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이상하게 하루가 잘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런 날이 가끔 있다.
학생들이 유난히 질문도 잘하고, 수업도 딱딱 맞게 떨어지고, 복도에서 마주친 동료들까지 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 날.
별 이유는 없는데, “그래, 오늘은 버틸 만하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되는 그런 날이었다.
아침부터 수업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면접반 아이들은 어제보다 대답이 길어졌고, 발음 수업을 하는 반은 웃음과 소리가 잘 섞였다.
칠판에 적힌 문장들이 아이들의 입에서 어색한 소리로 튀어나왔다가, 조금씩 문장다운 문장으로 모양을 잡아갈 때, 나는 그 과정을 보는 게 좋았다.
‘그래, 이 맛에 버티는 거지.’
교실 문을 닫고 나올 때까지, 마음속 목소리는 비교적 조용했다.
어젯밤에는 “다들 집이 있고 차가 있는데 넌 뭐냐”면서 사납게 물어뜯던 그 목소리가, 오늘은 마치 어디 놀러라도 간 듯했다.
대신, 소박하지만 단단한 생각이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점심시간, 식당 대신 교무실 한쪽에 앉아 편의점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달걀지단을 반으로 잘라 입에 넣으려는 순간, 휴대폰이 짧게 떨렸다.
알림창에 낯선 이름이 떠 있었다.
처음 보는 이름은 아니었다.
몇 년 전, 우리 학교를 참관한 한 대학교 국제처 직원분에게서 잠깐 명함을 주고받았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 뒤로 가끔 ‘어학연수반 모집’ 같은 광고 메일이 오곤 했다. 대부분 제대로 읽지도 않고 그냥 삭제 버튼을 눌러 버렸다.
이번에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제목의 한 줄에서 발걸음이, 아니 손가락이 멈췄다.
〈○○대학교 국제교육원 한국어 강사 제안〉
나는 도시락 뚜껑을 덮듯, 본능적으로 화면을 한 번 덮었다.
손바닥으로 폰을 가린 채, 잠시 숨을 골랐다.
“ ○○…”
입안에서 단어를 굴리는 순간, 어딘가 먼 곳에서부터 오래된 공기의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막 칭다오에 왔던 시절 걷던 바닷가, 겨울바람, 편의점 앞에서 떨면서 먹던 젠빙궈즈, 그렇게 힘들게 보냈던 밤들과 어렵게 취업해서 온 길...
그 모든 것들이 ‘○○대학교’이라는 두 글자에 한 번에 엉겨 붙어 밀려왔다.
점심에 시킨 비빔밥의 밥알이 목에 잘 넘어가지 않았다.
물을 들이키고 나서,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열어보자. 어차피 삭제해도, 보고 삭제하자.”
손가락이 다시 화면 위를 미끄러졌다.
메일이 열리는 데 걸린 몇 초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이태겸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대학교 국제교육원입니다.
예전에 칭다오의 ○○어학원에서 잠시 뵙고, 한국어 교육 경력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최근 저희 국제교육원에서 중국,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학생들을 위한 ‘예비대학 과정’을 확장하게 되면서,
실무 경험이 풍부한 한국어 강사님을 모시고자 합니다.
선생님의 경력(중국 내 한국어 교육 10년 이상, 유학 준비반 지도 경험)을 검토한 결과,
본교에서 근무하실 한국어 강사 포지션을 제안드리고자 합니다.
주요 조건은 아래와 같습니다.
근무지: ○○대학교 국제교육원(본원)
고용형태: 계약직(1년 단위, 재계약 가능), 한국 내 4대 보험 가입
급여: 세전 월 ○○○만 원 + 성과 수당(유학생 모집/유지)
복지: 개인 사무실 제공, 대학 기숙사 또는 인근 원룸 지원(협의),
방학 중 단기 어학연수 프로그램 참여 시 추가 수당
만약 한국으로의 귀국 및 장기적인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계시다면,
이번 기회를 한 번 진지하게 검토해 보셨으면 합니다.
