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학생이었고, 엄마는 학교의 청소 아줌마였다. 복도는 겨울밤처럼 길고 차가웠고, 형광등 불빛이 바닥에 납작 붙어 웅크려 있었다. 엄마는 내 기억 속 어느 시골집에나 있었던, 입구가 세 칸 달린 큰 장롱을 등에 메고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엄마를 불렀다. 이름을 부르듯, ‘엄마’라고. 그런데 엄마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삐거덕, 목재가 등짝에서 우는 소리만 남기고, 엄마는 복도의 끝으로 사라졌다. 막막함이 내 목구멍까지 차올랐고, 나는 잠결에도 손을 뻗었다. 손끝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깨고 보니, 나는 중국의 내 방에 누워 있었다. 바깥 창문을 스치는 새벽의 바람은 다른 계절 같았고, 휴대전화에는 시차처럼 낯선 시간이 떠 있었다. 물을 한 잔 들이켠 뒤, 나는 이 이상한 꿈 얘기를 엄마에게 보냈다. “엄마, 나 이상한 꿈 꿨어. 엄마가 큰 장롱을 메고 가는데, 내가 불러도 안 돌아보는 거야.” 몇 분 뒤, 동생이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엄마 생일이야.” 나는 그제야 알았다. 올해도 나는 엄마 생일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중국에 있다는 사실 하나가 변명처럼 내 어깨에 얹혀 있었지만, 그 변명은 변명이 되지 못했다. 익숙함이 무너지는 소리는 그렇게 갑자기,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목소리로 찾아온다. 당연했던 것들이 사실은 내게서 아주 느리게 멀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늘 늦게 알아차렸다.
생일상은커녕 근처 제과점에서 케이크 하나도 사서 보낼 수 없던 그날, 와이프 아는 사람의 생일이었다. 그사람을 위해서 케이크를 예약하는 그녀의 준비성에 감탄을 하면서도 그때까지도 중국에서도 인터넷으로 가능하다는 간단한 사실 조차도 생각을 못하는 둔한 사람이었다. 나는 커튼을 걷고 하늘을 봤다. 푸른 하늘은 그저 푸르기만 했다. 새삼스럽게, 내가 엄마에게서 얼마나 멀리 왔는지를 헤아렸다. 한국에서 중국까지의 물리적인 거리보다 더 멀리... 서로의 일상과 리듬, 기분과 체온까지 벌어진 그 간격을, 나는 이제야 두려워했다. 그 꿈에서 엄마가 메고 가던 장롱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우리 집의 시간들, 우리가 함께 쌓아 올린 사소한 물건들의 기억, 오래된 겨울 이불과 여름 홑이불, 설날에 꺼내던 그릇, 내가 학교 갈 때 챙겨주던 도시락 보자기까지 모두 담겨 있던 것. 엄마는 그 장롱을 등에 진 채, 아무 말 없이 옮기고 있었다. 어느 곳으로? 아마도 다음 방으로, 다음 시간으로, 다음 생의 복도로.
익숙함이란 무엇일까.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부엌에서 들리는 국 끓는 소리, 퇴근 길에 전화하면 “밥은 먹었니”로 시작하는 안부, 설거지 통에서 서로 부딪히던 그릇의 맑은 소리, 장롱 문이 달칵 닫히는 소리. 우리가 ‘평범’이라 부르던 것들, 이름 붙이지 않았던 사소함의 결들이 어느 날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 공기가 들어온다. 공기는 비어 있음이 아니라, 비어 있음을 확인시키는 냉기다. 나는 그 빈자리를 인정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꿈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꿈은 내 무의식이 내 편이 되어, 내가 외면한 진실을 코앞에 가져다 놓는 방식이었다.
엄마의 생일을 잊은 죄책감은 오래된 서랍을 열어젖힌 듯, 다른 기억들까지 끌어올렸다. 초등학교 때 겨울 장날, 엄마는 빨래판 같은 손등으로 내 귀를 덮어 주며 바람을 막아 주었다. 나는 그때 그 손이 부끄러워서, 친구들 앞에서 한 발짝 떨어져 걷곤 했다. 그때 내 안에 자란 어떤 사소한 잔인함은 나이가 들었다고 저절로 사라지지 않았다. 익숙함은 때로 우리의 무례를 덮어 주는 두꺼운 담요였다. 너무 가까워서 쉽게 다루고, 쉽게 잊는 사이, 우리는 더 고운 것을 놓친다.
나는 가끔, 부모님이 어느 날 갑자기 떠난다면—그 날이 내 꿈 속처럼 한 마디 인사도 없이 다가온다면—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현실은 대개 소설보다 무심하고, 이별은 우리가 준비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온다. 병원 복도의 하얀 불빛, 장례식장의 영정, 냄새까지 또렷한 향냄비 국물,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연락을 돌리고, 누군가는 상주로 서서 끊임없이 절을 받는다. 그 사이사이, 말하지 못했던 말들이 목에 걸려 미처 삼키지 못한 눈물이 된다. 그 과정이 지나고, 집으로 돌아와 문을 닫으면, 그제야 익숙함이 사라진 자리가 온통 시퍼렇게 드러난다. 밥상이 차려지는 소리가 없고, 양치컵은 하나가 비어 있으며, 전화를 걸 번호가 그대로인데 받을 사람이 없다. 나는 그 상상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반복할수록 심장이 익숙해져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더 아려왔다.
나는 동생이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형제자매라고 믿어 왔지만, 가끔은 미래의 그림자가 우리 사이를 지나간다. 많지 않은 재산, 집 한 채와 이름도 모를 소액의 예금, 오래된 장롱과 밥그릇, 엄마가 모아둔 적금 통장, 보험 서류 한 꾸러미. “없는 집이 더하다”는 말이 왜 이렇게 정확하게 느껴지는지,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알 것 같다. 가진 게 많으면 법이 지켜 주지만, 가진 게 적을수록 마음이 먼저 다친다. 마음이 다치면 말이 거칠어진다. 거친 말은 결국 사람을 밀어낸다. 나는 우리가 그 길을 가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바람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것도 안다. 준비하지 않은 사랑은 언제든 오해가 되고, 정리되지 않은 애정은 쉽게 분쟁으로 번진다.
그래서 나는 책을 펼쳤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준비하는가, 누군가는 어떤 절차를 통해 평온을 확보하는가. 법률서적은 아니었지만, 에세이와 상담 기록, 노년의 삶을 다룬 책들, 슬픔을 다루는 심리학 책들에서 몇 가지 해답을 건졌다. 완벽한 해답은 아니지만, 방향을 알려주는 촉수 같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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