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펀역에서 돌아오는 기차는 생각보다 느렸다.
창밖으로는 산허리를 감싸 안은 구름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고,
노란 풍등이 떠오르던 마을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창에 머리를 기대고, 아무 말 없이 그 잔상들을 바라보았다.
마음이 묘하게 가벼웠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꾸만 되뇌던 이름도,
손끝에 감겼던 어떤 감정도
지금은 안개처럼 흐려지고 있었다.
떠나보낼 준비가 아니라,
이미 떠나보낸 자리에
바람이 드는 느낌.
호텔에 도착했을 땐, 해가 거의 저물고 있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거울 속의 나는 조금 더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며칠 전, 타오위안 공항에 내리던 그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방 안으로 들어와 커튼을 걷었다.
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반짝였고,
비는 그쳤지만 공기는 여전히 촉촉했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근처 편의점에서 사온 도시락과 우롱차,
그리고
단수이에 갔을 때 사고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가방 안의 약간 뭉개진 카스테라도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티브이를 켰지만 소리는 줄이고,
멀리서 들려오는 오토바이 소음과
창문 너머 이국의 냄새를 느끼며 식사를 시작했다.
별건 아니었지만, 이 시간이 참 좋았다.
누구도 나를 방해하지 않고,
그 어떤 감정도 강요하지 않는 이 공간.
저녁을 먹고 나서, 노트북을 열었다.
오랜만에 메일함을 정리하고,
학생들의 과제 파일을 내려받았다.
중국에 있는 내 반 학생들.
이제 곧 새 학기가 시작될 테고,
수업 자료도 정리해야 했다.
메일 한 통을 보내다 말고, 나는 잠시 멈춰 노트에 적었다.
“칭다오에 돌아가면,
첫 수업은 ‘나의 방학 이야기’로 시작해야지.
모두에게 풍등 사진도 보여줘야겠다.”
문득, 미소가 지어졌다.
학생들이 내 사진을 보고 어떤 반응을 할지 상상해봤다.
“선생님, 여자랑 간 거 아니에요?”
“혼자 풍등 날리면 소원이 이뤄지나요?”
장난기 가득한 질문들이
이미 내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밤 11시.
세면을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잠은 오지 않았지만 억지로 눈을 감지 않았다.
대신 핸드폰 앨범을 열었다.
지우펀, 단수이, 스펀.
흐릿한 사진들이 하나둘 스쳐갔다.
빛이 부족해서 흔들린 사진,
우산 아래 어설프게 찍힌 셀카,
풍등이 작게 떠오르던 하늘.
어느 하나 잘 찍힌 건 없었지만,
나는 그 사진들이 좋았다.
흔들려서 오히려 진짜 같았고,
구도 따윈 필요 없을 만큼
그 순간은 솔직했다.
다음 날 아침.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나는 다시 타오위안 공항으로 향했다.
비는 오지 않았고, 하늘은 흐렸지만
구름 사이로 옅은 햇살이 흘렀다.
비행기 창가 자리에 앉아,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건 크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하지만 단 하나는 확실하다.
나는 ‘지금’을 살아가는 법을 조금 더 배우게 되었다.
그걸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녀와의 시간, 그 상처,
그리고 그 기억들을 통과하고서야
나는 다시 나로 돌아올 수 있었다.
비행기가 구름 위로 솟아올랐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혼잣말을 했다.
“이제,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