원하실 경우, 온라인 인터뷰를 통해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일주일 이내로 회신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스크롤을 내리는 손가락이 그 아래에 붙어 있는 첨부 파일을 지나쳤다.
‘근무 조건 상세 안내.pdf’
‘국제교육원 소개 브로슈어.pdf’
그 세 글자, ‘ 본교’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울렸다.
본교. 한국. 4대 보험. 연구실. 기숙사.
모든 단어가 오랫동안 내 귀에 들리지 않던 언어 같았다.
그동안 내가 서 있는 이곳의 언어는,
‘비자 연장’, ‘워크퍼밋’, ‘시급 조정’, ‘수업 시수’, ‘유학반 모집 인원’ '한 달 생활비 월급' 같은 것들이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교무실의 소음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부장 선생이 옆자리에서 누군가와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고, 복도에서는 누가 뛰어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 모든 소리가 물속에서 나는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될까.’
머릿속에서, 오래된 지도가 천천히 펼쳐졌다.
한국의 지도가 아니라, 내 인생의 지도가.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비자였다.
더 이상 ‘1년짜리’ 중국 거주 허가증을 들고, 매년 서류를 챙기고, 건강검진표를 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될 것이다.
워크퍼밋을 갱신할 때마다 느끼던 그 이상한 불안—
“이번엔 또 뭐가 바뀌었을까”, “혹시 규정이 달라져서 안 나온다고 하면 어쩌지”—
그 모든 감정에서 한 번에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집.
비록 대학에서 제공하는 기숙사 거나 작은 원룸일지라도,
‘언제든 나가라면 나가야 하는 외국인 교사 숙소’가 아니라,
내 주민등록이 찍힌 주소를 가진 집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은행 앱을 열면, 자국 통화로 된 계좌가 나타나겠지.
편의점에서 카드 긁을 때, 환율 계산을 머릿속으로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제야 사람 사는 것 같다’—
어제 친구가 했던 그 말을 떠올리자,
가슴 한쪽에서 묘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들이 말했던 ‘사람 사는 느낌’이라는 것이,
어쩌면 이 메일에 담긴 조건들하고도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다음으로 떠오른 건,
전혀 다른 얼굴을 한 또 하나의 지도였다.
태평각으로 이어지는 길,
리란이 옆에 앉아 있는 카페, 장이링이 “선생님!”하고 달려오던 커피숍 2층,
오판중심에서 바다를 보며 학생들 원고를 고치던 밤,
중국말로 농담을 건네던 샤오왕과의 맥주 한 캔,
교실 창밖으로 보이던 흐릿한 봄 안개.
내가 지난 십 년 동안 걸어온 길은,
지금 이 도시와 너무 깊게 엉켜 있었다.
메일에는 월급 숫자가 적혀 있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숫자 대신 얼굴들이 떠올랐다.
수업 시간에 발음이 안 된다며 혀를 잡고 웃던 리우위쉬엔,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삐뚤빼뚤 쓰던 장이링,
TOPIK 말하기에서 떨면서도 끝까지 말을 이어갔던 메이린,
매년 유학을 보내고 나면 나에게 “정말 고맙다”고 인사하던 부모들.
‘그럼, 이 사람들을 그냥 떠나버린다는 건가.’
생각의 좌표가 갑자기 바닥을 향해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후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까지, 나는 메일을 다시 열어보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만 수십 번을 열어보고, 다시 닫고, 삭제했다가, 복구했다.
샤워를 하고 나와, 젖은 머리로 의자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봉투 세 개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집(언젠가)”
“이동(언젠가)”
“나(지금)”
며칠 전, 내가 이름 붙인 자기 나름의 재정 시스템.
막연한 꿈과 가능성과 현재를 나누어 담아둔 종이봉투 세 개.
그 중간에 적힌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동(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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