶은 일 말하기”.

나는 칠판에 큰 글씨로 썼다.


“봄이 되면 ______ 하고 싶어요.”


“자, 문장 만들어 볼 사람?”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맨 앞줄의 리나가 손을 들었다.


“봄이 되면… 짝사랑하고 싶어요.”

“오—!”

교실 안이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짝사랑 아니고 한국어 공부하세요~!”

“선생님! 선생님은 봄에 뭐 하고 싶어요?”

나는 웃으며 칠판 옆에 작게 썼다.


“봄이 되면, 조용히 걷고 싶어요.”


학생들은 잠시 조용해졌고,

리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조용히 걸어요?”

나는 대답 대신 창밖을 가리켰다.

교실 너머, 벚꽃 비슷한 꽃이 피어 있었다.

풍경을 바라보던 아이들이 중얼거렸다.


“조용히 걸어도… 소리는 들릴 것 같아요.”

“맞아, 하지만 봄은 소리도 예뻐.”


점심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하나둘 다가와 말을 걸었다.


“선생님, 이거 드셔보세요. 우리 집에서 만든 콜라 닭날개 볶음이에요.”

“이건 저희 엄마가 싸주신 만두예요. 진짜 맛있어요!”


나는 도시락 뚜껑을 열고 조금씩 덜어주던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교탁 위에는 어느새 작은 밥상처럼 음식이 모여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한 학생이 조용히 다가왔다.

안경 너머로 또렷한 눈을 가진 아이였다.

낯익은 얼굴. 아마 입학 때부터 내 수업을 듣던 진이였다.


“선생님.”

“응?”

“저… 이번 여름방학에 한국 가요.”

“…유학이야?”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희대 입시 준비해요. 그래서 요즘은 한국어 일기 쓰고 있어요.”

“잘됐다. 언제든 모르는 거 있으면 말해.”


나는 그의 눈빛에서 오래된 다짐 같은 걸 느꼈다.

이 아이는 그냥 언어를 배우는 게 아니라,

인생을 옮기고 있는 중이었다.


하교 시간.

아이들은 하나둘 인사하고 나갔다.

누군가는 교문 앞에서 친구와 장난을 치며,

또 누군가는 이어폰을 꽂고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교실 창가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교실, 이 아이들,

그리고 이 봄.


언제부턴가 나는 이곳을 잠시 머무는 곳이라 생각하지 않게 됐다.

칭다오라는 도시는,

무엇보다 말을 가르치고 있는 내가 있는 곳이기도 했으니까.


퇴근길, 학교 근처를 천천히 걸었다.

갑자기 창밖으로 보였던 학교 건물 옆 벚꽃나무는 만개하지 않았지만,

그 아래 벤치에 앉아 있는 연인들의 모습은 봄 그 자체였다.


나는 주머니에서 작은 메모지를 꺼내

내일 수업 주제를 적었다.


“나의 가장 좋은 친구는 누구인가요?”

“당신의 일상 속 작은 행복은?”


그걸 접어 셔츠 안주머니에 넣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제 정말 일상으로 돌아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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