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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lee Nov 28. 2024

상하이의 추억: 영화 제작소에서 황포강까지

상하이에서의 네 번째 날 아침, 세라와 나는 상하이 영화촬영소(영시낙원)로 향했다. 전날 저녁 딘타이펑에서 돌아온 후, 세트장을 배경으로 상하이의 역사를 느껴볼 생각에 들떠 있었다.

택시로 약 30분을 달려 도착한 영화촬영소는 외관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다. "上海影视乐园"이라고 새겨진 커다란 아치형 문은 마치 시간 여행의 관문처럼 느껴졌고, 문 너머로 펼쳐진 풍경은 옛 상하이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듯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사람들을 따라 걷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박물관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내부는 1930년대 상하이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담아낸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벽에는 당시 상하이 시민들의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들이 걸려 있었고, 생활용품과 의상들이 유리 장식장 속에 진열되어 있었다.

“오빠, 저기 봐! 이거 커피 그라인더 같은데?” 세라가 손가락으로 유리 장식장을 가리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진짜네. 저걸로 커피를 갈았을 거라고 생각하니 신기하다.”


그 옆에는 고풍스러운 가구와 함께 옛날 전축과 전화기 같은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모든 물건은 실제로 사용되었던 것처럼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벽면에는 오래된 광고 포스터가 걸려 있었는데, 밝은 색감과 독특한 디자인이 당시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의자나 책상들을 배경으로 우리는 서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세라, 저 포스터 좀 봐. 저건 진짜 영화 세트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 같아,”


나는 포스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빠, 이 옷도 봐봐. 이건 치파오네!”

세라가 여성 의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시장 한쪽에는 당시 상하이의 복장을 재현한 의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남성용 양복과 여성용 치파오는 당시의 세련미와 우아함을 잘 보여주었다.


“세라, 너 치파오 입으면 진짜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세라는 웃으며 대답했다.


“다음엔 빌려서 입어볼게. 그리고 오빠도 저 양복 입어야 해. 우리 둘이 여기서 영화 한 편 찍는 거야!”


박물관을 나와 본격적으로 촬영소로 들어섰다. 난징동루(南京东路)에서 인민광장(人民广场)을 지나 난징시루(南京西路)까지 이어지는 근대 시기의 모습으로 복원한 거대한 세트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오래된 서양식 건물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고, 거리 바닥은 클래식한 벽돌로 포장되어 있었다. 건물마다 당시 상하이의 상점과 레스토랑을 재현한 간판이 걸려 있었고, 거리에는 당시 사람들이 쓰던 생활 용품과 소품들이 디테일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가끔 한국 영화나 중국 영화에서 상하이나 중국 배경으로 꼭 나오는 곳이 여기였다.


“세라, 여긴 진짜 대단하다. 건물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 같아,”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맞아, 저 간판 좀 봐. 전부 옛날 글씨체로 쓰여 있네. 여긴 진짜 영화 찍기에 딱이야,”

세라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며 대답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클래식 자동차들이 줄지어 있는 박물관 같은 곳에 다다랐다. 반짝이는 검은색과 은색 차들은 1920~30년대 상하이의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빠, 저 차 진짜 멋있다. 이거 실제로 운전할 수 있을까?” 세라가 차 옆에 서서 물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운전할 수 있다면 진짜 대박이겠다. 근데 나 면허 없잖아.”


세라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오빠 같은 사람한테 면허 주면 큰일 나. 차 긁고 다닐 것 같아.”


우리는 자동차 옆에서 서로 장난을 치며 사진을 찍었다. 세라는 나에게 광고에서나 나올 법한 포즈를 취하라고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오빠, 저기 하늘을 가리키면서 좀 멋있는 척해 봐. 좋아, 딱 그 자세야!”


그렇게 자동차 전시를 구경한 뒤, 우리는 세트장 안쪽으로 이동했다. 거리 한쪽에서는 실제 촬영이 진행 중이었다. 배우들이 고급스러운 레스토랑 앞에서 추격 신을 촬영하고 있었고, 영화 스태프들은 조명을 조정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폭발 장면 준비가 한창인 듯, 스태프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오빠, 저기 봐봐. 진짜 총싸움 장면 찍는 것 같아. 대박이다!”

세라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촬영이 잠시 멈추자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촬영 장면을 지켜보며 실제 영화 제작의 생생한 현장을 느낄 수 있었다.


“세라, 이런 데서 엑스트라로라도 한 번 서 보면 재밌을 것 같지 않아?”


나는 웃으며 말했다.


“엑스트라도 좋지만, 난 주연 하고 싶은데?”


세라가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영화촬영소를 돌아보며 우리는 상하이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느낄 수 있었다. 박물관에서 본 생활 용품들과 거리의 디테일한 재현, 그리고 촬영 현장의 생동감 있는 분위기는 모두가 상하이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선사해 주었다.


그날 저녁은 우리는 상하이 여행의 마지막을 와이탄에서 보내기로 했다.

난징루를 걸어 와이탄으로 향하는 길은 화려한 조명으로 가득했다. 고층 빌딩의 네온사인과 강변을 따라 늘어선 빛나는 고급 호텔들, 그리고 유람선의 불빛이 반짝이며 상하이를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들었다.


와이탄에 도착하니, 강을 따라 펼쳐진 스카이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와, 오빠. 여기 진짜 너무 멋있다. 사진으로만 봤던 곳인데 실제로 보니까 더 대단해,”


세라가 감탄하며 말했다.


나는 그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이건 진짜 사진으로 다 못 담아. 나는 그래서 상하이에 오면 사진을 찍지 않아.  직접 봐야만 느낄 수 있는 거. 그대로 눈과 머릿속에 담는 거야. 사진 따위를 찍을 시간도 없지.


우리는 강변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바람이 적당히 불어와 더운 여름밤의 열기를 식혀주었다. 세라는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오빠, 그래도 여기 배경으로 우리 같이 사진 찍자. 이거 여행 마지막 기념이잖아.”

나는 세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녀는 사진을 확인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오빠, 웃는 표정 너무 어색해. 다시 찍자!”


우리는 여러 번 사진을 찍고 나서야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었다. 그리고 강변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오빠, 이번 여행 진짜 좋았다. 뭐랄까, 그냥 관광이 아니라 오빠랑 새로운 추억을 만든 느낌이랄까?”


세라가 말하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도 그래. 이번 여행 덕분에 상하이가 더 특별해진 것 같아.


그때, 와이탄의 건물들이 하나둘씩 조명을 밝히며 라이트 쇼가 시작되었다. 강 위로 반사된 빛들이 물결처럼 퍼져나갔고, 우리는 그 아름다운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빠, 진짜 아름답다. 여기서 이렇게 보니까 영화 속 한 장면 같아,”

세라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게, 우리도 영화 주인공 같은 기분이다. 이런 날들이 계속됐으면 좋겠다.”


그녀는 살짝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했다.

고마워, 오빠. 나랑 함께 해줘서.

우리는 서로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그 순간, 와이탄의 화려한 조명 아래서 느낀 따뜻함은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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