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날 아침은 늘 비슷한 온도를 가지고 있다. 너무 차갑지도, 너무 따뜻하지도 않은 공기. 그렇다고 평소와 같은 공기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몸은 분명히 학교로 향하고 있는데, 마음은 이미 온라인시험장 안에 들어가 있다. 아이들보다 내가 먼저 긴장하는 날. 이건 매번 그렇다.
H대 한국어 교내 온라인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전날 밤, 나는 시험에서 나올 질문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이미 아이들에게 대학교에서 각각의 학생에게 이메일로 질문들을 모두 보내줬던 상태이지만, 지난번 한국어 시험에서 나온 문제와 별 다른 점이 없었다. 다 풀어줬던 질문들이었고, 답변도 여러 번 연습했다. 그중 몇 개는 아이들 스스로 고쳐 만든 문장이었고, 몇 개는 내가 최소한의 틀만 잡아준 문장이었다. 정답처럼 외우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같은 의미라도 표현을 조금씩 바꾸게 했고, 질문이 바뀌어도 구조만은 흔들리지 않도록 연습시켰다.
‘괜찮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잠들었지만, 새벽에 몇 번이나 눈을 떴다. 누군가 대답을 못하면 어떡하지, 질문을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긴장해서 입이 안 떨어지면 어떡하지. 시험 전날 밤의 걱정은 언제나 구체적이고, 그래서 더 피곤하다.
학교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은 이미 모여 있었다. 문 앞에서 내가 문을 열기를 기다리며 서성이는 아이들, 휴대폰을 붙잡고 마지막으로 문장을 중얼거리는 아이들, 아예 포기한 얼굴로 멍하니 서 있는 아이들. 그 표정들을 하나하나 보는 순간, 나는 다시 한 번 ‘선생’이라는 자리에 서 있다는 걸 실감했다.
“선생님.”
샤오위가 먼저 다가왔다.
“저 어제 연습한 거… 다 기억은 나요. 근데 좀 떨려요.”
“떨리는 게 정상이지.”
나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안 떨리면 이상한 거야. 질문 들리면, 제일 먼저 뭐 해야 해?”
“숨 쉬기요.”
“그래. 숨 쉬고, 질문 끝까지 듣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번 더 문장을 중얼거렸다. 발음은 어제보다 훨씬 안정적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하나둘 나에게 와서 인사를 했다. 어떤 아이는 괜히 웃었고, 어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든 반응이 각자의 방식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안다.
시험은 먼저 나눠준 수험표대로 진행됐다. 온라인 시험인 관계로 교실하나에 한 명씩 덩그러니 들어가 있었다. 이번 시험에는 여권 준비를 전날까지 강조했으나 신분증을 가져온 아이들, 컴퓨터 전원선을 안 가져와서 배터리가 거의 떨어질 뻔한 아이, 수험표를 인쇄하려고 사무실로 달려오는 아이들이 다행하게도 없었다.
모두 안으로 들어갔다. 각각의 교실문이 닫히고 나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국에서부터 온라인을 타고 오는 면접관들의 질문과 어설프게 대답하는
학생들의 대답을 들으며 복도에서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처음 나온 아이는 예상대로 잘했다는 얼굴이었다.
“어땠어?”라고 묻자 그는 짧게 말했다.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두 번째 아이도 비슷했다. 질문은 우리가 연습했던 범위 안이었고, 표현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전달은 충분했다. 아이들 얼굴이 하나씩 풀어지는 걸 보며, 나 역시 조금씩 긴장을 내려놓았다.
문제는 세 번째였다.
조선족 학생, 민호.
그 아이가 시험실로 들어갈 때부터, 나는 조금 불안했다.
민호는 조선족 가정에서 자랐다. 집에서는 한국어를 쓰지만, 우리가 연습한 한국어와는 결이 달랐다. 말은 빨랐고, 억양은 자연스러웠지만, 문장 구조는 시험용 한국어와는 많이 달랐다. 평소 수업 시간에도 그는 “집에서는 이렇게 말해요”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나는 그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집에서 쓰는 말이 틀린 건 아니야. 근데 시험에서는, 듣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이 중요해.”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완전히 받아들인 것 같지는 않았다. 연습할 때도 그는 준비한 답을 그대로 말하기보다는, 즉석에서 말을 만들어내는 편이었다. 그게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시험에서는 위험이 되기도 한다.
