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by leolee

토요일 오후, 학생들은 시험 전날이라는 긴장감 속에 교실에 모였다. 학교 측에서 사전에 진행하는 ‘연결 테스트’가 있는 날이었다. 그 자리에는 온라인 시험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그리고 장비나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하는 절차가 준비돼 있었다.

“오늘은 본시험이 아니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고, 그냥 리허설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학생들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화면에 한국인 감독관이 등장하는 순간 교실 안은 금세 얼어붙었다. 학생들은 평소 나와의 수업에는 익숙했지만, 전혀 낯선 한국인의 발음과 속도에는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한 학생은 질문을 듣고도 눈만 동그랗게 뜬 채 대답을 하지 못했고, 다른 학생은 한참을 머뭇거리다 간신히 단어 하나를 내뱉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학생들 얼굴에도 금세 불안감이 번졌다.

“선생님, 저 내일 진짜 말 못 할 것 같아요…”

누군가는 거의 울먹이며 속삭였다.


게다가 예상치 못한 문제도 있었다. 시험 규정상 여권으로 본인 확인을 해야 하는데, 몇몇 학생이 여권을 가져오지 않고 중국 신분증만 챙겨 온 것이다. 다행히 그날은 본시험이 아니었기에 감독관이 “내일 꼭 여권을 가져오라”는 주의만 주고 넘어갔다. 하지만 이 일은 학생들에게 작은 충격이 되었다. 시험의 엄격함을 피부로 느낀 것이다.

연결 테스트가 끝나고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너무 어렵다”, “말을 못 하겠다”며 서로 불안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교실은 시험 전날의 무거운 공기로 가득 찼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안도했다. 차라리 오늘처럼 미리 긴장해 보는 게 나았다. 이 경험이 없었다면, 내일 시험장에서 더 크게 무너졌을 것이다.


일요일 새벽,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간에 우리는 학교에 다시 모였다. 한국 시간으로 아침 9시에 시험이 시작되니, 중국 시간으로는 8시. 학생들은 7시부터 이미 교실에 도착해 있었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얼굴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본격적인 시험이 시작되기 전, 나는 학생들을 차례로 불러 모아 다시 확인했다. “여권 가져왔죠? 장비 확인했나요?” 그런데도 사고는 일어났다.


한 학생은 또 여권을 두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제 이미 주의를 받았던 터라 얼굴은 창백해졌고,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결국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부랴부랴 여권을 가져오게 했고, 다행히 택시까지 타고 오는 수고로움으로 가까스로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또 다른 학생은 컴퓨터 전원선을 집에 두고 오는 바람에 당황했다. 해당 모델은 다른 노트북과 호환이 되지 않아 급하게 집으로 연락을 넣어야 했다. 그 사이 나는 비상용 장비를 열어보며 대체할 방법을 찾았다. 다행히 시험 시작 전까지 문제는 해결됐지만, 교실은 긴장과 소동으로 가득 찼다.

시험 시간까지 앞으로 한 시간.

우리는 대학교에서 보내는 단체 메일을 확인하기 위해서 연신 새로고침을 눌렀다.

마침내 순서를 알게 되자 앞 순서의 친구들은 비명을, 뒷 순서의 학생들은 조용히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또 한 명, 항상 쉬운 일은 없는 것 같았다. 거의 순서가 다가오고 접속 시간이 5분 남았을 때

”선생님! 连不上! 어떻게 해요! “

나 자신도 시험을 보는 것 같이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다잡으며 평온을 가지도록 다독였다.

하지만 학생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고, 당황해서 손을 덜덜 떨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다른 방법을 떠올렸다.

“프로그램이 안 되면 브라우저로 접속해 보자.”


다행히 브라우저를 통해 연결이 되었고, 학생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다른 교실에선 카메라가 켜지지 않는 사고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혹시 몰라 챙겨 온 USB 카메라를 꺼내 즉석에서 설치해 주었다. 학생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谢谢… 선생님 감사합니다”를 중얼거렸다.

본시험이 시작되었다. 감독관의 화면이 켜지고 PPT가 공유되었다.

일대일 시험이었다.

1번 ‘발음’ 시험부터였다. 세 문장을 이어 읽는 과제였다. 받침과 연음, ㄴ첨가, 유음화, 거센소리가 고르게 배치된 구성이었다. 대략 다음과 같은 결이었다.

연음+된소리


“오늘은 학교에 조금 일찍 가려고 했지만, 지하철역 앞에서 친구를 갑자기 만나서 시간이 조금 늦어졌어요.”

‘학교에(학꾜에)’, ‘갑자기(갑자기)’, ‘지하철역 잎에서(지하철려카페서)이 흔들리기 쉬운 지점이었다.


ㄴ첨가+유음화


“서울역 앞에 있는 오랜 설날 장식들을 보면서, 작년에 못 본 떡국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서울역 ’ (서울력), ‘설날(설랄)’, ‘떡국(떡꾹)’이 포인트였다.

거센소리


“책을 찾다가 못 찾아서 카페로 가 커피를 마시고, 저녁에는 집에서 부대찌개를 끓였어요.”

‘찾다가(찯따가)’, ‘카페/커피’의 거센소리 유지, ‘부대찌개’ 장단과 강세가 관건이었다.


첫 번째로 들어간 학생은 ‘설날’을 연거푸 ‘설날’로 읽다가 마지막에야 ‘설랄’로 수정했다. 감독관은 표정 변화 없이 “다음 문장”이라고만 했다. 두 단어가 탁하고 떨어지며 긴장이 더 올라갔다. 두 번째 학생은 ‘앞에 있는’의 ㄴ첨가를 무난히 통과했지만 마지막 ‘부대찌개’에서 ‘부대찌깨’로 세게 터뜨렸다. 대기실에서 지켜본 학생들이 곧장 메모했다. 세 번째 학생은 ‘찾다가’를 ‘찯다가’로 내뱉은 뒤 즉시 ‘찯따가’로 고쳐 읽었다. 그 짧은 자기 수정이 실제 평가에서 의미 있는 신호가 된다는 점을 모두 알고 있었다.


2번 ‘대화’가 시작되었다. 여기서는 문형을 정확히 세워야 했다. 긴장 속에서도 조사·연결어미·대조와 나열을 유지하는지가 관건이었다.


지하철에서 하면 안 되는 것(두 가지)


샤오왕: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면 안 되고,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

구성이 단단했다. 금지 표현의 평행 구조가 깔끔했다. 또 다른 학생은 “춤을 추면 안 된다”라고 답했고, 비록 엉뚱하게 들리지만 금지 문형 자체는 정확했다.


도서관에서 해도 되는 것(두 가지)


메이린: “도서관에서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고, 노트북으로 공부할 수 있다.”

전날 “친구와 이야기해도 된다”라고 답하던 학생이었지만, 본시험에서는 한 박자 쉬고 상식에 맞는 허용 문형으로 정리했다. 리허설의 긴장이 연습 효과로 전환된 순간이었다.


미술관에서 하면 안 되는 것(두 가지)


왕나: “작품을 만지면 안 되고, 플래시를 켜고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

‘플래시’ 발음이 잠시 흔들렸지만, 금지 구조의 평행을 끝까지 유지하여 의미 전달을 선명하게 했다.


좋아하는 음식과 맛 설명(구체적 형용사 확장)


리펑펑: “나는 부대찌개를 좋아한다. 짭짤하고 고소하고, 끝맛이 약간 매워서 밥과 함께 먹으면 느끼하지 않다.”

생활 경험이 붙은 어휘가 긴장을 뚫고 나왔다.


장루루: “나는 마라탕을 좋아한다. 얼얼하고 향이 강하지만, 채소가 많아서 식감이 다양하고 국물이 깊다.”


형용사군을 세 겹으로 확장하여 감독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학생은 “치킨이 맛있다. 바삭하다”에서 멈췄다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서 식감이 좋다”로 겨우 이어 붙였다. 이 한 줄이 이유 확장의 분기점이었다.


대기 공간에서는 작은 정보가 돌기 시작했다. 먼저 본 학생들이 나와 한 마디씩 흘렸다.


“발음에서 ‘설날’ 나온다. 조심해라”,

“지하철 금지 두 개 물어본다”,

“도서관은 책 읽기·노트북 공부가 안전하다”, “미술관은 만지지 않기+플래시 금지”,

“맛 설명은 최소 세 개 이상 붙여라.”


규칙으로 보자면 바람직하지 않은 공유였다. 그러나 실전에서 학생들이 택하는 생존 방식이기도 했다.

나는 한 줄을 덧붙였다.


“힌트만 외우면 변형에 무너진다. 문형 자체를 믿어라. ‘하면 안 된다/할 수 있다/좋아한다+이유/맛 형용사 확장’—이 틀로 어떤 질문이 와도 조립하라.”


학생들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정답’에서 ‘구조’로 시선이 옮겨 앉았다.


한 시간 남짓한 순서가 흘렀다. 세 문형을 모두 마칠 때쯤이 되자 앞서 본 학생들은 안도와 후련함을, 아직 들어가지 않은 학생들은 침묵과 떨리는 손등을 품었다. 그러나 토요일의 얼어붙음은 일요일의 버팀으로 바뀌었다.


전날 “도서관에서 말해도 된다”라고 답하던 샤오왕은 오늘은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다”로 선회했다.


‘설날’을 여러 번 틀리던 메이린도 마지막에 ‘설랄’로 수정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다”만 말하던 학생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를 끌어올렸다. 작은 수정과 짧은 확장이 문장을 문장답게 만들었다.


마지막 학생이 한국어 시험을 끝내고 방을 나왔을 때 교실에는 퀴퀴한 긴장과 따뜻한 안도가 함께 떠다녔다. 나는 물병을 건네며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잘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오늘은 문장으로 싸웠다. 서로 잘했다고 박수 ”


학생들은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몇몇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박수를 치면서 해방감과 후련함 한편으로 아쉬움과 두려움도 느껴지는 분위기였기. 누군가는 정보를 나눠 얻은 작은 안전망에 기대었고, 누군가는 준비한 문형으로 정면 돌파했다. 방식은 달랐지만 모두 살아남는 법을 한 칸씩 배웠다.


이제 남은 것은 결과였다. 그 결과가 어떠하든, 오늘의 한 문장들이 그들의 안쪽에서 여전히 자라고 있으리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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