문이 닫히고, 시간이 흘렀다.
다른 아이들보다 민호의 시험 시간이 유난히 길어졌다. 복도에 있던 아이들도 슬슬 눈치를 챘다. 나도 시계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 시험관이 질문을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아이가 대답을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문이 열렸을 때, 민호의 얼굴은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들어갈 때의 여유는 사라지고, 눈동자가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
“괜찮아. 일단 나와.”
우리는 복도 한쪽으로 이동했다. 다른 아이들이 듣지 않도록,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민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재촉하지 않았다. 이런 순간에 말은 보통 천천히 나온다.
“질문이… 무슨 말인지…”
그가 입을 열었다.
“알 것 같았는데, 막상 들으니까…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떤 질문이었어?”
“전공 선택 이유 물어봤어요. 근데… 제가 집에서 하던 말로 시작했는데…”
그는 잠시 멈췄다가 말했다.
“말하다가…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 말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준비한 답을 잊어버린 게 아니라, 준비한 구조 자체를 꺼내지 못한 상태였다. 익숙한 말투로 시작했지만, 시험이라는 상황에서 그 말투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모두 길을 잃은 상태.
“그다음엔?”
“시험관이 다시 질문을 정리해서 말해줬는데… 그때는 머리가 하얘졌어요. 그냥… 아무 말도 안 나왔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숨을 쉬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건 아이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계속 경계해 왔던 지점이 그대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집에서 쓰는 한국어’와 ‘시험장에서 요구되는 한국어’의 간극. 평소에는 자연스러움으로 보이던 것이, 시험장에서는 구조 없는 말이 되어버리는 순간.
“민호야.”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집에서 쓰는 말이 잘못된 건 아니야. 절대 아니야.”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근데… 시험에서는, 상대가 네 말을 처음 듣는 사람이잖아. 그 사람한테는 구조가 필요해.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처음부터 끝까지.”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은 여전히 무거웠다.
“연습한 대로 했어야 했는데… 괜히…”
“괜히가 아니야.”
나는 말을 끊었다.
“너는 너 방식대로 하려고 한 거야. 다만, 오늘은 그 방식이 맞지 않았을 뿐이야.”
시험이 모두 끝났을 때, 대부분의 아이들은 안도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몇몇은 서로 질문이 어땠는지 이야기했고, 몇몇은 이미 결과를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민호를 한 번 더 봤다. 그는 혼자 떨어져 서서, 바닥을 보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나는 계속 민호의 말을 떠올렸다.
그 문장은 시험의 실패를 넘어, 언어라는 것의 본질을 건드리고 있었다. 말은 익숙하다고 해서 언제나 전달되는 게 아니고, 자연스럽다고 해서 언제나 이해되는 것도 아니다. 특히 시험이라는 공간에서는 더더욱.
학교로 돌아와 아이들을 돌려보내고, 교무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오늘 시험 결과를 종합하면, 분명 나쁘지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준비한 만큼 했다. 몇 명은 예상보다 잘했고, 몇 명은 딱 그만큼 했다. 그런데도 마음 한쪽이 무거웠다. 한 명의 실패가, 전체를 덮는 느낌.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리란이었다.
“시험 끝났어?”
“응. 방금.”
“어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답했다.
“대부분은 잘했어. 근데… 한 명은 좀 힘들었고.”
“그래도, 네 잘못은 아니잖아.”
나는 그 문장을 한참 바라봤다.
맞는 말이지만, 선생이라는 자리는 늘 그 ‘아니다’와 ‘그래도’ 사이에 서 있다.
“완전히 내 잘못은 아니겠지.”
나는 그렇게 답했다.
“근데, 내가 더 일찍 막아줄 수도 있었던 지점이긴 해.”
리란은 잠시 답이 없다가 말했다.
“그럼 다음엔, 더 잘 준비시키면 되지.”
그 말은 단순했지만, 현실적인 위로였다. 시험 하나가 끝났다고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고, 실패 하나가 모든 과정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건, 그 실패를 어떻게 다음으로 연결하느냐였다.
나는 교무실 창가에 서서 밖에 보이는 거리를 바라봤다.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웃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시험이 끝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 자리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는, 이제 나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